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관점
짐 알칼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평점 :
세상을 이해하는데 물리학이 필요한 이유
-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2022)
과학 대중화의 시대다. 인류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어느 때보다 과학의 힘을 등에 업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어느 국가나 과학 기술은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다. 특히 과학 교육은 국가의 중대사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영국의 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짐 알칼릴리가 지적하듯이 ‘과학은 인간의 일’이기도 하다. 과학 활동은 결국 인간이 개입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역사의 숱한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아가 인간이 그릇된 의도로 과학을 활용하면 과학은 다시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정황은 과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물리학이 인간의 그릇된 의도를 견제하고 걸러낼 수 있는 물리학만의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 과학저술가이자 과학자인 3인방을 꼽으라면, 존 그리빈(John Gribbin), 필립 볼(Philip Ball), 그리고 짐 알칼릴리(Jim Al-Khalili)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동안 알칼릴리가 참여한 물리학 영상 몇 편 본 적은 있었지만,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 몇 권을 포함하여 읽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를 읽으면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담담하게 설명하던 저자의 모습을 함께 떠올려 보았다. 이 책에서는 물리학 덕후가 보여주는 물리학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물리학은 이 세상, 온 우주를 이해하는 도구’라는 믿음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하긴 이런 신념 없이 그 어려운 공부를 해내고 40년 넘게 연구를 지속하며 사람들에게 그 애정을 전파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물리학 지식을 열거하기 전에 저자는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명분삼아 선언한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물리학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습니다.”(12) 이것이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하다. 저자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물리학이야말로 실재의 진정한 이해로 가는 길”(287)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물리학 대중서로는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에 현재 이루어지는 물리학의 다양한 연구 주제를 포함시키느라 주제별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물리학’이라는 신념을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목적을 위해 제시하는 근거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은 과학의 ‘검증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특징은 과학을 공부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결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 검증가능성이야말로 과학을 다른 학문 분야와 구별 짓는 과학만의 가치를 대변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알칼릴리가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성으로부터 나옵니다”(273)라고 한 말에 새삼 공감한다. 일반 독자로서 과학에 대해 갖는 막연한 믿음, ‘과학은 확실함에 있다’라는 주장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내게는 과학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검증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파악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은 관찰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입증 가능해야 한다. 나아가 합리적인 설명에 입각하여 새로운 현상에 대한 예측도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에 따라 당장 검증이 불가능한 이론도 있을 수 있지만, 저자의 경우는 이 점에서 매우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현재 인간의 힘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검증을 추구하여 보다 깊은 이해에 다가가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독서에서 또 다른 저자의 인상적인 견해는 “수학적 이론을 찾는 것만큼이나 올바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144)는 언급이다. 그는 이론물리학자이면서도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도출된 결론으로부터 ‘물리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 책 전체에서 저자는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실재를 가장 심오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192)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실재론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리고 이 실재론의 입장에서 양자역학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때 저자가 언급하는 실재론이란, ‘인식의 대상이 주관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견해’(137)를 말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대상이나 현상을 ‘실재한다’고 인정하는 관점이다.
이 맥락에서는 ‘양자역학적 실재’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아인슈타인과 물리학사상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과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현상학적인 입장에 서있는 코펜하겐 해석과 거리를 두며, 우리가 대상을 측정하지 않아도 대상은 존재한다고 본다. 반면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던 대상을 측정한 후에는 측정 전의 상태가 ‘붕괴’되어 버리고 사라진 다음, 하나의 결과로 도출된다는 입장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 코펜하겐 해석은 측정 전과 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하지는 않는 듯하다. 반면 저자를 포함한 실재론자의 입장에서는 측정 전후에도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된다. 이 부분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견해가 모두 대상,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다른 해석, 다른 입장이라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교과서에는 코펜하겐 해석이 우선적으로 소개가 되어있다. 반면 저자는 이 견해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교과서에 나온 지식이라도 우리가 과연 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활동은 역시 과학에 대한 저자의 강한 신념에서 나왔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제기된 개념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아랍의 후예이기도 한 저자는 17세기 초 아랍 학자 이븐 알하이삼이 전개한 운동을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알하이삼이 제창한 ‘알슈쿡(al-Shukuk)’을 제시한다. 이것은 ‘의심’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알하이삼이 “과거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증거 없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73)고 주장하며 전개했던 철학운동이었다. 이 견해는 물리학을 비롯한 현대의 모든 과학 분야가 성립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들어있다. 바로 지식에 대한 ‘검증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태도는 과학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든 학문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자 토양이 아닐까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물리학이야말로 실재에 대한 이해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으로부터 일반 독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무엇보다 이븐 알하이삼의 태도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바로 ‘합리적인 의심’을 갖는 태도 말이다. 이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과거의 지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아보려는 자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체가 부분의 합’이라고 보는 환원주의자의 면모를 강하게 보이는 저자가 비판한 필립 앤더슨의 견해도 궁금해진다. 저자에 따르면 노벨상 수장자인 이론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은 극단적인 환원주의에 반대하는 논문을 썼다. 짐 알칼릴리는 필립 앤더슨의 논리가 약하다고 비판하는데, 환원주의적인 면모에 가반을 두고 있는 물리학자가 극단적인 환원주의를 경계하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물질세계를 이해하려는 두 물리학자가 환원주의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가지고 각자의 주장을 주고받는 일 자체가 내게는 인상적이고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런 전통이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짐 알칼릴리는 물리학의 가능성에 대해 강한 신뢰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도구의 한계 역시 분명히 인식한다. 그는 “물리학 지식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거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다”(288)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평생 몸담아온 물리학은 ‘세계를 이해하며 얻는 경외감’으로 보답하는 지적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흔한 비교나 비유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대체로 단도직입적인 스타일로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물리 현상에 대해 의인화된 비유를 사용한 대목이 재미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장에서 그는 중력이 강한 곳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이 가장 느린 곳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천천히 늙으려고 하는 것이죠.”(89) 그러면서 그는 ‘정말 아름다운 설명 아닌가요?’라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이 문장을 쓰고는 좋아라하는 물리학자라니.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독자는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첨단 연구 분야에 대한 이해를 다 하지 못하더라도, 저자의 물리학에 대한 신념과 사랑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 과학이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을 거쳐 만들어져왔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야라는 점 하나를 배워간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1] "세상을 이해하는데 물리학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습니다."(12)
[2] "아랍학자 이븐 알하이삼은 17세기 초에 ‘의심‘을 뜻하는 ‘알슈쿡 al-Shukuk‘이라는 철학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의 천체역학을 지적하면서 과거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증거 없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적었습니다."(73)
[3]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항상 시간의 흐름이 가장 느린 곳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천천히 늙으려고 하는 것이죠."(89)
[4] "수학적 이론을 찾는 것만큼이나 올바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144)
[5]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실재를 가장 심오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192)
[6]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에서 나옵니다."(273)
[7]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모든 ‘왜‘와 ‘어떻게‘를 알고자 한다면, 물리학자들이야말로 실재의 진정한 이해로 가는 길입니다."(287)
[8] "물리학 지식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거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다."(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