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헤밍웨이와 코맥 매카시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부상하고있는 작가 데이비드 밴의 <<아쿠라이라움>>은 그 명성에 걸맞게 커커스 리뷰 '2015 최고의 소설', 아마존 독자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12개국 출간 및 영화화가 예정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어둡지만 안전한 아쿠아리움 속에서 바다를 꿈꾸던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이 아픔으로 얼룩진 가족의 비밀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가족 소설이자 성장소설로 심연의 바다처럼 어두운 이야기지만 생명이 살아숨쉬는 바다의 신비로움처럼 감동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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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다른 가족이 없었다. 단 한 사람도. 학교에 가면 다들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대신 이모나 삼촌이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나 사촌이 있었다. 그리고, 물고기들도 거의 모두 쌍을 이루거나 무리를 지어 다녔다.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은 사실 겨우 쌍을 이루거나 혼자였다. 왜 그럴까? 바다에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본문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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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열두 살 케이틀린은 수업이 끝나면 아쿠아리움에서 엄마 셰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케이틀린은 커서 어류학자가 되어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혹은 홍해 같은 곳에서 살면서 종일 따듯한 물 속에서 지내고 싶다. 엄마 셰리는 무거운 작업화를 신고 컨테이너항에서 일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항상 침대 위에 둘이 서로 포개고 누워 함께 뒹귀는 시간을 행복해하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케이틀린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학교에서는 샬리니와 단짝 친구로, 아쿠아리움에서는 새로 사귀게 된 노인과 함께 물고기를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케이틀린은 샬리니네 가족을 부러워했는데, 엄마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나 케이틀린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엄마가 야근하는 날, 차안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케이틀린에게 세관원이 다가와 겁을 주자 케이틀린은 그들로 인해 엄마와 자신이 곤경에 빠지게 될까 두려웠다.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 노인이 케이틀린에게 엄마를 만나 보고 싶다고 했고, 케이틀린의 말을 전해들은 엄마는 노인에 대해 오해를 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그렇게 셰리는 경찰과 함께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케이틀린이 만나고 있던 노인은 바로 어린시절 자신과 아픈 엄마를 버리고 간 아버지였음을 알자 셰리는 불같이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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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장 힘든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다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그 시간들도 결국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끔직했던 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이 지긋지긋하게 주위를 맴돈다. 엄마의 분노는 끝도 없이 팽창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본문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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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던 케이틀린은 할아버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지만, 셰리는 아픈 엄마를 자신에게 맡긴 채 떠나버린 아버지로 인해 받게 된 고통과 잃어버린 어린시절을 대해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셰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틀린에게 자신이 어린시절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경험케 하게 했으며, 아버지가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끼길 바랬다. 케이틀린은 엄마가 할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엄마의 분노를 묵묵히 참아냈고, 결국 셰리는 남자친구의 조언으로 아버지의 집과 돈을 받는 조건으로 함께 살기로 한다. 하지만 엄마의 분노는 좀체 가라앉지 앉았고 결국 할아버지는 케이틀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도망가지 않기 위해 셰리에게 처음으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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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엄마에게로 다가가 양팔로 엄마를 꼭 끌어앉았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감싸안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본문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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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은 아쿠아리움 속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주인공 열두 살 소녀를 통해 가족, 성장, 화해, 용서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시절의 셰리가 겪었던 고통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만큼 컸고, 그 분노는 셰리의 가슴 깊이 내제되어 있었다. 딸 케이틀린에게만은 자신의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셰리는 그 분노를 숨기며 살아왔지만 아버지가 나타나면서 그 분노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 아픈 고통을 표출하는 셰리의 모습은 안타까웠고 무서웠다. 이러한 셰리의 고통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오직 가족만이 해답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가족, 자신의 고통을 알아줄 가족,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줄 가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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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관련해서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어. 부모는 신이나 마찬가지야. 우리를 만들고 또 우리를 파괴시키지. 세상을 그러모아서는 원하는 모양대로 다시 만들어버리는 거야. 그러고 나면 우린 영원히 그게 바로 세상의 전부인 줄 알게 되는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말이야. 그 외에 달리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해. (본문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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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틀린은 자신의 집이 아쿠아리움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를 모른 채 살아가는 물고기들처럼 작은 집은 엄마와 자신의 아쿠아리움이었다.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알아가게 된 케이틀린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드디어 바다를 보게 되었고 알게 된 것이다. 어두운 이야기였지만 희망을, 용서를, 빛을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부모가 내 아이에게 때로는 아쿠아리움을, 때로는 바다를 보여줄 수 있음을 느끼게 된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부모로서 내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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