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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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해 전 즈음이었을 게다. 히구치 타쿠지의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라는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내가 죽은 후 남게 될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때가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방송작가 슈지는 혼자 남게 될 아내의 결혼 상대를 찾았고, 슈지의 마음을 안 아내 아야코는 남편을 위해 맞선을 허락한다. 이 책은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슈지가 방송작가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세상의 온갖 일을 호기심으로 즐겁게 변화하는 작업'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죽음, 그리고 남게 될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조차 까마득해질 무렵 나는 또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라이브러리 저널》에서 대형 신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된 콜린 오클리의 데뷔 소설 <<비포 아이 고>>가 바로 그것이다. 부제가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를 읽었던 때를 떠올리개ㅔ 되었고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비포 아이 고>>는 4년 만에 유방암이 재발하면서 남은 시간이 4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게 된 데이지의 2월부터 5월까지의 기록을 담아냈다. 지역사회 상담 전공 석사과정 2학기 대학원생인 데이지는 4년 전 유방암에 걸린 후 치료가 끝난 뒤부터 매해 암 치료 기념 파티를 열었다. 수의사 과정과 수의학과 박사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는 남편 잭은 3주년이 되는 올해는 1박 2행 여행을 계획했다는 말로 데이지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암치료 여행을 가기도 전에 데이지는 암 수치가 올라갔다는 조직 검사 결과를 받게 된다. 다시 수술하고 싶지 않았고 항암 치료, 방사능 치료를 하면서 또다시 인생에서 1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지만, 항암 치료가 불필요한 작은 종양이길 바라는 데이지와 바람과 달리 암은 온몸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간에도, 폐에도, 뼈에도, 심지어 뇌 뒤쪽에도 오렌지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고, 앞으로 4개월, 어쩌면 6개월이라는 짧은 삶만 남았을 뿐이었다. 잭은 얼마 전 3개월 뒤에 졸업하면 아기를 가질 거라는 계획을 말했던 바 있지만, 데이지는 암이 온몸에 퍼졌고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암의 재발에 대한 분노는 곧, 그러다 자신이 죽으면 침대 밑에 양말을 벗어놓는 버릇을 가진 잭의 양말을 누가 치워주며, 누가 잭의 어깻주기 바로 아래를 긁어주고, 누가 도시락을 싸고, 누가 낡은 집을 수리하며, 누가 청바지를 찾아주고, 누가 장을 보러 가고, 누가 잭이 매번 식사로 망할 시리얼을 먹지 않도록 해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데이지는 공포에 질리게 된다. 잭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데이지는 안다. 아니, 잭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따뜻한 사람, 돌봐주고, 사랑해주고, 더러운 양말을 치워줄,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암으로 인해 무기력해졌던 데이지는 이제 계획이 생겼다.

 

잭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찾아줄 생각이다. (본문 137p)

 

데이지는 학교를 가지 않고 자신의 옆을 지키려는 잭을 학교로 보내고, 낮에는 여자들을 살펴보고 밤이면 저널 더미에서 좋은 배우자를 만들어주는 요소, 장기적으로 건전한 부부 관계를 규정하는 특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데이지는 자신의 친구인 케일리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함께 잭의 아내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던 중 케일리의 유치원 동료교사이자 케일리가 늘 험담을 늘어놓았던 패멀라를 적격자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을 추진하게 되는데 데이지는 잭과 패멀라가 이미 아는 사이임을 알게 되면서 점심시간에 쿠키를 나눠 먹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욕심이 생겨난다.

 

잭이 패멀라의 이름을 부르는 말투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나도 케일리만큼이나 그녀가 싫어진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싫어진다. (본문 272p)

 

데이지는 잭을 원하지만 잭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잭이 패멀라의 말을 돌봐주러 가는 것이 두 사이의 불씨가 자라날 기회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잭이 죽어가지 않는 사람을 사귈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패멀라가 잭을 말 농장에 초대한 이후로 가슴이 아프고, 폐가 짓눌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렇게 잭을 밀어내려던 데이지는 어느 순간 잭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찾아가지만, 그의 연구실에는 패멀라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데이지는 패밀리를 미워하고 증오심을 갖게 된다. 뇌종양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데이지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잭을 병원에 오지 못하게 했지만, 순간 잭이 필요할 때 전화를 걸면 패멀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잭 옆에는 데이지가 아닌 패멀라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잭이 행복해지면 좋겠어. 하지만……하지만……." 하지만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잭이 패멀라와 사귀도록 하겠다는, 잭이 자기 인생을 살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가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뿐. 아직은 잭이 나를 잊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도 행복해지고 싶은 거지." 케일리가 대신 말을 맺어준다.

"응.'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직 죽지도 않았잖아, 젠장." (본문 379p)

 

4개월이라는 남은 인생에 남편 잭을 위해 아내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느끼게 되는 데이지의 심리변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공포가 너무도 잘 묘사된 작품이다. 잭의 옆에서 해주었던 많은 일들이 자신이 사라지면 잭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잭의 아내를 구해주려던 데이지, 하지만 데이지에게는 여전히 잭이 필요하고 여전히 잭과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 사랑하는 가족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다. 남은 가족에게는 충격으로 끝이 아니라 그것은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것을 알기에 데이지는 잭에게 새로운 삶을 주려하고, 자신을 밀어냄으로써 고통을 줄여주려 애썼던 것일 게다. 하지만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잃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야하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남은 시간을 평온하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조금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앞둔 사람 또한 남은 인생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산다면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곳,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갈바리의원의 100일간의 기록을 담아낸 <블루베일의 시간>이란 책을 통해 배우고 느낀 바 있다. 같은 소재로 쓰여진 <내 아내와 결혼 해주세요>와 <<비포 아이 고>>는 서로 다른 과정을 보여주었지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똑같은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음은 죽음으로도 갈라 놓을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비포 아이 고>>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가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남편의 아내를 찾는다는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나는 데이지를 통해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남은 시간,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인지하고 감사함과 미안함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죽음을 앞둔 자와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될 남은 가족들에게도 필요한 일임을 안다. 간혹 드라마를 보면 죽음을 앞둔 주인공을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일부러 정을 떼기 위해 애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남은 시간 조차 행복할 수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이. 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도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는 데이지와 잭을 통해 또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한 때 내 죽음을 떠올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남은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나는 데이지가 되었고 그로인해 고통스러웠고 아파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데이지, 그녀로 인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감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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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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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3세였던 회사 후배는 친구를 통해 남자친구를 소개받았고 썩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곧 결혼 조건이 맞지 않아서 헤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솔로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상대에 대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탓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미혼남녀의 결혼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한 남성은 인터뷰를 통해 결혼을 위해 3년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돈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어 다시 결혼을 연기해야한다고 말했다. 사랑이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이제 결혼은 조건이 전부가 되어가고 있다. 결혼연령이 점점 늦어짐에 따라 사람들에게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위한 '조건'은 더욱 필수불가결해졌다. 여기 부와 안락함이라는 현실 앞에서 사랑과 타협할 위기에 놓인 한 30대 여성이 있다. 그리고 그 타협 앞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도 있다. 사회의 변화로 인해 우리의 가치관은 흔들릴 수 밖에 없음에 나는 더욱 주목하면 읽었다.

 

이 치열하고 냉혹한 시대, 감히 낭만을 꿈꾸다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을 우리는 '로맨스 푸어'라고 부른다. (본문 中)

 

5년 전 여름, 이유를 알 수 없는 폭우가 중부지방을 강타해 산 빼고는 전부 물에 잠겼다. 농사는 망했고 가축은 다 죽었고, 서울엔 사람들이 시름시름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인터넷에는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글도 꾸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다영은 32살의 미혼여성으로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10년도 전에 세상은 단 한 번의 수능으로 인생이 바뀔 거라고 호들갑 떨었기에 면도칼로 손톱 밑을 찔러가며 수능 공부를 하고, 숫자라면 질색하면서도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어이 은행에 취업까지 했지만 순조로운 인생을 만드는 숫자는 수능 점수나 학점이 아니라 통장에 찍힌 잔액이라는 것을 졸업 후 13년이 흐른 뒤에야 면도칼을 질겅질겅 씹어대던 고등학교 동창이 한 달에 3백만 원짜리 펀드를 들어주고 갔을 때 알았다. 우연히 지점장의 방에 들어갔던 다영은 지점장을 기다리는 VIP 이성욱이 던진 추파를 견뎌야했고, 지점장 컴퓨터에 떠 있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름의 승진 대상자를 보게 된다. 승진대상자로 인해 지점장과 논쟁을 벌이던 다영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결국 강남 120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이성욱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인류 역사상 결혼이 낭만의 영역에 존재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결혼은 서로의 신분을 섞고 세탁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재화 혹은 권력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숨만 쉬어도 갚아야 할 빚이 늘어가는 이 사회에서, 서로 나눌 게 전혀 없는 남녀간의 결혼은 사회·경제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뒤집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은 그랬다. 남자 잘 만나 팔자 펴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어도(아예 안 해봤다고도 못한다. 강남 120평은 지금 뭐 할까), 적어도 같이 낭떠러지로 구를 생각은 없다. (본문 206p)

 

애볼라 바이러스도 아닌 것이 걸렸다 하면 다 죽는 전염병이 돈다는데 의사들은 비타민을 잘 챙겨 먹으라 했고, 이에 비타민 주사가 동이 나자 심각한 질병이 있는 사람만 맞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부자들은 지들끼리 어딘가에서 잘도 구했다. 다영은 자신의 몸을 챙기기 위해 가짜 처방전을 받는 조건으로 세 달치 월급을 썼다가 피고석에 앉게 되었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5백 시간을 판결 받는다. 그렇게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홍대에 간 다영은 꽃미남 우현을 만나게 되고 좀비의 습격으로 강북일대가 폐쇄되는 상황에서 함께 도망을 다니는 처지가 된다.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던 다영과 우현은 서교동 끄트머리와 망우동 끄트머리에 걸쳐 거대 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유토피아펠리스를 찾음으로써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펠리스민으로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좀비의 눈알 10개라는 할당량을 채워야만 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좀비의 눈알(아이볼)을 수집해야했고 다영은 의외로 잘 적응했다. 그 와중에 다영은 우현에게 마음이 쏠리지만 강남 아파트서 한우나 씹게 해주는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에 우현에게 향하는 마음을 자제하곤 했고, 우현 역시 다영에게 마음을 표현하지만 다영은 그런 우현을 모른 체 한다. 그러던 중 다영은 이성욱을 다시 만나게 되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성욱은 자신을 강북에서 탈출시켜 줄 수 있는 구세주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30대 여자의 연애는 다르다. 나는 그와 미래를 함께할 생각도 없고, 어설픈 애정 놀음으로 어색한 사이가 될 생각도 없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엔, 거쳐야 할 계산기가 너무 많다. 그가 내 키스를 거부할까 봐 두렵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나가 바퀴벌레나 튀겨 먹으며 같이 살자고 말할까 봐 더 두렵다. (본문 173p)

 

"그러니까 너는, 가슴이 미칠 듯이 뛰는 욕정의 대상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갖출 거 다 갖추고 떵떵거리고 사는 안방마님이고 싶다는 거네."

그녀의 말에 내 결혼관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깨닫는다. (본문 206p)

 

다영은 사람 눈알을 빼서 모으는 게 도덕적으로 과연 옳은가를 고민하는 우현과 아파트 사람들의 모가지를 쥐고 있는 이성욱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목숨이 보장되는 안정된 결혼 or 목숨도 걸 만한 짜릿한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영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만,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다. 세상은 점점 가진 자에게 더욱 유리해져가고, 정의롭고 착하게 살다가는 손해를 보기 일쑤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하지만, 세상은 점점 가난한 자를 죄인 취급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는 나라도 포기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고, 현실에서도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해서 난 다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낼 수 없는 현실을 탓할 뿐.

 

사랑이 밥 먹여주는 세상이 아닌 통장의 잔고가 밥 먹여주는 세상에서 20대와는 또 다른 30대의 사랑을 담은 <<로맨스 푸어>>는 좀비와의 추격전이라는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공존하는 색다른 장르의 소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등장인물의 마음에 좀더 쉽게 다가가 공감의 폭이 더욱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영은 속물이었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우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이고. 서스펜스가 곁들여진 탓에 로맨스의 달달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나, 싶은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꽤나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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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7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지윤 옮김, 노먼 프라이스 그림 / 보물창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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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하고도 파란만장한 모험 이야기를 담은 『보물섬』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해양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로 유명한 영미문학의 대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대표작이자 그가 어린이를 위해 쓴 첫 장편소설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해적이 등장하는 해양소설들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며 세기를 뛰어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에겐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어른들에겐 마음속에 숨겨 놓았던 모험심을 꺼내어 줄 작품으로 『보물섬』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함께할 것이다. (표지 中)

 

어린시절 즐겨읽던 명작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읽게되는 것은 추억과 동심을 되찾게 하는 즐거움도 있고,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작품의 의미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랜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고전이 주는 감동, 고전의 힘을 느끼는 놀라움이 가장 크다. 1800년대 작품이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으며, 독자 연령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 너무도 신비롭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은 고전이 가진 본연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완역본이라는 점과 역자 해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작품의 배경 등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시리즈였다. 이 시리즈로 인해 고전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아들녀석은 집 곳곳에 물건을 숨기고, 보물지도를 그려 해적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손수 그린 집 설계도면 곳곳에는 X 표시가 있고 그곳에는 물건들이 숨겨져 있다. 어른이 보기에는 뻔한 지도이지만 너무 쉽게 찾으면 큰일난다. 반대로 내가 보물을 숨겨야할 때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큰일난다. 이 보물찾기는 아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놀이인데, <<보물섬>> 또한 저자가 의붓아들인 로이드와 지도를 그리며 놀다가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하니, 상상력의 시작이 그리 먼 곳에 있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보물섬>>은 어린시절 TV 만화영화로 자주 시청하곤 했는데 책으로 접한 것은 부끄럽게도 약 3년전 즈음인 듯하다.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던 탓에 마치 책을 읽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3년 만에 다시 읽게 된 <<보물섬>>을 나는 마치 처음 읽는 작품인냥 짐의 모험에 가슴을 졸이며 읽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시리 긴장이 된다. 특히 짐이 키다리 존 실버를 '벤보 제독 여관'에서 빌이 말했던 '외다리 뱃사람'과 동일 인물임을 알지 못했을 때는 괜시리 답답하기까지 했으니, 내가 이들의 모험에 얼마나 푹 빠져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요즘, 돈 앞에 장사없다,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점점 흉악해지는 세상은 돈 때문에 부모형제, 친구를 속이고, 살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인간의 삶은 사랑, 꿈이 아닌 돈이 전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돈 앞에서는 이렇듯 선과 악이 종이 한장 차이가 되어버리곤 하는데, <<보물섬>>은 바로 그런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짐 호킨스는 정직하고, 의리있는 용감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빌이 죽은 뒤에 가방에 있던 금화를 가져도 좋았을 상황에서 외상값만을 계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물 앞에서 온갖 탐욕을 보여주는 이들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 악당들에게 내가 정직한 여인이라는 것을 보여줄 테다. 내 몫만 가지고 단 한 푼도 더 갖지 않을 테야." (본문 50p)

 

 

저자는 짐, 의사인 리브시 선생님 그리고 선장 스몰릿 선장 그리고 해적을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 놓았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결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해적들의 노랫말 중 '나머지는 악마의 손에 맡기고 술을 마시세!'(본문 18p) 는 이러한 악에 관한 인간의 본성을 함축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악과 더불어 술 역시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요즘 이런저런 사회문제 속에서도 술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원인 제공을 하고 있으니 두 말할 필요 없지 않을까. 이에 저 노랫말은 '악'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어린시절 만화영화로 보았던 <<보물섬>>은 보물을 찾기 위한 모험이 전부였지만, 어른이 되어 읽는 <<보물섬>>에는 자본주의의 병폐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이 보였다. 이런 사회적 문제점을 해적, 모험, 보물찾기라는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 속에 숨겨놓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보물섬>>의 짐은 용감하고 의리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짐이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많은 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거친 파도를 만나게 될지라도 짐처럼 용기있고, 정직하게 헤쳐나아간다면 분명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무모한 행동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짐의 그런 행동을 통해 옳고 그름도 판단할 수 있는 역량까지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독자 연령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매력, 힘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생하고 역동적인 <<보물섬>>을 읽는 동안은 독자들은 마치 히스파뇰라호의 훌륭한 범선에 함께 탑승한 듯한 실감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모험의 세계로 가실 분은 히스파뇰라호에 얼른 승선하시길!

 

(이미지출처: '보물섬'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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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사과쟁이 솜사탕 문고
박혜숙 지음, 주미 그림 / 머스트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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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 부모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등의 인사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야 과자를 주기도 하고, 친구랑 싸울 때는 '미안해'라고 꼭 사과를 하게 하고 포옹으로 마무리하지요.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감사와 사과에 대한 인사에 많이 인색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인색하지요. 감사와 사과에 대한 인사를 배웠지만 정작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게 되고, 진심이 아닌 건성으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닌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은 그 마음을 금새 알아챈답니다. 감사든, 사과든 인사를 하긴 했는데 어떠냐구요? 그렇다면 여기 주인공 공주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초등학교 1,2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머스트비의 저학년 솜사탕 문고 시리즈 <<말로만 사과쟁이>>에서는 진심이 담긴 사과와 말로만 하는 사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인공 공주를 통해 알려줍니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되지요.

 

 

 

수학 백 점 맞았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공주는 오빠만 생각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화가 잔뜩 났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공주에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기집애라고 하지요. 친구들은 SBC 아홉시 뉴스 앵커인 아버지를 둔 공주를 부러워하지만, 왕 노릇을 하려는 아빠와 아빠 붕어빵인 오빠 때문에 공주는 완전 찬밥 신세입니다. 그런 탓에 공주는 반장이 되자 반드시 선생님과 친구들 사랑을 독차지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가 될 거라 다짐하지요. 무엇이든 잘하는 만능 반장이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선생님이 칭찬할 때마다 힘이 솟았고, 자신감도 자랐지요. 그러던 어느 날, 미라의 핸드폰이 없어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선생님은 아버지 생신이라 조퇴하신 상황이라 반장인 공주는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미라의 핸드폰을 본 친구들을 찾아보고, 체육 시간에 교실에 남아 있었던 친구가 누구인지 추측하면서 공주는 결국 은별이를 도둑으로 몰아세웁니다. 은별이는 아니라고 했지만 반 아이들이 공주를 도와 책상 속과 사물함, 가방을 뒤지자 은별이는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핸드폰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범인을 단번에 찾아낸 공주를 대단하다고 칭찬했지요. 공주는 은별이가 아이들이 도둑이라는 걸 다 알았기 때문에 내일 핸드폰을 가져올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은별이는 다음날부터 결석을 하게 되고, 핸드폰을 가져갔던 친구는 몰래 선생님에게 핸드폰을 갖다 놓습니다. 결국 선생님도 사건을 알게 되고 공주에게 은별이한테 사과하라고 말씀하시죠. 설상가상 친구들은 공주더라 만능 반장이 아닌 엉터리 반장이라며 공주를 탓합니다. 공주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애쓴 자신의 맘을 몰라준 선생님도 서운하고, 이제 와서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아이들도 얄미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은별이에게 사과를 하러 가야했지요.

 

"미안해, 이제 됐지? 선생님이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래."

조은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잘못했다고!"

이번에도 말이 없었어요. 살짝, 조은별이 얄미웠어요.

"이러면 되지?"
고개만 까닥했어요. 하지만 조은별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날 물끄러미 바라만 봤어요.

"너 참 이상하다. 왜 사과를 안 받니? 나더러 어쩌라고?" (본문 41,42p)

 

 

 

집에 찾아가서 사과를 했는데도 은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공주를 무시했습니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면서 미라 다리를 향해 힘껏 내리친 공주는 "미안해, 이제 됐지?"라고 사과하지만, 그 사과는 공주에게 되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아이들은 공주에게 '미안해, 이제 됐지?"라고 사과하곤 했지요. 억울하고 속상했던 공주는 그때서야 입으로만 사과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은별이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공주는 진심을 담아 은별이에게 사과를 하게 됩니다.

 

"지금 네 마음을 그대로 보여줘. 그 애가 받아줄 때까지 계속 사과해. 온 마음으로 상대방이 받아 줘야 진짜 사과거든." (본문 59p)

 

 

 

우리는 사과를 해야할 일이 종종 생겨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소중한 친구를 잃을 수도 있어요. 왜 사과를 해야하고 어떻게 사과를 하면 좋을까요? 공주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 방법을 알 수 있었지만, 부록으로 소개된 [사과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보면 그 방법이 더 자세히 담겨져 있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엄마라는 권위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잘못은 무조건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몰아세웠지요. 엄마인 제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아이들도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공주로 인해 아이도, 저도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는 거 같아요. 이제 왜 진심이 아닌 건성으로 사과를 하면 안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요? 진심으로 사과하는 법을 알려 주는 그림 동화 <<말로만 사과쟁이>>는 이렇게 가족과 친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심이 담긴 사과가 필요함을 잘 일깨웁니다. 한가지 덧붙히자면, 공주의 엄마 아빠가 공주에게도 사과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이미지출처: '말로만 사과쟁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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