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딸아이의 목에 혹이 생겨 점점 커져서 무슨 병인가 싶어 큰 병원을 몇 번 찾았는데 어느 날 의사가 진찰하더니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암센터에 가서 다음에 병원에 올 날을 예약하란다. 딸아이와 나는 암센터에 가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암이 의심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녀는 그 병원 암센터로 향하면서 걱정과 두려움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예약한 날에 딸아이가 조직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이 주일 뒤에나 알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건 우리한테 이 주일 동안이나 두려움에 떨며 지내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으니.

 

 

그 이 주일 동안 딸아이와 난 입맛을 잃었으며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을 것이다. 단 하루도 ‘암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걸 마음이 지옥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주일 뒤에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다행히 암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안도했다. 이때 난 지옥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제 딸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며칠 전 사랑니 때문에 아파하더니 사랑니를 뽑기 위해 치과 예약을 해 놓았다고 말한다. 사랑니를 뽑기 전에 맞는 마취 주사가 되게 아프다고 친구한테 들었다는 말도 늘어놓았다. 아플 게 걱정되냐고 내가 묻자 딸아이가 답했다. “아니, 옛날에 암센터도 갔다 왔는데 뭐.”

 

 

암센터 일로 딸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졌구나 싶었다.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게 그때의 고통스런 느낌밖에 없다면 참 아쉬운 일이다. ‘마음이 힘든 시간’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앞으로 걸을 인생길에서 무슨 일을 겪든 잘 버티게 해 준다면 ‘마음이 힘든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감기로 인해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가 있는데 아픈 주사라고 할지라도 나는 겁이 나지 않는다. 애를 낳아 본 경험도 있는데 주사 따위는 출산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또한 살아오면서 ‘마음이 힘든 시간’을 여러 번 가졌다.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가질 때가 있으리라.

 

 

나는 바란다. ‘마음이 힘든 시간’을 가질 때마다 그 시간이 그저 마음이 힘든 시간인 것만 아니고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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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도 있었는데’와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 중에서
어떤 제목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으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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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19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이 더 좋은데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많이 힘들지요. 많이 상상하게 되니까요.
큰일 없으셔서 다행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오늘은 태풍 때문에 많이 덥고, 습도가 높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7-20 17:43   좋아요 1 | URL
긴장되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건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검사를 하면 결과가 바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날씨가 덥지만 하루하루 여름이 흘러 가고 있다,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8월 8일이 입추던데요, 그날만 와도 폭염이 없지 않을까 예상하며 기다립니다.
늦여름을 좋아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9-07-21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태풍은 소멸했다고 하지만, 남쪽은 피해가 크다고 하고,
주말 내내 습도 높고 흐리고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다음주는 많이 더울 것 같아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7-24 22:46   좋아요 1 | URL
서울은 그동안 비가 얼마 오지 않았는데 오늘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이번 장맛비가 끝나면 폭염이 오겠지요. 그래도 다른 여름에 비해 이번 여름은 덜 더운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요.
가뭄이 있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한곳에 폭우가 쏟아져서 비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골고루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라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시길...

cyrus 2019-07-22 0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각한 병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이 엄청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겠어요. 오히려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저는 군인으로 살아왔던 기간이 살면서 가장 느리게 느낀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악몽이 되어 나타날 정도로 과거를 못 잊고 있어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9-07-24 22:4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얼마나 고생이 될지 짐작은 합니다. 들은 얘기가 많아서요.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껴지죠. 지루하거나 힘든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고 컴퓨터를 하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말이죠. ㅋ
주위를 살펴보면 힘든 일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저마다 자기 몫의 힘듦을 견디며 사는 거죠.
어디에 집중하느냐의 문제라면 좋은 쪽에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19-07-23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사 결과가 나오는 건 오래도 걸리는군요 아니 그냥 보내는 두 주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두 주는 다르겠습니다 큰 병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어떤 일을 겪고 나중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떤 일은 또 일어날까봐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건 마음이 단단해지는 일과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 생각하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19-07-24 22:53   좋아요 1 | URL
그렇죠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역효과가 날 수 있지요.
저도 힘든 일을 끝내고 나면(예를 들면 친정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다가 퇴원하는 경우.) 하나 해 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더군요. 대체로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불행의 총량이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저의 편견 때문이죠. 늘 행복하지도 않고 늘 불행하지도 않다고 보는 거죠.
맨끝에 쓰신 닉네임 두 자가 멋지게 보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