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벨도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날 절대 죽지 않는 과학책 - 인류 과학사를 꿰뚫는 스토리텔링 노벨상 수업
이성규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1월
평점 :
20세기 이후 인류가 함께 만들어온 지적 무대
<노벨도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날 절대 죽지 않는 과학책>
: 인류 과학사를 꿰뚫는 스토리텔링 노벨상 수업
이성규 지음 [블랙피쉬] (2025)
2024년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특히 기억에 남는 해가 되었다. 매년 11월 즈음이 되면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시선이 집중되곤 한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처럼 과학상 수상자가 아직 없는 우리로서는 많은 시민들이 기대를 갖고 발표에 귀기울이기도 할 것이다. 2024년 노벨 과학상의 특징 한 가지를 꼽으라면 기초연구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리학상은 머신 러닝의 기초 기술과 이미지 데이터 분석 및 활용에 크게 기여한 점,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 연구의 토대가 되는 아미노산 배열 순서와 입체 구조와의 관계를, AI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연구 업적에 대해 깊이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순수 과학 분야에서 AI기술이 중요한 연구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과학 분야의 자료를 찾아보던 중 마침 만나게 된 책이 <노벨도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날 절대 죽지 않는 과학책>(이성규 지음, 블랙피쉬, 2025)다. 이 책은 노벨 과학상 분야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에서 저자가 선별한 주제와 수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소개한 과학책이다. 주제의 폭이 넓고 다양해서 각 분야 15편씩, 총 45편의 글이 실려 있다. 각각의 글은 과학상 수상 년도와 수상자에 대한 짧지만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수상자들의 업적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큰 틀에서 과학자와 관련 과학지식의 핵심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 중학생 정도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반면, 이야기가 금방 끝나는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수상 업적과 수상자들의 관계가 느슨한 듯하다가도, 또 어딘가에선 연결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과학 교과서에서 접하곤 했던 여러 과학자들의 업적과 이야기들로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 읽은 에피소드들 중에서 2024년 노벨 화학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먼저 언급했듯이 2024년 화학상 주제는 단백질 구조 연구에 관한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 이외에 단백질은 가장 중요한 성분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단백질에 관한 연구는 그만큼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그만큼 단백질 관련한 연구는 지난 100여 년의 노벨 과학상 역사에서 여러 번 수상자들이 배출되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인슐린 구조해명에 관한 연구가 책에 소개되어 있어 선택해보았다.
음식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당을 흡수하여 혈당을 낮추는 단백질 성분이 바로 인슐린이다. 이 물질의 구조를 알아낸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는 이 업적으로 1958년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상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소의 인슐린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배열을 먼저 알아내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을 떠올려 보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아미노산이다. 특정 단백질이 저마다 갖는 역할은, 20여 종의 아미노산이 특정한 순서로 배열된 1차원 사슬 구조가 점차 휘어지고 접혀 3차원 입체구조를 갖게 되며 고유한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20여 종의 아미노산 수십 개에서 수만 개가 모여 무한에 가까운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 중에서 인슐린은 51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있다. 프레더릭 생어가 인슐린 구조를 알아내었다는 것은 51개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파악했다는 의미다. 눈으로는 직접 볼 수 없는 이 작은 생명의 구성물들의 정체를 이미 70년 전에 알아내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프레더릭 생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단백질 구조 연구로 기여한 이후에도 그는 유전물질인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1980년에 노벨 화학상을 두 번째로 수상했다. 과학자로서 생어의 행보는 많은 시사점을 독자인 나에게 건네준다. 노벨상을 한 번 수상하게 되면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거나 긴장감을 놓게 될 것같은데 말이다. 반면 생어는 관심분야를 넓혀 꾸준히 연구를 진행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노벨상의 역사에서 2번 수상한 사람은 생어를 비롯하여, 물리학과 화학상을 한번 씩 받았던 화학자 마리 퀴리, 화학상과 반행운동으로 평화상을 수상했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 그리고 트랜지스터 발명과 초전도 이론 정립으로 물리학상을 2번 받은 존 바딘이 있다. 그러니까 프레더릭 생어는 화학상으로 2번을 받은 유일한 수상자이기도 하다.
내가 프레더릭 생어의 이름이 더 기억났던 것은, 65세의 나이로 은퇴하며 연구를 그만 둔 이후의 행보 때문이다. 현대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영국인이기에 영국 왕실에서 제안한 기사 작위를 영광스러운 기회라고 여길만한데도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후배 과학자들을 위해 자신의 연구 공간을 내준 후, 정원을 가꾸며 조용히 살고자 했던 과학자 프레더릭 생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프레더릭 생어의 단백질 구조에 관한 업적은 70년을 건너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 업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듯 과학계의 수많은 업적은 생어와 같은 과학자들이 걸어간 길을 바탕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느낌을 받았다. 이제 여기에 새로 등장한 AI 분야의 기술 발전이 더해지고, 더욱 풍성한 결과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노벨 과학상이 수여되는 분야는 구분되어 있지만 프레더릭 생어의 단백질 연구가 한 장의 논문에 DNA 구조를 밝혔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면도 떠올려 보자. 과학 발전을 크게 견인한 것은 이처럼 선배 과학자들의 연구가 엄격한 검증을 거지고 살아남아 그 핵심이 되는 지식이 공유되어온 과정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지난 세기 과학이라는 무대에 어김없이 등장하기도 했던 흑역사, 이를테면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프리츠 하버의 에피소드나 DDT를 개발한 파울 헤르만 뮐러의 에피소드도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과학기술이 밝혀낸 지식이 좋은 의도로 세상에 나왔다고 해도, 과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이 내놓은 결과들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그 사용에 대해서도 검토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과학이라는 인류의 지식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통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중요한 지식체계이기도 하다. 과학이란 인류 지성의 산출물, 문화의 산물이기에, 과학전공자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