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빵이 항상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나 자연 가운데에서 어떤 너그러움을 깨닫는 것은, 그리고 순수하고 영웅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더욱이 그것은 우리가 우리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도 우리의 굳은 관절을 풀어 주고 우리로 하여금 유연성과 탄력성을 지니게 한다.(249쪽)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토지를 재산으로 보거나 재산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누구나 벗어나지 못하는 천한 습성 때문에 자연의 경관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었으며, 농부는 그 누구보다도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농부는 자연을 약탈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다.(250쪽)
우리가 흔히 잊기 쉬운 것은, 태양은 인간의 경작지와 대초원과 삼림지대를 차별 없이 똑같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태양의 광선을 똑같이 반사하거나 흡수한다. 인간의 경작지는 태양이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태양의 눈에 이 지구는 두루두루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양의 빛과 열의 혜택을 이에 상응하는 믿음과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250~251쪽)
이 콩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밀의 이삭이 농부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겠으며, 그 낟알만이 밀대가 생산하는 모든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사가 실패하는 일이 있겠는가?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일진대, 잡초가 무성한 것도 실은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251쪽)
⇨ 세속적인 논리와 세속적인 가치만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글들이다. 밭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땅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2.
태양의 따스함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는 가을의 어느 맑은 날에 언덕 위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물 위에 비친 하늘과 나무들의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수면 위에 끊임없이 그려지는 동그라미 모양의 파문을 관찰하는 것은 마음이 무척 차분해지는 일이다. 이 넓은 수면에는 동요가 있더라도 그것은 이처럼 곧 잠잠해지며 가라앉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물이 가득한 항아리를 흔들어놓으면 그 물이 출렁대지만 가장자리에 닿으면서 결국엔 수면 전체가 다시 잠잠해지는 것과 같다.(282~283쪽)
⇨ 태양의 따스함을 우리도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던가.
나의 경험. 무더운 여름날 가족과 함께 놀러간 계곡에서였다.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난 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물에 젖은 몸이 떨리도록 추웠다. 그때 갑자기 구름을 헤가르고 태양이 나타나더니 햇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태양의 따스함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 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283~284쪽)
⇨ 월든 호수는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고, 그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구절 같다.
4.
내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자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는 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고는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배가 떠가도록 맡겨놓으면 몇 시간이고 후에 배가 기슭에 닿는 바람에 몽상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일어서서 운명의 여신들이 나를 어떤 물가로 밀어 보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시절은 게으름 부리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이던 때였다.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들을 그런 식으로 보내기 위하여 오전 나절에 몰래 빠져나오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288쪽)
⇨ 나도 소로우처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보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는 경험을 하고 싶네. 자연에 몸을 맡기고 누워 있으면 기분이 어떠할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소로우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법한데, 자연과 함께 산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5.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290~291쪽)
⇨ 글의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소로우가 쓴 시인 듯.
6.
열차는 호수를 보기 위하여 멈추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러나 기사관사와 화부과 제동수制動手 그리고 정기승차권을 가지고 있어 이 호수를 자주 지나는 승객들은 호수를 보았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상상을 해본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 평온과 순수의 표본 같은 호수를 보았다는 것을 그 기관사는(적어도 그의 본성은) 밤에도 잊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 번밖에 보지 않더라도 이 호수의 모습은 혼잡한 보스턴의 거리들과 기관차의 검댕을 씻어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호수를 ‘신의 안약眼藥’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다.(291쪽)
⇨ 소로우는 평온과 순수의 표본 같은 호수를 보았던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본다고 한다. 비록 호수를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이들도 호수의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정화해 줄 것이라고 한다. 소로우에게 있어 월든 호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는 특별한 호수다.
7.
화이트 호수와 월든 호수는 지상의 커다란 수정이며 빛의 호수들이다. 만약 이들이 영원히 응결되고, 훔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들이라면 아마 제왕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보석으로 쓰기 위하여 노예들이 캐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수들이 액체 상태인 데다 그 양이 풍부하며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영원히 확보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코히누르의 다이아몬드’를 뒤쫓는다.(299쪽)
⇨ 이 글을 읽으면 호수가 크고 값진 보석으로 느껴진다.
소로우는 화이트 호수를 월든 호수의 쌍둥이 동생(297쪽)이라고 생각한다.
8.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300쪽)
⇨ 소로우는 자연만한 천국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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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묘사에 있어 미국 문학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통틀어서도 《월든》을 따를 만한 작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 및 주위 숲의 모습, 또 그 속에 사는 온갖 동식물이 참으로 생생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옮긴이의 말,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