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창비세계문학 1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송승철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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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로 많이 알려진 이 소설의 원제목은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이다. 창비 세계 문학판의 제목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라서 처음에는 내가 아는 그 소설이 맞는지 의아했었다. 다른 출판사는 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번역했고, 최근에 출간된 민음사판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사례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case'는 법적인 경우는 사건이고, 정신의학의 경우가 사례이다. 이 작품은 기이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추리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과 윤리의 충동 및 기이한 사례를 다루는 진지한 심리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p193, 번역자 작품해설 중에서]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 중의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대충은 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어떤 관계이고,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도 알고 있다. 지킬 박사의 친구인 변호사 존 어터슨이 이끌어가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재미도 별로 없고 약간 밋밋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상했던 것만큼 잔인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번갈아 등장시키고, 여러 사건의 발생에 따라 독자 스스로 앞뒤의 정황을 이해하게 했다. 소설의 끝에 나오는 두 통의 편지를 읽고서야 비로소 이 소설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가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그렇게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독을 할 때 복선과 인물의 행동, 말들이 잘 갖춘 틀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훨씬 더 흥미롭고 긴장한 상태로 읽을 수 있었다.

 

지킬은 인간의 본성이란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원래는 선과 악 두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p97)’이라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그는 인간에게서 올바른 본성부정직한 본성을 분리해 별개의 육신 속에 넣는다면 양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위해 과학 실험을 한다.

 

[나는 도덕적 측면과 나 자신의 인성 안에서 철저하면서도 시원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내 의식의 영역에서 두 본성이 투쟁하고 있으며, 만일 내가 그 둘 중 어느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근본적으로 그 둘 모두이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해 불가능한 둘이 하나의 다발로 묶인 것, 즉 고통스러운 의식의 자궁 속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쌍둥이가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가해진 저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둘을 분리할 것인가? -p98~99]

 

처음에 실험은 성공한 듯 보인다.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을 보며 이것 역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점차 지킬의 본성은 하이드의 악마적 광기와 폭력에 휘둘리게 된다. 그에게서 분리된 악은 그 자체로 더 달콤해지고 해방감을 느끼며, 이유 없이 무모해진다. 통제할 수 없이 커진 하이드적 본성은 계속 질주하고 지킬은 힘을 잃는다. 그 둘은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한다.

 

지킬이 어터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은 모두를 옮기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의 압권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인격에 대해 고민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은 나 자신의 모든 것이 아닌 그저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의 성격이나 기질 중에 버리고 싶은 것도 많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내 속에 집어넣고 싶기도 하다. 내가 원하고 행하고 싶은 것이 도덕이나 관습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페르소나가 나를 대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으로 지킬 박사의 원대한 계획은 사실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은 실패할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결국 나는 내 속의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제거시켜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과 좌절은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매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이드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추악하고 기형적이며 흉악하다고 말한다. 그냥 싫고 사악한 영혼이 진흙 덩어리 육신을 관통해서 형체를 비틀고 나오면 저런 모습(p30)'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정말 악의 모습은 비정상적이고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발을 절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우리는 악의 모습을 그렇게 상상하며 악에 대한 혼돈을 서슴지 않는다. 어쩌면 악은 반듯하고 친근한 모습에서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절묘하게 숨겨진 곳에서 악의 행동은 더 많이 자행되고 거침없다.

 

래니언 박사를 찾아 간 하이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원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십니까?....선생 결정에 따라 선생은 예전 그대로.....반대로 선생이 원하기만 하면 여기 바로 이방에서 지금 이 순간 지식의 새로운 영역, 그리고 명성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눈 앞에 펼쳐질 겁니다. p93]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킬과 하이드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다. 일단 연극과 뮤지컬로 유명하고, 수많은 영화에 패러디되었다. 좋은 작품이란 텍스트 그 자체로서도 물론 훌륭해야 하지만, 이 작품처럼 수많은 변용과 다양성을 줄 소재와 형식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은 광장 한가운데에 던져져 수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그것에 대해 궁금해 하고 계속 얘기할 수 있는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

 

2015, 조승우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뮤지컬을 볼 땐 거기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에 더 치중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홍광호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책을 읽은 후에 봐서 그런지 훨씬 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그와 다른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들도 좋았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읽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어느 순간, 다른 곳에서 그 책을 만났을 때, 밀려오는 감동과 깊이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이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를 읽었지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이번에도 그저 뮤지컬의 넘버에 더 치중했을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책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홍광호 배우는 그야말로 무대를 찢었다. 노래는 물론이고 그의 연기는 더 좋았다.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너무 당연했고, 한 씬에 지킬과 하이드를 표현한 '대결(confrontation)'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그의 노래는 음원으로 듣는 것 보다 직접 듣는 것이 백배 더 좋다. 뮤지컬에는 원작과 달리 지킬의 약혼자인 루시와 거리의 여자, 엠마가 출연한다. 그녀들이 부르는 넘버도 좋았다. 'Once upon a Dream', 'In His Eyes', 'Someone Like You',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다






홍광호 배우는 워낙 유명해 그가 출연하는 회차에 예매하기가 어렵다. 딸아이가 힘들게 2매를 예매했다. 난 전에 이 뮤지컬을 봤기에 남편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남편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나보고 가라고 했다. 뮤지컬을 관람하며 양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의 노래는 완벽했다. 매번 집에 있는 나의 책을 버리라고 협박하는 딸아이가 인터미션때 캐스팅보드를 찍으로 갔는데, 내가 생각나 지킬 앤 하이드노트를 샀다며 나에게 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독서 노트하라고 사 준 것이다. 노트의 겉표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촘촘히 그려져 있는 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노안으로 고생하는 내가 쓰기에는 좀 벅찼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하지도 못하고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역시나 난 나를 감추고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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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2-10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양보하지 않아 다행!!ㅋㅋㅋ
감동이셨겠어요^^
딸아이의 엄마를 배려한? 선물까지!!
두 세 줄 한꺼번에 한 줄로 쓰면 어떨까요?^^
딸 앞에서 열심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또 다른 선물도 받을 수 있습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2-02-10 16:22   좋아요 3 | URL
네, 정말 양보하지 않아 다행일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노트를 열심히 사용해야 하는데 요즘은 메모를 거의 컴이나 패드로 해서 고민이예요~~
뭐라도 써야겠어요, 그래야 원망 듣지 않을 것 같아요.
요즘은 자식보다 남편이 더 편해요 ㅎㅎ

레삭매냐 2022-02-10 14: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원제에 대한 깔끔진 스타트,
아주 좋았습니다.

피라미드 시절부터 세상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했다죠...

고전의 울궈먹기, 작가들의
영원한 밥줄이 아닐 수 없습
니다.

뮤지칼 관람 고저 부럽삽니다.

페넬로페 2022-02-10 16:25   좋아요 2 | URL
이번에 원제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당연히 지킬과 하이드로 알고 있었거든요~~
여러 방향으로 소재를 제공하는 것이 고전의 힘인 것 같아요
뮤지컬은 홍광호 배우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오미크론을 뚫고 다녀왔어요^^

미미 2022-02-10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처음 올려주신 영상이 홍광호라니!👍👍👍👍
저 이 노래 너무 좋아해요! 특히 홍광호버젼으로요~🧡
공연보고 오셨다니 너무×200
부럽습니다!!!!🙆‍♀️ 아직 안읽었는데 기대만땅이예요ㅎㅎ

페넬로페 2022-02-10 16:29   좋아요 3 | URL
미미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해서 첫 영상 올리기 성공했어요~~
정말 감사감사해요^^
홍광호 배우, 공연 넘 좋았어요.
화욜 저녁에 관람했는데 지금까지 기분 좋아요~~
생각보다 원작도 깊이가 있어 좋았어요^^
살짝 재미는 없더라고요~~

stella.K 2022-02-10 16: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이한 사례까지가 진짜 제목이었군요.
홍광호도 잘하긴 하지만 역시 이 노래는 조승우를 위한
노래는 아닌가 싶기도 해요. 조승우는 뭔가 꽉찬 느낌인데
형만한 아우 없다는 심리 때문일까요?
하긴 조승우가 유키즈에 나와서 자기만 보면 사람들이
지금이 순간을 부르려고 해서 부담스럽단 얘기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작품도 세대 교체가 된 걸까요? 조승우가 오래하긴 했죠.
저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ㅠ

페넬로페 2022-02-10 16:36   좋아요 5 | URL
네, 원제에 기이한 사례가 들어가더라고요~~
요즘 뮤지컬 공연에 세대교체가 많이 된 듯 해요.
그래도 조승우 배우는 레전드죠.
연기력은 어떨지 몰라도 노래는 홍광호 배우가 더 앞선 느낌이었어요. 홍배우는 영국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 데모 테잎만으로 투이역에 합격했다는 전설이 있어요 ㅎㅎ
홍광호 버전으로 꼭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stella.k님께서 쓰신 극본으로 올려진 뮤지컬 꼭 보고 싶어요^^

stella.K 2022-02-10 17:50   좋아요 4 | URL
헉, 이런...!ㅠㅠ 그런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있게된다면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mini74 2022-02-10 18: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장발장 생각나네요.쭈욱 장발장인줄 알았는데. 하이드 책 원제를 페넬로페님덕에 알게 되네요 ~ 딸아이 예쁩니다. 줄공책 ㅠㅠ 막 아른거리죠 ㅎㅎ

페넬로페 2022-02-10 18:46   좋아요 5 | URL
우리가 아마 원제를 모르는게 수두룩할 것 같아요~~
미운짓도 많이 하는데 이럴 때 키운 보람이 있더라고요^^

새파랑 2022-02-10 19: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은거 같은데 그동안 안읽은 책이었어요 ㅋ 작년에 열린책들 35주년 세트로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 뮤지컬도 즐기시는 페넬로페님 넘 멋지십니다~!!

페넬로페 2022-02-10 21:03   좋아요 5 | URL
열린 책들, 미드나잇에 이 책이 있군요. 소설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어 좋았어요~~
뮤지컬 좋아하는데 이번에 특히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2-10 1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페넬로페 2022-02-10 21:0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

2022-02-10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02-10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책의 위대함!
페넬로페님을 폭풍 감동으로 몰아 넣은
홍광호!
꼬옥 기억 하겠습니다 ^ㅅ^

페넬로페 2022-02-11 00:08   좋아요 3 | URL
책의 위대함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렇게 뭉클할 수 있는 이유가 그나마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책을 읽는 제가 받은 선물일 것 같아요.
뮤지컬, 특히 홍광호 배우의 노래는 정말 폭풍 감동이었어요^^
scott님, 반가워용^^

꼬마요정 2022-02-12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홍광호님 지킬 하이드 보고 오셨네요 ㅎㅎ 진짜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중에서 저런 성량과 고음을 뽑아내는 배우는 진짜 없을 거에요 ㅎㅎㅎ 심지어 노력으로 만들어낸 거라고 하더라구요.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지킬 앤 하이드는 이젠 낡은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고전의 힘이 쎄긴 한가봐요. 뮤지컬 속에서 댄버스 경이 예비 장인이라는 게 재밌지 않나요 ㅎㅎ

저는 류정한님, 조승우님, 홍광호님 지킬 앤 하이드 정말 추천합니다^^

페넬로페 2022-02-12 08:55   좋아요 3 | URL
네, 정말이지 홍광호배우님, 무대를 찢더라고요. 심지어 지킬과 하이드의 목소리를 다르게 해서 노래하고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책에서는 하이드가 댄버스경을 죽이는데 저도 좀 그랬어요 ㅎㅎ
담엔 꼭 류정한 배우의 지킬앤 하이드를 보겠습니다^^

희선 2022-02-12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은 읽지 않고 어렸을 때 만화영화 같은 걸로 봤던 것 같아요 본래 제목은 조금 다르군요 이 소설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물섬》을 썼더군요 이 책은 몇해 전에 봤는데... 책 보고 뮤지컬 보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2-12 08:58   좋아요 3 | URL
보물섬은 어릴 때 동화책으로 많이 읽었고, 이 책도 어린이용 버전으로도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희선님께서 이 책 읽으셨군요. 감상이 궁금하네요~~
뮤지컬은 많이 각색되어 있는데 그래도 더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