<연애칼럼> 환상이 없다면 사랑도 없다
서로 사랑하던 연인들이 이별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변했든지, 상대가 변했든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헤어지는 이유 중 특히 상대에게 실망하게 되어 헤어지는 경우엔, 누구나 상대가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상대는 왜 변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가 변한 게 아니라 변한 것처럼 보인 것일 뿐이다. 자신이 처음부터 상대에 대해 잘못 알았기 때문.
예를 들면, 단점이 많은 사람을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 둔갑시켜 상상했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얘기다. 연인들 간에 “그가(그녀가) 내게 그럴 줄 몰랐어.”라고 말하는 것도 자신이 상대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단점을 빨리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어서 시간이 지나야만 밝혀질 이런 오해는 충분히 일어날 만하다. 여기서 기억해 둘 것은 사람은 사고방식이든 성격이든 습관이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상대가 변심을 했다고 판단된다면 반대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어떤 점에 실망이 되어 내게 싫증이 났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상대가 나에 대해 엉뚱한 환상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 연인들 사이에서 “이제 너를 만나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 말이 진심인 경우에 한하여 그 연애는 끝장이 난 것이다. 더 이상 상대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 남자는 “클로이가(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하고 자문한다. 또 주인공은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것일까? 그 답은 자기 확인적인 순환논법이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때 클로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클로이는 아름답기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라고 생각하였다.
마음속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싹트고 자라나는 것은 인간에게 상상력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눈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성을 발견하게 되면, 상상력은 그 상대에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히게 된다. 그래서 그리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여기서 상상력의 다른 이름은 ‘환상’이다. 환상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감정이다. 사랑한 것도, 변심한 것도 무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의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감정이 환상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탓할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환상이겠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조차 몰랐던 스칼렛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이 작품은 영화로 더 유명하다. 스칼렛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북전쟁 직전의 시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위의 많은 남성들은 스칼렛의 매력에 반해 사귀고 싶어 했으나 애슐리만은 그녀에게 무관심하였는데, 그런 무관심한 애슐리에게 그녀는 끌리고 만다. 그리고 애슐리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으로 키워 가며 그 역시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미 멜라니의 남편이 되어버린 애슐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스칼렛은 레트와 결혼한 뒤에도 애슐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사랑을 더 키웠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애슐리의 아내 멜라니가 병을 얻어 죽게 되는 병석에서 애슐리는 멜라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을 들은 스칼렛은 그때서야 애슐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내 멜라니였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자신이 사랑한 사람도 애슐리가 아니라 자신의 남편인 레트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칼렛은 애슐리도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착각을 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품은 것이다. 그녀는 애슐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며 나름대로 애슐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으나, 그 이해는 결국 오해에 불과하다는 게 밝혀진 셈이다. 결국 자신이 누굴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모른 채 사랑한 것을 보면, 사랑이란 비현실적 환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스칼렛이 입증한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졌던 소녀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여주인공인 소녀는 ‘허석’이란 이름의 젊은 남자를 예전에 염소 옆에서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으로 알고 짝사랑하게 된다. 하모니카를 불던 그 모습을 그리며 그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자신이 잘못 알았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 생긴다. 소녀가 짝사랑에 빠졌던 그 모습은 ‘허석’이란 멋있는 남자가 아니었고 초라한 낯선 아저씨였던 것. 어느 날 그 낯선 아저씨가 염소 옆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걸 보게 되었던 것.
“그날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내 사랑이 이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이 아닌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다.” - <새의 선물> 중에서.
자신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이미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면 그 소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건 무엇이었을까. 역시 환상의 산물이 사랑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 엘라
토마스 하디의 <환상을 쫓는 여인>이란 소설에서는 기혼 여성인 엘라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인 트리위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환상이 빚어내는 사랑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나온 트리위의 시집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었고 그의 시를 능가하는 시를 한 번 써 보려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총기 제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이 만들어 내는 물건들이 생명을 빼앗기 위한 도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남편의 직업에 대해 더 이상 상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시각에선 본 남편은 그저 천박하면서도 물질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환상을 주지 못하는 그런 남편과 살면서 환상을 주는 한 시인을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 소설작품의 공통점은 환상이 사랑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아마 인간에게 환상이란 상상력이 없다면 사랑에 빠지는 일도 없지 않을까.
....................................................................................................................
이 글과 관련한 책들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마가렛 미첼 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은희경 저, <새의 선물>
토마스 하디 저, <환상을 쫓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