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과 기도 고맙습니다. 저는 5월 17일을 시작으로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싸우다는 표현은 제게 과분한 것입니다. 저는 역사가 보여준 투사가 될 여력도 능력도 없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지성인들이 깨어있길 원합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논문자격시험이라고 불리는, 종합시험. 이 시험의 비용이 6만원입니다. 한 분야당 2만원씩인데요. 제가 며칠 동안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원을 조사한 결과, 학과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거의 이 비용을 안 내고 시험을 보고 있었습니다.  

또, 논문을 쓰기 위해 부득이하게 정식 학기를 초과한 경우, 원생들이 등록을 해야 하는데요. 이 비용도 상대적으로 엄청난 고비용을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본 타 대학원 원우들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줄 정도였으니까요. 

 학교 측에서는 제가 소속된 대학원 분류 체계가 전문대학원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제가 학칙을 보니, 이 종합시험의 비용 납부에 관한 내규 조차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는 이 전문대학원은 사람들의 외부 인식과 달리, 풀 타임으로 다니는 원생들이 많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수업을 듣는 곳이 전문대학원이라는 그 이미지가 주로 있지만, 예외적 상황이 제가 다니는 곳에 발생하고 있지요.) 그동안 원생들은 이 사실조차 공부한다고 제대로 찾지도 않고, 그냥 내고 다녔는데, 분노하신 분도 계시고, 물론 그냥 학교에서 내라고 하면 내는거지 라고 반응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종합시험비용을 거두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의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이 드러나(이 상황에 대한 익명의 제보자들의 고마운 증언으로 인하여), 지금은 제가 보기에 속된 말로 '빼도 박도'못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부조리들이 있으나 그 내용량을 보면, 이 페이퍼 스크롤 바가 너무나 길 정도로, 대학원 사회는 전반적으로 썩어 있었습니다. 힘을 빌리기 위해 연락한 총학생회는, "아니, 학교가 내라고 하는데, 학생이 어쩔 수 없지요"라며 제 행동을 이상하게 인식하는 발언을 하더군요. 학생이 학생의 처지를 모르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총학생회가 그러니 더 암울하지요)

저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원 등 국립대학원 및 주요 사립대학원의 총학생회 간부 및 지인, 원우들과 접촉하여,  제가 다니는 이 곳이 얼마나 부당하게 학생들에게 납부 비용을 청구하고 있는지 글을 올리는 과정입니다.  

교수들은 정작 힘들게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원우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대학원을 포함해 제가 조사를 하러 연락을 취했을 때, 일부 교직원들은 학생이 왜 이런 걸 물어보냐고 오히려 저에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이럴수록 신이 나고 힘이 나더군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가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고맙습니다. 

관심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힘이 됩니다. 

- 얼그레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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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5-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정은 잘 모르지만...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 시험비를 따로 걷는 게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건투하시길 바랍니다. 결과가 무엇이든 문제제기만으로도 이긴 싸움인 거 아시죠?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7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공감 고맙습니다. 저도 이해가 안 가더군요..몇 년전부터,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잘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무엇이든 문제제기만으로도 이긴 싸움인 거 아시죠? 라는 말..감동적입니다.(진심) (나중에 써먹어도 되지요^^?)

saint236 2010-05-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무관심이 제일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확산되는 분위기인 것 같아. 힘내려고 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욧

비로그인 2010-05-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싸우는 방법이 홀로 단식을 하거나 그런 거라면 경험자의 조언을 듣고 참고하시는 게 좋겠네요.
다행히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함께 싸워나갈 동료들을 규합해야지요, 혼자는 너무 외롭잖아요?
아무튼 몸은 해치지 마시고 꼭 승리하시길...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9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제가 워낙 미약한 존재라, 아직 극단적 방법까진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저는 투사가 될 자격도 없는 걸요. 최대한 예의있고, 논리적으로 일단 글을 통해 접촉하는 중입니다. 그것이 안 될 경우엔. 제가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들을 꺼내야지요..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지만, 후회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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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소속 대학원에 느끼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나름의 보이콧을 할 거라고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틀의 조사 과정을 거쳐, 데이타를 만든 후, 오늘 학교 게시판에 제 소신을 전하고, 저번 항의처럼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표했습니다. 

거창하게, 개혁과 저항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여력도,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내가 공부하는 공간 안에서,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하는 것, 그리고 

나를 소비자 취급하는 대학원 사회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오늘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대화를 촉구한 것에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대학 사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정작 그 안에서 늘 대학원은 주변화되어 왔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늘 마음걸렸던 걸, 부족한 한 사람이지만, 소통의 가능성을 믿고, 묵묵히 이겨내보려 합니다. 

저를 알고 있는 분들, 기도 부탁드립니다. 

제 마음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교수와 제자의 위계,로 인해 침묵하지 않도록. 그냥 내고 다니면 되지라는 다수의 안전함/편안함/무관심과 친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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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2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05-1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1   좋아요 0 | URL
화이팅입니다! 아자!

비로그인 2010-05-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용기와 희생이 필요한 일을 시작하셨군요.
종교가 없어 제 기도는 무용지물이겠고 다만 마음속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2   좋아요 0 | URL
응원 고맙습니다. 정상적으로 논문도 쓰고, 책도 다시 읽기 시작하고, 이제 저도 좀 챙겨가며 하려구요.

비로그인 2010-05-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은 아닐까...걱정이 많이 됩니다.
제가 얼님을 안지 얼마 되지 않지만...줏대와 소신이 있는 분이라 강하게 느꼈던 바...
걱정 안할랍니다.
지치지 마시고 소신을 위해 끝까지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2   좋아요 0 | URL
지치지 않도록 밥도 꼭 챙겨먹고 합니다. 마기님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2010-05-18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2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8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직 미약한 존재라, 해볼 때까지 해볼려구요. 응원 잊지 않겠습니다.

비로그인 2010-05-1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빌어드립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번 한 주, 용기란 말이 이렇게 소중한 건지 몰랐어요.

2010-05-18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2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8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과시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주눅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공부한다는 것을 정상과 비정상의 양분된 구획 속에서 모호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차라리 상대하지 않겠다. 차라리 내가 적대로 삼는 것은, 겸양된 자세와 오만한 태도를 모호하게 감춘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존재, 고민하는 존재인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음을 공유하는 사태에 대해, 그것 자체를 오만함으로 연결짓는다. 그들에게 겸손은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한다는 것을 감춘다는 자세에 기인한다고 믿는 것인데, 나는 그 자세에 동의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동의하는 것은, 내가 공부하는 것 자체에 대한 열의와 신념만큼, 그것에 반대되는 입장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다시 고민해보는 태도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늘 격문의 태도로 글을 써 왔다. 매번 선언하고, 매번 좌절하고, 매번 재선언하면서, 시대와 함께 했다. 그는 정말 영화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난 정말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나는 정말 공부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유감이나,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입술에서 어떤 말 한 자라도 꺼내기 위해, 매번 선언하고, 매번 좌절하고, 매번 재선언을 할 수밖에. 

공부의 상처는 내 몫이나, 

공부의 열매는 '당신'의 것이기를. 

결국 그것이 내겐 '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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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가 무대위에서 죽고싶고, 운동선수가 필드에서 죽고싶듯이...공부를 위해서 죽을 수 있진 않겠지만, 죽을때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실것 같다는 생각이....
ㅋㅋ아녜요?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6   좋아요 0 | URL
그러면 좋지요^^ 근데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려합니다.

조선인 2010-05-1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의 열매가 당신의 것이기를... 그 격언을 잊고 살았네요. 반성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37   좋아요 0 | URL
저도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천이 쉽지가 않네요. 언젠가 나도 모르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길 희망하며 공부합니다.
 

엄용주(1990.1). 대한민국 비디오 10년 약사. 비디오플라자.  288~291.

288쪽 

79년 가전사가 제10회 전자박람회를 통해 VTR을 선보이게 되면서 부터, 즉 80년 부터 초기 몇년간의 비디오 산업은 소위 하드에 의해서 주도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는 단지 가전 3사의 '기술축적'이라는 의미가 컸을 뿐 시판시기나 VTR의 적극적 활용들에 관해서는 포르노 테이프들이 대부분이었다. 

'83년은 VTR이 어느 정도 자기자리를 찾게 된다. 가격이 60만원대로 내려가면서 품질도 충실해지기 시작했으며,30만원대의 단순재생기능만을 내세운 VTR이 나와 비디오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해이기도 하다.  

VTR의 자체적인 기술개발 측면에서 보면 '83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무선리모콘이 '84년에 본격적으로 채용되었으며 '85년 음성다중의 대응책으로 스테레오 VTR이 발매 되었다. 이 기능은 가격이 비싸 대중의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으나 고급기능의 탑재라는 면에서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289쪽

'86년 부터는 화질보상을 위해 HQ방식의 채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 '87년 디지탈 VTR의 개발로 한국 VTR업계는 끊임없이 기술의 진보를 가져온 셈이나 몇몇 대중화된 기능을 제외하면 고급기종의 제품들은 그 활용도가 극히 미약한 편이었다. 

소프트산업의 태동 

289쪽 

VTR이나 비디오 소프트에 대한 보급율이 미약했던 초창기, 비디오는 보통 연극이나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고 토론을 하거나 기업의 교육,홍보적 측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80년초 비디오 테이프의 국내생산이 시작되면서 '80년 9월,세신영상,한국비디오,삼화 등이 국내 최초의 비디오 프로덕션으로서 문공부에 등록을 하게 된다. 이 당시의 출시 프로그램들은 중국식 무협물이나 B급 외화, 방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판권료는 쌌지만 판매시장이 협소했기 때문에 프로테이프 1개당 가격은 지금의 1만원대 보다 훨씬 비싼 2만원 선에서 거래 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프트가 풍부했지 못했으므로 오히려 복사품이 활개를 쳤고 프로 테이프 시장보다는 공테이프 시장이 더욱 활성화된 상태였다. 때문에 몇 개 되지는 않는 비디오 숍들도 정품은 거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진열용'으로 사들였을 뿐 비품 위주의 장사를 했다. 이런 불법 비디오 테이프의 유통은 대개 미군 PX나 그들을 상대로 유흥업을 벌이는 군소비 지역을 통해 흘러 나오게 되었는데 이 테이프들이 복사가 용이하다는 잇점으로 불법 제작자들의 손에 의해 대량 복사되어 대중에게 파고 들기 시작했다. 

당시의 비디오숍은 지금처럼 신용대여가 아니라 교환제로 운영되었다. 즉 초창기에는 소프트가 풍부하지 못하고 테이프의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고객이 일단 비디오 숍에 갖다추고 빌려봐야 했는데 덕분에 비디오 숍에서 지금과 달리 테이프의 판매수익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디오시장의 변화 

저작권법의 발표를 앞두고 국내 비디오 업계엔 대대적으로 '불법 비디오'에 대한 수거운동이 벌어졌는데 그동안 볼만한 정품프로의 부재에 의해 소위 '비'자 테이프에 많은 것을 의지해 있던 비디오 숍에선 초비상이 걸렸다.'불법 비디오 수거'는 국내 비디오 시장의 정화란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으나 외국메이저들이 들어오기 전, '시장청소를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등 이에 따른 집을 또한 만만치 않게 국내 비디오업계를 긴장시켰다. 불법 비디오의 수거과정에서 당국은 불법 비디오 전부를 마치 '불법 포르노'처럼 설명했으나 사실 불법 테이프 유통량의 상당한 수가 극장용 개봉 영화이거나 아직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외국의 유명영화인 경우가 많아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 프로들의 재정비가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 

291쪽 

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커진 비디오시장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비디오 시장은 엄청난 '사업확장'을 한 셈이다. VTR의 보급율이 2백60만대를 넘어섰고 비디오 프로덕션은 1백여개를 헤아리고 있다. '87년까지만 해도 최대 판매량이 1만개를 밑돌던 것이 '88년을 기해 1만5천~2만개까지 팔려 나간다. 이는 그만큼 올림픽을 계기로 VTR이 많이 팔렸고 그로 인해 '비디오를 빌려보는 사람 또한 꽤 많아졌음'을 시사해준다. 

비디오문화 10년, 얻은 것과 잃은 것 

초창기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비디오에서 가장 현격히 달라진 점은 바로 '베타'의 사장화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VTR은 처음 대한전선이 소니와 기술협정을 맺고 베타방식을 생산하게 되었고 금성과 삼성은 VHS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 후 베타 VTR은 대우로 넘어가 계속 생산이 되었는데 베타와 VHS는 각기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보급망을 넓혀왔다. 특히 초창기에 VTR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베타의 비율이 많았으며 강남의 경우 오히려 베타 테이프의 비율이 VHS보다 많았을 정도, 그러나 마켓팅의 열세 때문인지 점차 VHS가 시장을 잠식, 대우에서도 '86년부터 VHS를 생산하기 시작하더니 2년전 부터 서서히 베타의 시장이 사장되어 버렸다. 현재는 녹화를 위한 공테이프에는 베타가 나오지만 프로테이프는 나오고 있지 않은 상태다. 

또 한가지 비디오 산업의 성숙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와 비디오의 '상호접목'이다. 초창기 영화업계에서는 비디오가 영화산업을 좀먹는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으나 점차 비디오산업이 커짐에 따라 영화쪽에서는 비디오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 하나의 연계산업으로서 인정해 나가고 있고 많은 영화인들이 실제로 비디오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창간기념특별좌담 : 비디오 산업관계자 6인의 연석방담 "생각나는대로 거리낌없이 아낌없이 '주고 받읍시다' .비디오플라자(1989.12) 

128쪽

한순호(SKC 소프트사업부):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후보문제가 적지않은 고민입니다. 국내에서 개봉된 작품들이야 지명도가 있어 별 문제가 없지만 미개봉 작품 중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런 작품들이 널리 소개되지 못하고 반품이 속출한 때는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129쪽 

사회 : 이것은 결국 영화가 비디오가 상호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경우 감명 깊었던 작품들을 재감상하기 위해 비디오로 보거나, 비디오로 보고 좋은 작품을 보다 명확하게 감상하기 위해 영화관을 다시 찾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영화의 현장감과 영상효과가 비디오로 감상할 때에 비해 훨씬 큰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국내의 경우 아직 영상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영원(금성사 영상제작과): 아직 우리의 경제수준이 비디오로 본 영화를 극장에 가서 다시 감상할 만큼은 못되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자 : 비디오 시장에서도 철저한 마케팅 전략은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데 국내에서는 이것 역시 아직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경우 영화 'ET'가 비디오로 출시되는 것에 맞추어 36인치 TV가 개발,시판되지 않았습니까? 

이승철(삼부프러덕션) : 대작의 경우 비디오로 감상을 하면 음향효과나 영상효과가 떨어진다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함이겠죠.시장운영이나 판매전략이 그렇게 철두철미 하니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죠. 

한순호 : 우리의 경우 시장조사에서만 주먹구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윤의 심의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승철: 사전,사후로 심의가 나누어져 있는 현행제도에서 사후심의와 사전심의의 결과가 판이하게 다를 때가 비일비재 합니다. 심지어는 외화의 경우 극장상영이 안되는 작품이니 비디오 역시 허가할 수 없다는 획일적 행정을 펴기도 합니다.  

--------------------------------------------------------------------------------------------------- 

전경희(1985.6) 비디오의 속과 겉을 벗긴다 : 한국의 비디오 현주소.154~157. <월간 비디오>

가정에서 

155쪽 

한편 이런 비디오 필름이 혼자서 몰래 보는 내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환한 곳에서 공개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블랙비디오의 의미에서 환한 비디오, 화이트 비디오의 생각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몰래 몰래 보는 것때문에 어른 스스로가 비디오를 나쁘게 생각하는 데 참 재미있는 내용도 많은 것 같다."며 학교에서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에도 가져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박정신(홍익대 3년)양은 이야기 한다. 

영화사에서 

155쪽 

"비디오가 옛날 추억의 영화를 많이 카피하여 시중에 파고드는 카피문화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영화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에서 디스크와 테이프가 공존하듯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협력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영화 감독 이미례 씨는 이야기했다. 

비디오숖에서 

157쪽 

3일간 빌려주는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옆집,앞집으로 돌려보고 있어 이용율이 더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 

<좌담> 영화와 비디오의 랑데뷰. 1985.5 <월간 비디오> 

63쪽 

이황림(영화감독.합동영화사 기획실장) : (전략)..영화예술의 정수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비디오를 통해서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느냐는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영화를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어차피 비디오는 영화의 동생이 아닌가 즉 서자 취급하는 것 같은 매체로써 좀 건방진 마음도 있어요.(후략).. 

박평화(삼부프로덕션 대표) : (전략) 그쪽에서는 침투라고 표현하시겠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비디오는 모방한 영상매체로 종전 영화가 했던 기능을 영화로 보는 팬들에게 그 영향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거든요. (후략) 

이황림 : ..(전략)'비디오산업은 곧 방송이다'라는 문제 하나하고 비디오산업이 영화와 공존할 수밖에 없지만 비디오가 갖고 있는 장르는 확실히 따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분재나 육아법 대한 프로그램을 극장에서 돌려봤자 어디 관객이 들겠읍니까.비디오는 어떤 면에서 일상적이고 교육적인 영화가 침해할 수 없는 어떤 범위가 있는 것을 새삼느낍니다. 앞으로 그러한 문제들이 비디오 하시는 분들이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하영준(1998.2). 기획취재-비디오산업. 총체적 난국 속 비디오 업계의 살아남기.<비디오 무비> 118~120.

118쪽 

셀스루 시장에 거는 기대 

: "렌탈용 비디오 시장의 불황을 판매용 교육물, 기획물 비디오로 이겨낸다는 것이다." 

119쪽 

감소 추세의 비디오 대여점 사업 

: 비디오 대여업계에서 추산하는 매출액과 대여점 수의 추이를 보면 지난 94년 매출액은 3천억원에 달했으나 96년은 2천8백억원,97년은 2천억에서 2천2백억원으로 감소하였고 대여점수도 90년 약 3만5천개에서 94년 2만8천개,96년 2만3천개,97년은 1만5천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항간에서는 비디오 산업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떠돌 정도로 비디오 시장의 축소는 심각한 현황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비디오 대여점은 특색이 없다. 최근 출시된 대박 프로 중심으로 비디오샵의 작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120쪽 

비디오 대여점의 문제점 - 빅뱅의 전국 확산 파문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비디오 대여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여료 덤핑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2천원 하던 대여료가 균형을 잃고 어디에서는 500원,어느 곳에서는 300원,심지어 울산의 어느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구프로는 10원을 받는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다. " 

<비디오 무비>(1998.1) 98년 국내 비디오 산업 전망.  

124쪽.  

비디오 업계의 네 가지 난제 

첫 번째는 프로그램의 원활한 수급이다. 모든 기업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그 여파가 영화계에도 미치고 있는 지금 프로그램의 공급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비디오 대여 시장의 침체 시기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세 번째는 판매용 비디오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현재 월트 디즈니의 판매용 만화 비디오는 안정적인 판매망을 구축했지만 일반 극영화 비디오의 판매는 극히 미약한 상태. 

125쪽 

비디오 샵 영화 안목 높여야 한다 

"비디오 샵은 단순히 슈퍼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공급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업주들이 영화에 대한 안목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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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길라잡이>(1999.6)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어떻게 달라졌나. 114. 

114쪽 

5월 9일부터 발효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지난 5월 15일 확정,공포되었다. (중략) 비디오업계의 큰 변화로는 비디오 대여점의 영업 시간이 전면 자율화되었고, 기존 4등급제에서 3등급으로 간소화된 점, 비디오물의 수입 추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각 업종별 진흥위원회 설치 등을 들 수 있다. 

이원우(1997.12)'97 비디오 업계 달군 핫 이슈 퍼레이드 - 통합과 구조조정에서 청소년 보호법까지 -  <비디오 무비>

117쪽 

CIC, 9000원대 극영화 셀스루 내놓아 

"렌탈시장의 한계와 끝을 모르는 비디오 시장의 불황. 이에 따른 위기에 맞서 업계 공통으로 제시하는 대안중 하나가 셀스루 분야다. 국내 셀스루 시장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기획물, 아동용 교육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극영화 셀스루는 극히 미미한 실정.(중략) 극영화 셀스루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중에는 여러 가지가 '아무때나 반복해서 볼 만한,', 또는 소장가치가 있는 타이틀의 부족(117) 과 비싼 가격문제가 주로 거론되어왔다. 특히 가격문제는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사안. 이럴 때  CIC가 지난 10월 극영화 셀스루를 파격적으로 테이프 1개당 9,900원에 판매하기로 해 큰 주목을 끌었다." 

119쪽 

7월 1일, '영상 말살법' 청소년 보호법 발효 

..(전략)..이 법에 의해 개정된 이름 자체가 '청소년 출입 제한 업소'가 아니라 '청소년 유해 업소'로 너무 광범위하고 게다가 비디오 대여점이 어째서 '청소년 유해업소'인지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이전에도 청소년들을 음란물이나 폭력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은 음비법을 비롯해 형법의 음란물 유포죄,청소년 기본법, 미성년자 보호법 등 10여개나 있었다. 문제는 단속할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몇 업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체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앞세운 법을 새로이 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 더욱이 청소년 범죄의 주범이 만화나 영화,비디오 등의 영상매체라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 법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막고 심하게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청소년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말살하는 법이라는 얘기도 있다." 

<비디오무비>(1997.12). '97년 마케팅 아이템 점검 -사전주문제에서 대규모 타이 인 프로모션까지- 

1월 : 1월은 뭐니해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달. 비디오 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프로모션에 눌려 다른 작품들은 기를 죽인채 한 달을 보내야했다. 출시 전과 후로 나뉘어진 이 프로모션은 총 10여개 회사가 참여했고 70억원 규모의 광고 프로모션이 걸린 메가톤 급,대우전자와 해태제과. 농심 켈로그등이 참여했고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영화답게 '현실로 다가오는 외계문명전'에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밖에 카메라, 랜턴 고급 탁상시계, 다이어리 등을 선물로 내건 사전 주문제와 심야출시를 실시했다. 판매량은 13만 5백장. 

<로드쇼>(1994.3). 홀드백 기간 단축에 대하여 . 273쪽 

'홀드백'이란 영화가 개봉한 후나 종영한 뒤에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의 공백 기간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홀드백 기간이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직배영화사들이 들어서면서 홀드백 기간은 1년이었다. 다시 말하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지 1년 뒤에 비디오테이프를 출시하도록 영화사와 비디오회사가 계약한 것이다. 최근 들어 그 홀드백 기간이  차츰 줄어 3개월까지로 축소되어 영화계와 비디오업계 간의 찬,반 양론이 일고있다. 영화계는 홀드백 기간의 단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홀드백 기간을 3개월로 잡으면 지방상영관까지 영화를 돌리기 전에 비디오가 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사로서는 큰 손실이며 지방업자들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중략)영세한 영화사들은 비디오사들의 자금줄에 매달려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야박하며 기간을 더 늘여야한다는 것이 영화사들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비디오업계는 반대입장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한달만에 종영되는데 비디오가 1년이나 지나서 출시되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중략) 홀드백 기간은 영화사와 비디오사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된다. 그러나 올해부터 프린트 벌수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영화유통기간은 더욱 짧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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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1990.1). 비디오영화의 제작 실태. <영화>128호. 

비디오영화 제작, 이유있다  

39쪽 

'A급외화의 더블'이라는 우리 영화가 공급에 비해 수요과잉으로 판권료가 1년반-88년 중순에 1천만원 선이었던 것이 89년 11월 현재 2천5백~4천만원 선-사이에 급격히 인상되어 영화의 비디오 판권구입은 설상가상격으로 난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로써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 6개월~1년의 비디오 홀드백 기간도 프로덕션의 자체제작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제작 이전에 이미 영화사에 판권료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극장에 개봉이 되고서도 6개월~1년 동안 비디오로 출시할 수 없어 거의 2년동안 거액의 자본이 묶여 있다는 것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중소 프로덕션들에게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산머루>의 반향. 16MM 제작.  

40쪽 

극영화의 제작비가 1억원 정도라면 비디오영화는 이것의 15~25%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 

이연호(1990.1).홈비디오를 통한 영화시장의 확대.<영화>128호. 

48쪽 

최근 비디오업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비디오영화 제작붐을 혹자는 '16밀리 영화의 비극','16밀리 정신의 탈선'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16밀리 영화가 35밀리 영화의 상업성에 반기를 들고 철저한 문제의식이나 작가의 주관을 반영하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으나 한국에서는 가장 상업적이며 몰작가의식의 변형된 형태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50쪽 

비디오그램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극장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홈비디오로서 성공하여 극장흥행의 적자를 메꾸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물론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한 B급, C급의 영화라 할지라도 홈비디오로 성공하는 율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자 비디오 수익만을 노려도 넉넉할 만큼 영화산업이 안정되었다. 이와같은 현상에 대해 헐리우드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영화사업은 극장흥행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되었다. 제작사는 극장흥행에서 실패한 영화나 심지어는 극장에서 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로부터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욱 더 많은 영화들이 홈비디오로부터 거두어들일 수익의 가능성 때문에 제작된다." 

50쪽-51쪽 

한편 비디오소프트의 활성화가 극장용 영화흥행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했던 당초의 우려와는 반대로 극장용 영화시장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추세를 보이자,헐리우드 영화사들은 극장용 영화시장의 보호를 위해 마련한 비디오그램의 제작유보기간을 점차 단축시키고 있다. 이것은 극장용 영화에 대한 광고 및 판촉효과가 직접 비디오의 판매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51)고 때에 따라선 극장용 영화의 판촉을 위한 캠페인용으로 개봉전에 비디오를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비디오가 극장흥행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 및 흥행 패턴의 변화 

51쪽 

홈비디오를 통한 영화의 시장확대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의 기존 영화제작양식 및 영화의 흥행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는데,이와같은 변화의 양상은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영화형식의 변화이다. 영화제작자들은 비디오시장을 의식해서 기존의 극장용 영화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4:3에서 5:3인 유럽의 표준영화 사이즈로 변화시켜 왔다. 이와같은 영화 사이즈의 변화는 영화를 제작해서 극장상영이 끝난 후 곧바로 비디오테이프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둘째,홈비디오의 수정제작이라는 형태로 극장용 영화를 위해 삭제된 부분을 다시 편집하여 홈비디오로 만들어내는 일이 나타나게 되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극장에서 참패를 했어도 비디오 완제품으로 성공,작품성까지 재평가 받게 된 경우도 예를 들 수 있다. 

셋째,극장상영을 전제로 하지 않는 홈비디오 용의 저렴한 영화가 대량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1980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수가 264편이었는데 반해, 1983년 이후로는 매년 약 400여편이 제작되었으며 증가된 양의 대부분은 홈비디오를 위한 저렴한 영화들이었다. 

넷째, 홈비디오는 극장용 영화의 개봉방식에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존의 극장용 영화의 흥행방식은 개봉-재개봉-재재개봉 등으로 이루어진 플랫폼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흥행방식은 70년대 이후 2,000여개의 개봉관에서 동시에 개봉되는 동시다발적인 상영형태로 변화되는데, 이러한 흥행패턴은 홈비디오의 등장으로 한층 강화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홈비디오는 기존의 재개봉관의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송영택(1990.1)비디오영화 제작에 대한 평가. <영화-128호> 

53쪽 

비디오영화는 각 제작업체에서 '창작기획물'이라는 이름으로 심의 의뢰한다. 개중에는 무슨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깔끔하게 다듬어진 훌륭한 작품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작품은 그렇지 못함으로써 음란성 시비가 뒤따른다. 

이들 작품의 소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하나는 구전 또는 이야기 책으로 내려오는 음담패설 등을 중심으로 한 상투섹스물이고,다른 하나는 1920~30년대의 신파조 연극내용을 원용한 현대 섹스물이다. 줄거리를 보면,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 나서,또는 우연치 않게 인신매매조직에 붙잡혀서 매춘을 강요당하게 되고,장기 출장간 남편이 그립던 차에 어떤 유혹에 빠져서탈선을 하다가 팔자 땜을 하거나 악의 무리에 대해 복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몇 번의 정사장면을 어떻게 넣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강근주(1990.1) 국내 최초의 비디오 극영화 제작, 대영비디오 프로덕션 임종구 사장. <영화-128호>63쪽. 

-현재 영화와 비디오는 서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물과 불같은 관계예요. 이것은 영화계 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로 영화인의 사시와 극영화 제작자의 편견이 작용한 것이죠.그러나 앞으로는 비디오산업이 제3의 영상시대를 구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영화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와 공존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영화제작자들은 비디오프로덕션으로부터 받는 비디오판권료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선희(1997.7.29-8.5). 부활한 매카시.  <씨네21>113호. 

"지금 우리 사회에선 섹스와 폭력의 교사범으로서 영화와 만화에 대한 공개재판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영화는 과연 대중에게 폭력을 가르치고, 비디오를 본 아이가 살인범이 되며,이 때문에 현대사회는 점점 흉포해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도 다른 모든 매체들처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단정은 확실히 과도하며,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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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철(1998.3.3).대기업과 함께 춤을. <씨네21>. 

35쪽 

"88년 영화 직배가 영화인의 집단반발에 부딪혔던 것과 달리 비디오 직배엔 처음부터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비디오는 생소한 매체였고 직배사 출시 비디오는 포르노와 해적판으로 오염된 비디오문화를 건전하게 만든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직배 초기 UIP영화를 비디오로 내는 CIC는 "정품표시를 확인하라"며 시장을 개척했다.삼성,대우 등 VTR을 만드는 대기업이 직배영화라는 소프트웨어에 눈독을 들인 것은 시장의 논리상 당연하다.대우전자는 폭스,컬럼비아의 영화를 출시했고 브에나비스타는 삼성물산을 파트너로 삼아 드림받스란 브랜드로 비디오를 냈다.테이프 생산업체인 SKC도 워너브라더스 영화를 공급받았고 약 40~50%의 로열티를 주고 직배영화를 주무기로 구색을 갖춰나갔다. 직배사 입장에선 비디오 유통에 드는 초기비용없이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이득이 있었고 대기업에선 질좋은 영호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덕에 VTR도 많이 팔고 자체수입한 영화를 끼워 파는 효과도 본 것이다." 

<씨네21-187호>. 1999.2.2 디즈니는 왜 자수했을까? 

18쪽 

디즈니는 지난 1월 8일 어린이 애니메이션 <구조대원들>(The Rescuers)에 여성의 상반신 누드가 들어 있다며 전국에 배포된 비디오를 회수하겠다고 밝혔다."온 가족이 믿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디즈니의 설명이다. 비디오 회수에는 700만~1천만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예상이다. 그런데 디즈니의 '선의'를 곧이 곧대로 믿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구조대원들>비디오 회수는 판매를 증가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무엇보다 디즈니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혐의가 두어진다. 사실 문제의 장면은 영화 전체의 11만프레임 가운데 두 프레임에 불과해서 정지화면으로 문제의 프레임을 찾지 않느 이상, 육안으로 상반신 누드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정일(1990.2). 외부의 억압에 부서진 사랑 운명애에 부서진 사랑.<비디오 패밀리> 

53쪽 

좋은 시나리오가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장되거나 35밀리 영화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비디오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부드러운 숨결'같은 겨우,일급의 캐스팅만 배려될 수 있다면 35밀리 제작으로도 흥행을 기대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좋은 영화가 될 조건을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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