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21장 상상의 힘에 관하여(189~206쪽)에서 발췌.



더러 공포에 질려 사형 집행인이 손댈 겨를도 없이 최후를 맞는 이들도 있다. 사실은 사면장을 읽어 주기 위해 묶인 몸을 풀어 준 것인데 오로지 상상만으로 지레 사형대 위에서 뻣뻣하게 굳어 죽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상상력이 흔드는 대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덜덜 떨기도 하며, 얼굴이 창백해지기도 하고 붉어지기도 한다.(190쪽)


⇨ 죽음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죽은 사람이 있다니이는 상상의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우리도 모르게 떠오른 얼굴 표정 때문에 숨기고 있던 생각이 훤히 드러나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들킨 일이 얼마나 여러 번인가? 그것들은 각기 저 나름의 정념을 가지고 있어, 이 정념이 우리 허락 없이도 그 기관들을 때로는 깨우고 때로는 잠재우는 것이다.(197~198쪽)



한 여인은 빵을 먹다가 핀을 삼켰다고 생각하자 목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끼는 듯 괴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목에 핀이 걸려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보기에는 부어오르지 않고 달라진 곳도 없었다. 어떤 총명한 사람이 목으로 넘어가던 빵 조각에 잠깐 찔린 것인데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판단하고, 여인에게 목 안의 것을 토하게 한 뒤 그 토사물 속에 구부러진 핀을 하나 슬쩍 던져두었다. 핀을 토했다고 생각한 여인은 금세 통증이 사라졌다.(201쪽)


⇨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플라세보를 썼을 때 환자가 진짜 약으로 믿어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일을 말한다. 


‘플라세보’는 실제로는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으로,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해 투여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이야기로, 자기 집에서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 어떤 귀족이 그로부터 사나흘 뒤 장난삼아 떠들기를, (음식 안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자기가 대접한 것이 고양이 고기로 만든 파이였다고 했다. 식사를 같이 했던 한 처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끔찍한 생각이 든 나머지 심한 위경련과 고열에 시달렸는데 그녀를 살려 낼 수가 없었다.(201쪽)


⇨ 이런 일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상상력의 힘은 신비롭다.  

 


매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매사냥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맴돌고 있는 솔개를 꼼짝 않고 바라봄으로써 오직 시선의 힘만으로 새가 아래로 내려오게 할 수 있다며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과연 그렇게 해내더라고 했다. 내가 인용하는 이야기들의 진위는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성실성에 맡겨 둔다.(203쪽)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사람들이 목격할 일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은 새를 훔쳐보다 둘이서 한동안 시선을 고정한 채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더니, 자기 상상에 취해 버렸는지 아니면 고양이가 지닌 어떤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린 것인지, 새가 마치 죽은 듯 고양이 발 앞에 툭 떨어져 내렸다.(203쪽)


⇨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기 위해 그런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또 나의 친정어머니가 목격한 일도 있다. 고양이가 전깃줄에 앉은 새를 쳐다보니 새가 도망가지 못하고 꼼짝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새가 가엾어 어머니가 고양이를 물러가게 하니 그제서야 새가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고양이가 새를 노려보니 공포를 느낀 새가 몸이 얼어붙은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혼자 있는 집에 날카로운 칼을 든 강도가 들어오면 겁에 질려 사람의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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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8-26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고양이는 블루투스나 무선 기능을 활용한 건 아닐까요.
아니면 와이파이라거나 모바일 데이터로 문자나 sns로 의사전달을 했을지도요.^^
페크님, 날씨가 많이 더운 주말이예요.
시원하고 좋은 8월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8-26 22:21   좋아요 2 | URL
ㅋㅋ글쎄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고양이가 새를 노려보면 새가 기절하는지 굴러 떨어져 고양이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냥 날아가면 될 것인데 말이죠. 참 신기하죠?
오늘 저녁에 나갔는데 확실히 덜 더워요. 밤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요. 머지않아 가을이 올 듯합니다.
서니데이 님, 남은 8월 잘 지내세요.^^


stella.K 2023-08-27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냉동차에 갇혔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 차는 냉동 스위치는 켜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얼어 죽을 거라고 지레겁을 먹었다고 하는데
인간의 상상이 놀랍다 싶더군요.
그걸 좀 더 긍정적인데 사용하면 좋을텐데 인간은 부정적인데
익숙하게 반응한다고 하더군요.

서재 지붕에 걸친 그림 좋네요. 사진 맞죠? ㅋ

페크pek0501 2023-08-28 11:56   좋아요 2 | URL
냉동차 이야기, 그럴 듯하네요. 밤에 숲에서 흰 고무봉지가 날아가는 걸 보고 소복 입은 귀신이 날아가는 줄 알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봉지 하나에도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게 인간인 거죠.
대체로 인간은 기쁨은 잠시, 불만은 오래 품잖아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끌리는 모양이에요.
사진은 남이섬에 가족이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제가 노트북에서 편집(수정)을 했어요.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그림처럼 보이려고 부옇게 보이게 만들었어요. 두 나무가 주인공이고 저수지 물은 배경이에요. 수영장 사진이 이젠 추워 보일 것 같아서 바꿨어요, 새벽엔 이불을 끌어당길 만큼 서늘해졌어요. 굿 데이~~^^

모나리자 2023-09-02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난 두께의 책이 세권이나 되는 시리즈군요!
블로그에서 많이 보았는데 많이 읽으셨네요. 고양이와 새 이야기를 보니 동물이나 사람이나 두려움이나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기하네요.

시원해져서 너무 좋아요. 살 맛 나네요.ㅎㅎ
9월에도 글쓰기 화이팅이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9-03 16:10   좋아요 1 | URL
세 권 다 구매했어요. 두꺼운 벽돌 책의 든든함을 좋아합니다.ㅋㅋ
다른 책 두 권 정도 완독하면서 세이노와 에세를 조금씩 읽을 계획이에요.
저도 고양이와 새 이야기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처음 보고 신기했어요. 그 고양이만 특출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몽테뉴의 책에도 그 얘기가 있네요.
오늘 아버지 납골당에 다녀왔는데 한여름 같았어요. 그래도 집에 오면 견딜 만한 더위이니 여름이 다 간 듯합니다. 모나리자 님도 글쓰기 파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