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미는>은 영미권 작가 25명의 산문 32편이 담긴 책이다.
32편의 산문 중에서
알도 레오폴드의 ‘산처럼 생각하기’(102~105쪽)에서 발췌함.
그 시절에는 늑대를 죽일 기회를 그냥 지나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금세 늑대 무리에게 총알을 쏟아댔다. 정확하게 쏜 게 아니라 흥분해서 마구 쏘아댔다.(103쪽)
그때 나는 젊었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 좀이 쑤셨다. 늑대가 적어질수록 사슴이 많아질 테니 늑대가 없는 세상은 사냥꾼 천국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초록 불꽃이 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늑대도 산도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104쪽)
나는 그 뒤 여러 주州가 차례차례 늑대를 소탕하는 것을 지켜봤다. 늑대가 사라진 많은 산의 모습을 보았고, 사슴들이 지나다니며 새로 만든 미로 같은 오솔길로 주름진 남사면도 보았다. 먹을 만한 덤불과 어린 나무는 모두 사슴에게 뜯어먹혀 비실대다가 죽는 모습도 보았다. 먹을 수 있는 나무들의 이파리가 안장 높이까지 죄다 사라진 모습도 보았다 누군가 하느님에게 가지치기 가위를 쥐어주고 가지치기 말고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늘어나리라 기대했던 사슴 떼는 결국 지나치게 늘어난 탓에 굶주렸고, 굶어죽은 사슴의 뼈들이 말라죽은 세이지 줄기 옆에서 탈색되거나 허리께까지 헐벗은 노간주나무 밑에서 썩어갔다.(104쪽)
사슴 떼가 늑대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처럼 산도 사슴 떼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산이 느꼈던 공포가 더 정당한지 모른다. 늑대가 쓰러뜨린 사슴 한 마리는 2~3년 사이에 다른 사슴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사슴 떼가 너무 많아져 허물어진 산은 수십 년이 흘러도 복원되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략) 산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척박한 곳이 되었고 우리의 강물은 미래를 바다로 쓸어가고 있다.(104~105쪽)
⇨ 사슴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를 죽였더니 사슴이 많아져서 먹이 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슴들이 생겼고, 사슴 떼가 너무 많아진 탓에 나무는 모두 사슴에게 뜯어 먹혀 허물어진 산이 되어 버렸다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늑대를 마구 죽여 먹이 사슬의 불균형을 초래한 셈이 되었다.
한쪽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볼 때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총에 맞아 죽는 늑대는 가엾지 않다는 말인가. 사슴은 가엾다는 생각, 늑대는 사슴을 해치므로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인가를 깨닫게 한다. 1949년작 산문이지만 이 글의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여 생각할 거리를 준다.
다음 글은 ‘시사위크’에서 가져왔다.
『한반도에서 늑대가 멸종하면서 인명 및 가축 피해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시작됐다. 바로 생태계 먹이사슬의 파괴였다.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는 토끼, 멧돼지 등 하위계층의 동물 숫자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즉, 늑대의 멸종은 먹이사슬 하위계층 동물의 급격한 개체 수 증가를 의미한다. 최근 국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멧돼지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늑대 멸종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멸종저항보고서㉕] 한국 늑대와의 공존을 기약하며
기자명 강준혁 기자 입력 2023.01.06.
출처 : 시사위크(http://www.sisa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