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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가는 곳 -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8월
평점 :
《고래가 가는 곳》
: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 Fathoms: the environmental story of the whale
레베카 긱스(Rebecca Giggs) 지음 |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인간과 고래가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하기’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직전에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려고 계획한 적이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지만 코끼리와 고래 같은 대형 포유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유행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동안 암각화 방문 계획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세이스트 리베카 긱스의 《고래가 가는 곳》에서 언급된 반구대 암각화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8천 년 전의 조상이 남긴 이 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래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오랜 관심, 바다라는 환경과 인간의 개입,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의 인간이 약 20만 년 전에 등장했다고 한다면, 고래는 약 5천만 년 전에 육지에 서식했던 포유류로부터 등장했다고 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하마, 개, 늪에 사는 척삭동물과 인간이 바로 고래에서 진화하여 갈라져 나온 것으로 설명된다. 고래의 퇴화한 뒷다리가 그 증거다. 이렇게 고래는 인간보다 5천만 년 전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지구 최대의 포유류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았을 때 최근에서야 등장한 인간이 인간 자신과 고래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책은 고래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고래와 인간사이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해안에 떠밀려온 혹등고래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고래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 바다로 돌아간 해피 엔딩이 아니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이 사례가 더욱 상징적이고 비극적인 이유는 오염된 바다 환경으로 중독된 고래 사체가 유독성 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 매립지역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비극의 원인을 바로 우리 인간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에피소드였다. 저자는 이 상황이 결국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고래는 ‘바다 생태계의 오아시스’라고 한다. 고래가 살아 있을 때, 장거리 이동을 하며 바닷물을 휘젓고 심연의 유기물 등의 영양을 뒤섞어 영양 전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고래가 죽으면 ‘고래 낙하(whalefall)’라는 과정을 통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 때 200종 이상의 생물체가 고래 사체를 공유한다. 고래는 다른 동물들에게 살아가는 터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거대한 고래 뼈를 녹여 먹는 심해 생물인 ‘좀비 벌레’까지 포함하여 고래는 덧없이 해체되면서도 다른 새 생명체의 잉태에 기여하는 것이다. 게다가 무게 40톤의 고래는 고래 낙하 과정으로 평균 2톤의 탄소를 해저로 옮긴다고 하니, 바다와 대기의 탄소 수준의 유지에도 큰 역할을 담당해온 셈이다. 고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문제는 생태계의 이런 거대한 순환 구조를 인간 활동이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종 포장지와 플라스틱, 밧줄, 비닐, 호스, 그물 등등을 삼키거나, 오염된 먹이를 먹고 체내에 농축한 상태의 고래에 의존하는 다른 생명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바다의 오아시스로 불린 고래가 고농도로 농축된 독성 물질을 품은 해양 생태계의 고농축 오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은 편리하고자 자연을 무책임하게 이용해온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새로운 오염원인 고래 사체를 오염물을 처리하는 매립지로 보내야하는 현실을 ‘이 시대에 대한 은유이자 잔인한 현실’(30)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고래에 주목하면서도 생태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양한 사례와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북극 제도의 야생 흰고래가 고양이의 기생충에 감염되어버린 사례를 든다. 집고양이의 배설물이 섞인 폐수가 바다로 흘러가면서 고래에게 가 닿은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키우는 고양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온난화로 얼음이 녹은 현상도 관련되어 있다. 한편 화석 연료 사용의 증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나타나고, 다시 이 성분이 바다로 유입되어 해수의 이산화탄소 농도증가로 이어진다. 해수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바다는 산성화된다. 산성화된 바다는 다시 크릴의 알을 약화시키고, 고래의 먹이를 크게 줄인다. 보다 큰 관점에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의 변화로 1970년대 이후 크릴의 개체수가 80%정도 감소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기상이변은 경작지에서 흘러나온 부영양화된 오물로 유독성 플랑크톤을 번성시키기도 했다. 2015년에 300여 마리의 멸종 위기종 보리 고래의 떼죽음은 바로 이렇게 인간의 활동이 남긴 대가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삶은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의 야생동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저자가 고래를 중심으로 인간과 생태계의 연결성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의 시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의미심장한 시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책에 언급된 고래의 ‘카리스마’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동물의 카리스마란 ‘한 동물 종이 마스코트로서 기능하는 능력, 사람들을 사로잡은 서사를 지속시키는 능력, 대중을 움직이는 능력’(211)을 가리킨다. 카리스마의 목록에는 동물의 ‘크기, 지능, 사회성, 쾌활함, 독특함’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대형 포유동물이 보여주는 ‘애도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언젠가 죽은 어미의 뼈가 있는 곳에 다시 돌아와 어미의 뼈를 코로 끌어안고 슬퍼하는 듯한 코끼리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고래로부터도 비슷한 행동을 보았다. 이동하는 무리에서 뒤쳐져 죽어가는 새끼 고래 주위를 돌며 떠날 줄 모르던 어미 고래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이렇게 내가 고래나 코끼리에게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인간처럼 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동물들의 행동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자는 인간이 동물에게 부여하는 ‘카리스마’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카리스마를 가진 종이 된다는 것이 동물을 의인화하여 위계를 만들기도 하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동물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카리스마를 부여받은 동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위한 도구’(211)가 된다고 지적한다. 내가 코끼리와 고래와 같은 거대 포유류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인간중심적인 동물관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카리스마를 지닌 동물이 하나의 전형으로서 대중에게 자리 잡게 되면 개별 고래의 차이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쉬운 상황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혹등고래의 ‘노래’는 매우 다양하여 지구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가장 광범위한 의사 소통망을 형성한다고 한다. 인간이 내는 소음과 다양한 활동의 결과 혹등고래의 노래는 60년대에 비해 상당히 빈약해졌다고 한다. 공동체 내에서 진화하며 공유되는 이러한 노래의 다양성은 새로운 고래 세대의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수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영향으로 이러한 고래 문화의 다양성이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부여한 카리스마로 인하여 이렇게 미묘한 변화에 인간이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로부터 어떤 생물종의 개체 수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번성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생태계와 이를 구성하는 모든 유기체의 회복력을 지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로부터 환경에 대한 우려를 담은 흔한 메시지에서 더 나아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자의 세심한 관심과 견해를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 인간이 생태계에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불편하고 우려되는 사실들이 담겨있었다. 우리 인간의 삶이 고래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방향을 향한다. 그 이유는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438)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래가 커다란 카리스마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래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넓혀주고, 우리의 도덕적 능력을 확장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저자는 독자에서 자연에 대한 ‘생태적 의무감’을 지니고 자연과 만나는 미래의 경이로움을 떠올리는 상상력에 주목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 종에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외따로 떨어진 깊고 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있음을 호소한 대목에도 주목해본다.
앞서 언급했던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8천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의 고래잡이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땅에 문자가 사용되기 오래 전에 고래는 이미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암각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유적이었다. 존 버거가 동물원의 동물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암각화에 새겨진 동해바다의 귀신 고래는 ‘이 종의 소멸에 대한 경고와 기념비’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암각화로부터 고래를 비롯한 여러 동물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암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저자가 ‘박물관에 전시된 대왕고래의 뼈에서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고래 배 속의 플라스틱으로 심원한 미래를 생각했다’는 언급으로 이어졌다. 고래는 인류의 오랜 조상으로서, 이처럼 시간성의 기준에서도 카리스마도 지닌 존재였다.
《고래가 가는 곳》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세심한 사유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는 책이다. 고래와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담고 있는 우주적 명상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아의 확장을 보여주는 글쓰기 작업이기도 하다. 환경과 생태에 관한 에세이로서, 허먼 멜빌의 장편 소설 《모비 딕》을 닮은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세밀한 것에 집중하여 쌓아 올렸다는 특성도 포함된다.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하나의 결과물로 직조해내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그러모은 분신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포경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고래가 인류사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의 삶 전반을 형성하기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의 전환을, 그리고 생태계를 바라볼 때 보다 세심하게 살펴볼 것을 주문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지구 생태계에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1] "고래 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과 유독성 화합물들은 결국 산업화의 산물이다." (32)
[2] "오염, 기후변화, 동물 복지, 야생, 상업, 미래, 그리고 과거. 고래 안에 그 세상의 전모가 있다."(37)
[3] "모든 생명의 죽음은 그것이 새 생명의 잉태에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42)
[4] "19세기의 인간들은 (...) 고래를 원료로 삼은 것으로 입었고, 누워 잠을 청했고, 꿈을 꾸었다. 그것으로 요리를 했고, 놀이를 했고, 욕망했고, 예술품을 만들었고, 보았고, 치료하고, 탐험하고, 훈육받았고, 함께 훈련했고, 점도 쳤다. (...) 19세기 선조들은 고래가 제공해 준 세상에서 살았다." (68)
"포경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고래가 우리의 거처를, 산업을, 예술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37)
[5] "동물을 멈춘 상태로 보존하겠다는 욕망은 그것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리고 그 관계가 미래에도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184)
[6] "박물관에서는 너무 많은 종류의 시간이 함께 허물어져 뒤섞인다." (185)
[7] "자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한다는 좋은 의도가 생명의 미묘한 평형을 깨뜨린다. (...) 자연에 대한 손상이 총체적일 뿐만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201)
[8] "온라인에서 우리가 꾸민 이상적 자연, 그리고 넘쳐 나는 귀여운 동물의 무리는 차라리 자연과의 접촉이 끊겨서 생긴 우리의 다양한 우울증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5)
[9] "카리스마 있는 종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211)
[10] "(동물원은) 우리의 힘뿐 아니라 허약함, 우리의 유순함만이 아니라 잔인함, 짓밟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222) - 커밍스의 말
[11] "(동물원의 동물은) 그 종의 소멸에 대한 살아 있는 기념비다." (225) - 존 버거의 말
[12] "고래의 되쏘아보는 눈길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 가지 수십 가지의 물질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고래와 너무나 깊이 엮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 우리가 잃게 된 것은 신비함, 귀여움 혹은 카리스마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관계다." (239)
[13] "고래 노래를 듣는 것은 바다의 형상을 듣는 것이다." (261)
"우리가 더 많은 세상을 볼수록 그들(고래)은 더 적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265)
[14] "가축은 ‘자연의’ 동물이 아니다. (...) 그들은 시장에 값싼 음식을 제공하는, 단백질 생산 복합 산업체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 이들의 존재는 지구적 생태와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99)
[15] "확실하고도 잔인한 과학적 결론은 바다에서 인도적으로 고래를 잡을 방법은 없다." (313) - 데이비드 애튼버러(방송인, 작가)의 말
[16] "서호주 박물관의 대왕고래가 나에게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면, 고래 배 속의 플라스틱은 심원한 미래를 생각하게 했다." (358)
[17] "내 뜻은 당장 가까이 있지는 않아도, 다가올 장래에 우리가 동정심을 발휘해야 할 이유가 있는 많은 존재가 있음을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372)
[18] "희망은 함께 하는 것이다. 희망은 실천 속에 있다. 우리는 다른 생명과 만나는 경이로움을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다. 이 상상력이 결국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유다." (373)
[19] "이 시스템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삶이 고래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427)
[20] "자연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믿는다."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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