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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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샤일록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피에 젖은 땅 (Blooldlands)》(2021)

    

 

저 멀리 애처롭게 스러져간 생은 얼마나 될까

 

76년 전 오늘(430), 베를린의 총통벙커라고 불린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함께 순수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제국 건설의 꿈도 막을 내렸다. 이 남자와 측근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명령으로 죽어간 사람은 이미 600만 명에 달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마저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소련 사이의 동유럽에서 전쟁과 폭압으로 죽어간 사람은 나치가 살육한 유대인 수의 두 배가 넘었다.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로 알려진 학살의 역사는 같은 시기, 동유럽에서 벌어졌던 살육 과정의 단지 일부일 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유럽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주목한 부분이다. 피에 젖은 땅에서 저자는 이 책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도자들이 내린 명령으로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22)임을 밝히며, 이를 위해 블러드랜드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블러드랜드란 대략 현재 독일의 동쪽인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의 서부까지,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남쪽으로는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대략 12년간, 블러드랜드에서 나치와 소비에트 세력의 정책으로 스러져간 사람이 1400만 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10여 개국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유럽을 배경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보다 큰 틀에서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흔히 개별적으로 연구되곤 했다면, 저자는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어 10개 언어로 된 문헌을 면밀히 조사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유럽 역사,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이 주도한 대량학살의 역사를 한 흐름 속에서 조명했다.

 

간혹 다양한 사례와 희생자 통계에 압도되어 의미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피해자 및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간간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폴란드계 문인을 떠올리며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고자 했다. 한 명은 독일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이하 라니츠키). 라니츠키는 이 책에서 꽤 상세히 소개되는 바르샤바 게토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훗날 부모와 형제를 죽인 나라의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된다. 또 다른 인물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다(이하 쉼보르스카). 그녀는 1931년부터 평생 블러드랜드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도시 크라쿠프에서 살았다. 블러드랜드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동안, 두 사람은 엄혹했던 시대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했고, 이들을 목격했으며, 마침내 생존했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이 있던 시공간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보고자 했다.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와 히틀러의 야망에 스러져간 이들

 

이 책의 초점은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동유럽의 블러드랜드라는 제한적이고 보다 명료하게 정의된 프레임에 속에 놓여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분기점을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첫 번째 분기점은 1933년 블러드랜드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이었다. 이 사건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시행된 5개년 경제계획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이 농민들로부터 무리하게 거두어들인 곡물을 해외로 수출하여 발생한 기근으로, 이는 무엇보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정치적 재앙이자 학살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스탈린이 심각한 기아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단화 과정은 농업대신 산업을 육성 하고자 했기에, 농민들은 농지 몰수 및 강제 이주를 당하며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스탈린은 식량 징발을 강제하여, 자국민을 굶주림 및 이와 관련한 질병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최소 330만 명(대부분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공산당에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스탈린이 벌인 대표적인 잔혹 행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대공포 시기(1937-38)에 이루어진 학살이며, 다른 하나는 소련이 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1938-41)에 자행한 폴란드 박멸 행위다. 대공포 시기에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 레닌이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유대계였던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를 축출하거나 누명을 씌워 처형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군대나 정당, 내무인민위원회 등 내부 조직 숙청과 기관 장악에서 나아가 사회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는 기근으로 많은 농민들이 죽어간 소련 령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부농으로 밝혀진이들을 강제이주 시키거나 총살했던 부농박멸작전이 있고, 주로 폴란드계를 대상으로 했던 민족 박멸 작전이 있다. 저자는 이 두 작전에서 처형된 이들이 625483명에 달한다고 언급한다(192).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는 스탈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테러행위였다.

 

한편 히틀러는 1939년 봄,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라고 군에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여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함께 침공한다는 합의를 했다. 193991일에 독일은 탱크와 보병을 앞세우고, 폴란드 비엘룬시를 공습하며 침공했다. 며칠 후 독일 공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공습하며 수만 명의 시민과 군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16세였던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에 크라쿠프에서 부상당한 폴란드 병사들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 훗날 9월에 관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시에 담아내기도 했다. 소련은 917일에 50만 명의 군인을 앞세우고 폴란드로 들어갔다. 928일에는 독일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이하 라인’)이라는 새로운 국경을 확정하며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새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폴란드인들은 제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을 얻었지만, 11년 만에 다시 나라를 잃었다. 라인의 동쪽에서 소련군은 15만 여 명의 젊은이를 붉은 군대에 강제 편입시켰고, 새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폴란드인 집단을 강제 추방시키기에 이른다. 이때 폴란드인 139794명이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만약 쉼보르스카가 소련군이 점령했던 라인동쪽의 리비프 같은 곳에서 살았다면, 그녀와 가족은 아마도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를 탔다가 시베리아 초원의 어딘가에 묻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당시 폴란드계 소련인들이 폴란드 문화나 카톨릭교에 대해 보인 호의를 국가 간 첩보활동에 동참했다고 하며, 묵주를 가진 사람에게도 수용소 10년 형을 내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었을지도 모른다(175). 하지만 시인의 가족은 나치가 점령했던 라인의 서쪽에 있었다. 물론 이곳에 있던 폴란드인들의 고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무엇보다 인종적 우월성에 집착했기에,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지식인이 많았던 폴란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특히 폴란드의 옛 수도였고, 쉼보르스카가 살던 크라쿠프에서는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만약 쉼보르스카의 부모가 교수와 같은 지식인이었다면, 시인의 가정 역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과거에 지방 영주의 관리인이었기에 나치의 우선적인 처분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을 것 같다. 이 시기에 폴란드인에 대한 독일과 소련의 유린 행위는 주로 총살에 의지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대략 2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고,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당했다. 당시에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는 카틴 대학살이 있는데, 소련은 폴란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 4410명 전원을 카틴 숲에서 총살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궁금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는 이 시기에 세워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학살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강제 수용소는 노동력을 위한 집단 수용시설이었고, 가끔 의료적인 안락사를 위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 쉼보르스카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는 책에 소개된 정황과 크라쿠프의 위치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크라쿠프는 아우슈비츠와 대략 50 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주요 가스 학살 공장이 들어서게 되는 헤움노,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마이다네크, 베우제츠 등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나이더는 30-40년대의 12년 동안 민간인 및 전쟁포로의 사망자를 14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숫자의 약 4분의 1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1933-1941년 사이)에 이미 사망했다고 언급한다. 1400만 명의 절반 정도는 사실상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굶어 죽은 이들이었다. 이렇게 나치의 살육 시설에 둘러싸인 옛 도시에서 장차 폴란드의 대시인이 될 소녀가 견디어내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나를 태웠다

- 최종해결책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내가 주목한 두 번째 분기점은 1941622일에 시작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다. 이날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침공했다. 새로운 재앙이 시작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1933-1941년까지의 시기를 소련이 대량학살 대부분을 담당하다가 독일이 학살에 가세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는 히틀러의 학살 작업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500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300만 명이 넘는 전쟁포로를 포함하여 1000만 명 이상이 정치적으로 학살당했다. 이 두 번째 분기점부터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을 더 많이 떠올렸다. 라니츠키는 베를린에서 가족과 지내다가 19381028일 오전, 독일 경찰의 방문을 받고 폴란드로 추방당한다. 스나이더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3810, 독일은 폴란드 시민권이 있는 유대인 17000명을 독일 제국에서 폴란드로 추방했다.”(197) 라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이 때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 유대인 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정의 밤폭력 사건은 라니츠키 가족이 떠난 지 2주 후인 119일에 발생했다.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분기점(1941-1945)에 대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그 이유는 저자가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의 조직적 학살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탁월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히틀러가 악인이었기 때문이거나, 집권 초기부터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규모 300만 명의 독일군은 동쪽으로 빠르게 진군하면서, 1941년 말까지 300만 명 이상의 소련군 포로를 생포했다. 소련군 포로들은 부족한 식량과 추운 날씨, 열악한 이송 여건 등으로 260만 명이 사망하고, 적어도 50만 명이 독일인의 손에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나치 친위대는 노동 수용소 성격을 지니던 장소를 본격적인 살육시설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명 학살 공장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의 해상력과 공군력에서 영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대륙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제국 건설 외에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히틀러의 정치적 야망에 인종주의적인 성격이 가미되면서, 유대인들은 제국건설을 위한 최종 해결책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라니츠키가 머물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가본다. 동부 전선에서 독일은 식량 및 보급품의 부족,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을 맞았고, 소련을 몇 주 만에 무너뜨리고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전격적 승리는 점점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 근교로 갔던 라니츠키 가족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이미 조성되었던 바르샤바 게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토 시절 라니츠키는 독일어 번역 작업을 하며 평생 함께할 아내 토지아와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거의 마지막까지 게토에 남았다. 반면 그의 부모님과 형, 직장 동료와 두 아들은 가스시설이 있는 트레블린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쉼보르스카의 시집 검은 노래에 수록된 시 유대인 수송은 수용소로 이송되는 열차 안의 풍경을 그린다. 죽음을 직감한 유대인들의 절망을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라니츠키는 1943118일 새벽, 트레블린카 수용소로 떠나는 행렬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극적으로 행렬에서 이탈했고, 2주 가까이 게토에 숨어 있다가 23일에 게토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에는 부부가 어느 폴란드인의 집에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숨어 지내며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회상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트레블린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곳이 라니츠키 부부의 가족이 사망한 곳이기도 했고, 또 이 수용소가 폐쇄된 이후 학살의 중심이 아우슈비츠로 옮겨가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비롯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 노동수용소에 처형장이 더해진 학살 공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와 같은 경제적 규모의 문제에 따른 정치적 해결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살육 공장 시설 네트워크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의 동쪽과 서쪽에 걸친 폴란드에 주로 세워진 것은 이 지역이 독일과 소련이 충돌하던 핵심지역인데다, 장기화되는 전시상황, 그리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지역이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주요 정착지였다는 상황도 고려해야할 듯하다. 이 시기에 독일이 벌인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1942년에 베우제츠, 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폴란드 유대인만 약 130만 명이 가스 시설에 처형되었다(456). 여기에 약 1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은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벨라루스와 바르샤바 봉기로 폴란드인 등의 소수 민족들에 대한 독일군의 보복과 총살이 계속 이어져 수십 만 명의 희생자가 더해졌다.

 

독일이 패망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눈엣가시였던 일본이 힘을 잃자 사실상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쥔 소련은 이제 냉전 구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후 새로운 재앙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다시 불어오고 있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최종해결책은 이제 스탈린의 전후 인종청소 작업에도 이용되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적 명분이 가미되면서 유대인은 물론 독일인에 대한 보복과 소수민족 박해로도 이어졌다. 이 시기의 재앙적인 만행과 인권 유린을 더 자세히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서구 유럽 문화에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민족이 여전히 큰 고통을 당했지만, 절대 다수는 인종주의라는 허울에 스러져갔던 유대인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럽 사회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독하고 욕심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희곡은 정의가 샤일록을 응징하는 모양새로 끝난다. 이처럼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희생 대상을 찾던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언제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벌거벗은 진실이 그 이유를 누설하진 않으리라

- 대량학살과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었을 법한 지점이 독일과 소련의 정치적 대량학살이기에,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 사회에서 대량 학살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 저자는 대량학살의 사례로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 해결책(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소련 침공 직후 생포한 소련 전쟁 포로를 굶기기,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정책 등을 거론한다. 대량학살이 일어난 사례를 보면, 히틀러의 신념체계와 독일인들이 처했던 경제적 규모의 문제가 대량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대량학살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 대량학살 사건으로부터 대량학살의 메커니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대량학살의 씨앗이 되는 지도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소수더라도 지도자에게 충성을 보이는 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 스탈린이 주장하던 유대인의 음모혹은 히틀러의 아리안 신화와 같은 허구적 명분이 필요하다. 이 허구의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결속을 더해주는 힘도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대량학살의 초기 단계에 이를 막을 세력이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가 처형 대상과 수행자의 목숨 사이에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존을 선택하고 학살임무를 맡은 수행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는. ‘모비 딕을 끝까지 추적해서 복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선장 에이해브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 앞에 의문을 품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있다. 하지만 스타벅도 선원들을 선동하는 에이해브를 끝내 저지하지 못하고, 결국 소극적 동조자가 되어 함께 파멸을 맞는다. 현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대량학살의 여러 특징 중에서 이 부분에 주목해본다. 대량학살로 이어지기 전에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하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대량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학살은 분명히 인간에 의해 저지되고 중단될 수 있었다.

 

다시 잠시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스탈린이 기획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서방세계에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맺고 싶었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11월에 소련을 정식승인하게 되는데, 이런 정세로 스탈린이 기획한 테러와 학살이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에서 나아가 서방 세계로부터 외면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나치 독일이 193991일 새벽,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에 따르면 이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더라면, 폴란드인, 벨라루스인들에 대한 학살 및 강제이주, 그리고 30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 포로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나치의 살육 공장 네트워크의 건설이나 레닌그라드 봉쇄로 스러져갔던 많은 이들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결론에서 제시하는 대량학살에 관한 문제의식 역시 이 지점을 향한다. 저자는 그런 (대량학살) 정책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706)라고 묻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위해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들이 왜 대량학살을 벌였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작업이 바로 우리 인간,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샤일록과 같은 인물이 존재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샤일록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샤일록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왜 그러한 행동이 당연하게 말이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도 샤일록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란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아직 헉슬리가 언급한 통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보편적인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응했다면, 최소한 자국민을 많이 학살하며 은폐되었던 스탈린식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외에서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나치의 살육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외부 세력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단계, 사람에 의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병사는 당신들의 시가 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는 내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검은 노래를 곁에 두고 펼쳐보았다. 이 글의 소제목은 모두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조금 수정하여 가져왔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자신의 책에서 아우슈비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살육공장에서 스러져간 이들은 생존한 사람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노동시설에 살육시설이 더해졌기에, 생존자들의 증언이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저자도 책에서 한정한 시공간에서 자행된 살육이 유대인에 대한 희생자 수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많다는 점도 상기시켜준다. 또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의 4분의 3정도는 1943년 봄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 복합 시설이 들어섰을 때 이미 희생된 상태(677)였음을 지적한다. 소련의 경우를 포함하면, 소련과 나치 체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된 이들의 90%이상은 이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가동되기 전에 발생했다. 이 지적은 이 시기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가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좀 더 폭넓고 균형감 있게 이 시기에 벌어진 대량학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40-45년 사이, 처칠은 이 지역의 식량을 강제로 징발하여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도인을 굶주림으로 사망하게 만든 사건에 책임이 있다. 처칠이 내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팔과 인도 동부 벵골 지역을 통해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올 수 있다는 전략적인 우려와 판단에서 취해지긴 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학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사건은 블러드랜드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벗어나 있지만, 대기근이 의도적으로 유발된 정황, 그리고 영국에 의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외면당했던 정황이 있기에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비교하기에 좋은 사례로 여겨진다. 저자가 1945년 이후 소련이 승리를 거머쥔 뒤 독일인에 대한 스탈린의 강제 이주 및 전후 인종청소와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언급하고 있는데다, 1958-60년에 마오쩌둥의 중국이 기근으로 약 3,0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언급(774, 주석7)을 한 이상, 연합국 측의 유사 학살 행위 역시 함께 언급되었더라면 보다 균형 있는 서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저자의 논점 하나는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정치적 대량학살의 기원과 그 여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그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고 있다(27). 또 저자의 다른 논점은 유럽 사회에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인종주의, 특히 반유대주의를 재발견한 점이다. 허구적 기준인 를 잣대로 삼아 인종을 평가하고 편견을 용인해온 서구 유럽의 역사가 1930-40년대, 블러드랜드라는 특정 시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어떤 재앙을 낳을 수 있었는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인종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을 접하고 있다. 역사가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현재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는 잠재력과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스나이더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정확한 숫자를 기반으로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러져간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작업도 함께하며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샤일록은 원래 악독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샤일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새롭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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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3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5-07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왠지 1등 의 기운이 ㅎㅎㅎ

북플로 초란공님 이 페이퍼에 댓글 달았었는데,,,,(리뷰 올라오자 마자)
살아졌으요 ㅠ.ㅠ

초란공 2021-05-07 18:18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이달의 페이퍼 당첨 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Scott님의 엄청난 자료와 글로 항상 풍성하게 배울것이 있어요~ 음악도 잘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음악이야기 올려주시는 것도요~ 눈호강 귀호강 제대로 해요~^^

초딩 2021-05-08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주말 되세요~!

초란공 2021-05-08 20: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초란공 2021-05-09 10:3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