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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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3세였던 회사 후배는 친구를 통해 남자친구를 소개받았고 썩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곧 결혼 조건이 맞지 않아서 헤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솔로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상대에 대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탓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미혼남녀의 결혼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한 남성은 인터뷰를 통해 결혼을 위해 3년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돈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어 다시 결혼을 연기해야한다고 말했다. 사랑이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이제 결혼은 조건이 전부가 되어가고 있다. 결혼연령이 점점 늦어짐에 따라 사람들에게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위한 '조건'은 더욱 필수불가결해졌다. 여기 부와 안락함이라는 현실 앞에서 사랑과 타협할 위기에 놓인 한 30대 여성이 있다. 그리고 그 타협 앞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도 있다. 사회의 변화로 인해 우리의 가치관은 흔들릴 수 밖에 없음에 나는 더욱 주목하면 읽었다.

 

이 치열하고 냉혹한 시대, 감히 낭만을 꿈꾸다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을 우리는 '로맨스 푸어'라고 부른다. (본문 中)

 

5년 전 여름, 이유를 알 수 없는 폭우가 중부지방을 강타해 산 빼고는 전부 물에 잠겼다. 농사는 망했고 가축은 다 죽었고, 서울엔 사람들이 시름시름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인터넷에는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글도 꾸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다영은 32살의 미혼여성으로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10년도 전에 세상은 단 한 번의 수능으로 인생이 바뀔 거라고 호들갑 떨었기에 면도칼로 손톱 밑을 찔러가며 수능 공부를 하고, 숫자라면 질색하면서도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어이 은행에 취업까지 했지만 순조로운 인생을 만드는 숫자는 수능 점수나 학점이 아니라 통장에 찍힌 잔액이라는 것을 졸업 후 13년이 흐른 뒤에야 면도칼을 질겅질겅 씹어대던 고등학교 동창이 한 달에 3백만 원짜리 펀드를 들어주고 갔을 때 알았다. 우연히 지점장의 방에 들어갔던 다영은 지점장을 기다리는 VIP 이성욱이 던진 추파를 견뎌야했고, 지점장 컴퓨터에 떠 있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름의 승진 대상자를 보게 된다. 승진대상자로 인해 지점장과 논쟁을 벌이던 다영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결국 강남 120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이성욱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인류 역사상 결혼이 낭만의 영역에 존재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결혼은 서로의 신분을 섞고 세탁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재화 혹은 권력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숨만 쉬어도 갚아야 할 빚이 늘어가는 이 사회에서, 서로 나눌 게 전혀 없는 남녀간의 결혼은 사회·경제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뒤집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은 그랬다. 남자 잘 만나 팔자 펴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어도(아예 안 해봤다고도 못한다. 강남 120평은 지금 뭐 할까), 적어도 같이 낭떠러지로 구를 생각은 없다. (본문 206p)

 

애볼라 바이러스도 아닌 것이 걸렸다 하면 다 죽는 전염병이 돈다는데 의사들은 비타민을 잘 챙겨 먹으라 했고, 이에 비타민 주사가 동이 나자 심각한 질병이 있는 사람만 맞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부자들은 지들끼리 어딘가에서 잘도 구했다. 다영은 자신의 몸을 챙기기 위해 가짜 처방전을 받는 조건으로 세 달치 월급을 썼다가 피고석에 앉게 되었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5백 시간을 판결 받는다. 그렇게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홍대에 간 다영은 꽃미남 우현을 만나게 되고 좀비의 습격으로 강북일대가 폐쇄되는 상황에서 함께 도망을 다니는 처지가 된다.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던 다영과 우현은 서교동 끄트머리와 망우동 끄트머리에 걸쳐 거대 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유토피아펠리스를 찾음으로써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펠리스민으로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좀비의 눈알 10개라는 할당량을 채워야만 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좀비의 눈알(아이볼)을 수집해야했고 다영은 의외로 잘 적응했다. 그 와중에 다영은 우현에게 마음이 쏠리지만 강남 아파트서 한우나 씹게 해주는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에 우현에게 향하는 마음을 자제하곤 했고, 우현 역시 다영에게 마음을 표현하지만 다영은 그런 우현을 모른 체 한다. 그러던 중 다영은 이성욱을 다시 만나게 되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성욱은 자신을 강북에서 탈출시켜 줄 수 있는 구세주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30대 여자의 연애는 다르다. 나는 그와 미래를 함께할 생각도 없고, 어설픈 애정 놀음으로 어색한 사이가 될 생각도 없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엔, 거쳐야 할 계산기가 너무 많다. 그가 내 키스를 거부할까 봐 두렵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나가 바퀴벌레나 튀겨 먹으며 같이 살자고 말할까 봐 더 두렵다. (본문 173p)

 

"그러니까 너는, 가슴이 미칠 듯이 뛰는 욕정의 대상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갖출 거 다 갖추고 떵떵거리고 사는 안방마님이고 싶다는 거네."

그녀의 말에 내 결혼관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깨닫는다. (본문 206p)

 

다영은 사람 눈알을 빼서 모으는 게 도덕적으로 과연 옳은가를 고민하는 우현과 아파트 사람들의 모가지를 쥐고 있는 이성욱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목숨이 보장되는 안정된 결혼 or 목숨도 걸 만한 짜릿한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영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만,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다. 세상은 점점 가진 자에게 더욱 유리해져가고, 정의롭고 착하게 살다가는 손해를 보기 일쑤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하지만, 세상은 점점 가난한 자를 죄인 취급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는 나라도 포기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고, 현실에서도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해서 난 다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낼 수 없는 현실을 탓할 뿐.

 

사랑이 밥 먹여주는 세상이 아닌 통장의 잔고가 밥 먹여주는 세상에서 20대와는 또 다른 30대의 사랑을 담은 <<로맨스 푸어>>는 좀비와의 추격전이라는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공존하는 색다른 장르의 소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등장인물의 마음에 좀더 쉽게 다가가 공감의 폭이 더욱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영은 속물이었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우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이고. 서스펜스가 곁들여진 탓에 로맨스의 달달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나, 싶은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꽤나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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