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원 - 제1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7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연노랑의 표지가 예쁜 책이기도 하지만, 책표지에 적힌 "꼭, 천천히 읽어주세요"라는 글귀가 더욱 눈길을 끄는 책이다. 사실 나는 책을 좀 빨리 읽는 편이라 천천히 읽어달라는 당부가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에 나는 모두가 잠든 밤, 혼자만의 시간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기억과 만남, 그리고 사람이 생각나는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봄의 정원>>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이 추구해온 주제와 표현기법을 집대성한 소설이라 평가하였으며, 완성도와 성숙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격찬을 받으며 제1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봄의 정원>>은 도쿄 도 세타가야 구의 철거 예정인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다로와 그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장르가 스릴러이니만큼 스토리가 강한 작품을 선호해 왔던 탓인지 다로가 자신의 집 가장자리 위층에 마주보이는 곳에 사는 니시가 이웃 집을 훔쳐보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벌어질거라 예상했다. 책 제목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을법한 로맨스 같은.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위기로 진행되어 간다. 극적인 전개나 로맨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밋밋하다거나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가능하면 그 댁 베란다 난간에 올라갈 수 없을까 하는데요. 원래는 여기 바로 윗집에서 제일 잘 보이겠지만, 아시죠, 벌써 이사 가신 거. 절대 강도질을 계획한다든지 몰카같은 건 아니고요. 그냥 좀, 음, 그러니까 저 집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본문 32p)

아내와 이혼 후 낡은 연립에 이사온 다로는 니시가 이웃집을 염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림을 그리는 니시는 학창시절 인기를 끌었던 사진집 『봄의 정원』에 실린 '물빛 집'이 좋아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이 사진집은 20년 전 이 물빛 집에 사는 젊은 광고 감독과 여배우 부부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집이었는데, 물빛 집에 대한 관심의 동기를 듣게 된 다로는 니시와 함께 사진집 속 물빛 집과 지금의 물빛 집을 비교하는 등 함께 물빛 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간다.

해당화가 피고, 느티나무에 잎이 움트고, 수국의 색이 변하고, 목백일홍이 석 달씩이나 꽃을 떨어뜨리고, 금목서가 향기를 발하고, 붉게 단풍이 든 나뭇잎이 지고, 그리고 또 추운 2월에 공기 중에 감도는 향기에 시선을 옮기면 홍매화가 피어 있고 백목련이 커다란 꽃잎을 벌렸다. 해당화와 백목력이 특히 아름다웠다.

그때까지 나무는 도로나 공원, 아니면 먼 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집에 계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길에서는 마당이 보이지 않으니, 집주인 일가와 연립주민들만 아는 계절이었다. 그냥 늙어갈 뿐인 물체가 아니라, 성장해서 꽃이 피고 겨울이면 말라 죽은 것 같던 나뭇가지에 또다시 움이 트는 생명이 있다. 동물이나 식물을 키운 경험도 없었던 니시에게,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살아 있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본문 48,49p)

<<봄의 정원>>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 평범함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의 지루하리만치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늘 그렇듯 봄이 다시 찾아왔고 봄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핀다. 작년과 별다를 것 없는 봄이 찾아온 듯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위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풍경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풍경 속에서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친숙함과 동시에 마치 새로운 것을 본 듯한 낯설음이 함께 느껴지는 듯 하다. 이렇듯 저자는 이 책에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풍경을 담아냈지만 독자는 이 평범함 속에서 오는 특별함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조용한 길을 홀로 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거리의 풍경과 기억 속에 있는 나고 자란 거리의 풍경이, 건물의 규모나 틈새와의 관계도 사람들의 밀도도 너무나도 달라서 기억 속 거리가 더 멀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것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아니면 천 개는 있었을 그곳 단지 어느 집에서 누가 본 풍경이 어쩌다가 자신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그런 생각까지 들 때가 있었다. (본문 62p)

또 하나, 기억과 만남,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소설 <<봄의 정원>>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 그 시절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주인공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진한 그리움이 배어져 나오고 있는 탓이다. 오늘 퇴근하는 길은 어린시절의 내가 걷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쭉 살아왔던 동네인 탓에 가능했을 일이다. 잊고 살았던 지난 날의 기억들, 모르고 지나쳤을 봄의 향기를 만끽한 하루였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나는 오늘 내 삶의 사진첩에 또 한 장의 사진을 끼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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