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고 싶은데 단골 미용실이 쉬는 날이라서 다른 미용실에 들어갔다. 그곳 원장은 머리를 자르기 전에 거울로 내 단발머리를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머리 어디서 자르셨어요? 오른쪽과 왼쪽의 머리 길이가 다르잖아요. 잘못 자른 거예요.”라고.
나는 “아, 그래요.”라고만 답했다. 그 원장은 내 머리를 잘랐던 미용사의 기술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미용 실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를 그 미용실에 다니게 만들려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에 이런 글이 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교대’에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어야 하니, 내가 내 후임자에게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나의 전임자에게 하지 않아야 원망이 적을 것이다. 전임자의 흠이 있으면 덮어주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또 죄가 있으면 도와주어 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매달 ‘반상회’라는 게 있었다. 반상회가 열린 그 집에 들어서니 거실에 운동 기구가 있었다. 러닝머신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새것으로 보였다. 모여든 이웃들은 그걸 보며 집주인에게 한마디씩 했다. 가격이 얼마인지, 매일 운동하는지, 이걸로 운동하면 과연 살이 빠지는지 등등. 한데 갑자기 누군가 그 운동 기구의 단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무릎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면서 바꿀 수 있으면 다른 상품으로 바꾸라고 말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집주인은 기분이 나빴는지 표정이 좋질 않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가 안구 건조증이 있어서 컴퓨터 화면을 많이 보면 눈의 피로를 느끼는데 안구 건조증 예방에 블루베리가 좋다는 걸 알고 블루베리 과즙 한 박스를 구입한 날이었다. 그것을 들고 오다가 집 부근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렇게 말했다. “블루베리를 사셨군요. 요즘 가짜가 많다는데.”
나는 미소만 짓고는 그냥 돌아섰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요, 이미 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가짜일까 하고 의심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블루베리를 먹으란 말인가요? 설마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탈무드>에 따르면 다음 두 가지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 첫째, 어떤 사람이 이미 사 놓은 물건이 어떻냐고 물을 때다. 설령 물건이 나쁘더라도 좋다고 말해도 된다고 한다. 둘째, 갓 결혼한 부부를 만났을 때다. 이때도 “부인이 아주 미인이십니다. 두 분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라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겠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이든 배우고 나면 바로 자신에게 유리하니 열심히 배워 두라는 말이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우면 남도 이롭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남을 해롭게 한다고. 예컨대 배려를 배우면 타인을 이롭게 하고, 배려를 배우지 않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할 때가 있었으리라.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음을 꼭 기억해 놓고 말할 때 신중하기로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숱한 잘못과 실수를 범하며 산다. 오늘 나만 해도 그렇다. 샤워하면서 물을 많이 썼으니 지구의 소중한 자원을 소비했다. 쓰레기를 많이 버렸으니 지구를 더럽혔다. 산책하면서 땅바닥의 개미를 밟았으니 귀한 생명을 죽였다.
누구나 살면서 물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수 없고, 개미를 밟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것들은 피치 못할 일들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삼가는 것은 노력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