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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이라는 부제를 단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책제목이 노란색 표지 탓인지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내인 입장에서도 굉장히 쎈 느낌을 주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 제목을 본 남편들은 오죽하면 아내들이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를 먼저 생각해봐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물론 괴씸하다며 노발대발하는 남편도 많겠지만 이혼도 아닌 남편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결혼 19년차인 나는 아직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남편이 원수가 되고 어느 노랫말의
가사처럼 '님'이 아닌 '남'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19년을 살면서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내가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할 때는 서운할 때도 있었으니까. 사랑이 살의가 된 아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힘겨워하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과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그들을 통해 위로받고자 책을 펼쳤다.

"남편은 저보다 두 살 많지만 마치 '무능한 부하 직원' 같아요. '좀 알아서 행동하라고. 당신 남자잖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짜증 나 미치겠어요." (본문 49p)
원한에 사무친 나이 든 아내의 마음은 실로 헤아릴 수 없다.
'어떻게 복수해야 속이 후련할까?' (본문 163p)
사회가 변화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상당부분 가정일과 육아는 아내의 몫이다. 이는 아내가 직장을 다니든, 전업주부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는 결혼한 여성에 대해서 녹록치 않은 곳이다. 결혼을 하거나 인심을 하면 퇴사를 종용하고, 육아휴직이나 칼퇴근을 할라치면
온갖 눈치를 봐야만 한다. 직장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여성에게 남편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아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부분이 많지만 남편의 작은 배려만으로도 아내들은 힘을 얻기 때문이다. 얼마 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너무도 재미있게
시청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중년의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중 나문희, 신구 배우 역할의 문정아, 김석균 부부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극중 문정아는 전업주부이지만 결혼한 세 딸의 집을 오가며 집안일을 도와 용돈을 번다. 김석균은 아파트 경비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아내를 무시하는 발언을 시도없이 한다. 동생과 친척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아내한테만은 조금의 배려도 없는 김석균.
문정아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몰래 집을 얻어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이 부부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아내에게 남편의 말과 배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남편은 직장에, 아내는 가정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서 남녀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닐까? 그
불이익을 당하는 여성의 고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본문 89p)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한 아내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육아라는 시련]편에서는 직장을 다니면서 영유아기의
자녀를 키우는 아내의 분노에 초점을 두었고,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편에서는 부득이하게 전업주부가 된 이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더 이상 남편 따위 필요 없다]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 아내들의 원한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는 아이 유치원 준비와 출근 준비로
바쁜 아내와 달리 한 잔의 차로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남편, 회사에서 짤리면 좋겠냐며 협박을 하기도 하고, 자신만큼 벌어오면 집안일을 하겠다거나
아이랑 놀기만 해서 좋겠다며 빈정거리는 남편들이 있다. 아내는 일찍 퇴근하는 것에 대해 직장에서 사과하고,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에게 미안하다
해야한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는 육아와 집안일은 아내의 몫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아내가 우선적으로 직장을 포기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아내들은 이혼을 생각하지만, 이혼 역시 쉽지 않다. 이혼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현실,
재취업의 어려움 등이 버거워 아내는 이혼보다는 남편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남편의 입장도 있다. 육아휴직이 직장에서는
도태를 의미하고, 정시퇴근도 쉽지 않다.
육아휴직을 얻거나 잔업하지 않고 육아와 진압일을 위애 빨리 퇴근하면 '출세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업무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여겨서
주저하는 것이다. (본문 214p)

사회전반에 걸친 권위의식, 구 시대적인 성 역할 의식, 남녀 노동 환경의 격차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배우자가 죽기를 바라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사실 아내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저귀 한 번 갈아주는 것만으로도, 젖병 삶아주는 것만으로도 아내가 가지는 살의는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를 통해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등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인의
속마음을 담아냄으로써 독박 육아, 독박 가사를 피할 수 없는 일과 가정 양립의 현주소를 조명하면서 남편의 행동 지침을 제시하며 사회의 의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다소 무섭고 괴씸하게 느껴지는 책 제목에 불편함을 느끼는 남편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아내들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위로받는 아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길.
(이미지출처: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