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먹는 게 아니라 뱉어야 한다”는 장욱진 화가의 말처럼, 화가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심플하게 그림을 그린다. 나무, 아이, 새, 사람에게 있는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한 채, 하고 싶은 말을 다 참아가며 본질의 느낌만을 표현한다. 화가는 자신의 일을 ‘저항의 연속(p.19. 강가의 아틀리에)이라고 했다. 자기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항상 저항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에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산 사람의 고민과 예술가의 존재 이유가 느껴진다.
[장욱진의 그림을 서구 현대미술사에다 기준을 놓고 보면 소박주의, 상징주의, 또 초현실주의 등 그런 쪽에다가 견주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만은 아니다 하는 생각을 나는 해봅니다. 문명 발생 이전의 원초 시대의 양식에 보다 가까운 그런 종합적인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누구의 그림이든 간에 역사로부터 독립해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다 보고 생각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p. 20,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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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님이 올려주신 페이퍼를 보고 10월에 혼자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장욱진의 그림을 보러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화가의 그림은 더 단순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밋밋해서 그런지 예술 작품은 작가의 개성이 많이 들어간 것을 좋아한다. 봉준호의 영화보다는 박찬욱의 영화를 더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많은 것이 생략되고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림이 주는 의미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맞춰 보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심플해서 쉬운 듯 보였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기ㆍ승ㆍ전ㆍ결을 다 말하지 않고 짧고 단순하게 기ㆍ승ㆍ전ㆍ결을 압축시킨 그의 작품은 순수했다. 그의 그림에서 내가 말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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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像, 1951년, 종이(시험지)에 유채.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 화가의 자화상은 거의 매번 볼 수 있다. 각자 그리는 자화상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라 그것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다. 장욱진의 자화상 역시 특이했다. 결혼식 때 입었던 프록코트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으며 장욱진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6.25전쟁이 한창일 때 화가는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욱진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는 혜화동에 있는 동양서림을 20년간 운영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 구름이 찬연하고 좌우로는 풍성한 황금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장욱진, 「자화상의 변辯」, '화랑', 197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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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가을은 언제나 운치가 있다. 서울 도심에 몰려있는 다른 고궁과는 달리 근대적이다. 그곳에서 고종은 새로 들어온 서양 문물인 커피를 즐겨 마셨다. 하지만 몰락해가는 대한 제국의 무능한 왕으로 그의 마음은 커피의 맛처럼 쌉싸래했을 것이다. 이상하게 덕수궁에 가면 내 마음도 그렇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은 정말이다. 나도 첫사랑과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나서 헤어졌다. 장욱진의 그림처럼 나와 나의 첫사랑은 그때 가장 순수했다. 지금 나와 그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