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달걀흰자를 거품을 낸 것에 그 밖의 재료를 섞어서 부풀려, 오븐에 구워낸 요리 또는 과자. 수플레란 ‘부풀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슈(chou) 껍질에 거품을 낸 난백을 섞은 슈 재료, 걸쭉한 커스터드크림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크림 재료, 되직한 베샤멜소스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베샤멜 재료, 설탕조림을 한 과일을 체로 걸러낸 것에 거품을 낸 달걀흰자를 섞은 푸르트 재료 등의 4가지 재료가 기본이다. 초콜릿 · 바닐라 · 커피 등을 넣어 여러 종류의 수플레를 만들 수 있다. 수플레는 식으면 부푼 것이 쭈그러들므로 구워낸 즉시 따뜻할 때 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中)

주저앉아버린 영혼을 다시 일으켜주는 인생 레시피 <<수플레>>는 이스탄불, 뉴욕, 파리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겪는 인생의 좌절과 회복을 프랑스 디저트인 수플레에 은유적으로 풀어낸 소설로, 유럽, 미국뿐 아니라 대만, 중국 등 아시아까지 약23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였기에 선뜻 읽어본다는 것이 모험처럼 느껴졌으나, 인생을 수플레에 은유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수플레처럼 우리의 인생도 부풀지 못하고 꺼져버리는 크고작은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게 하고 있으니 이 책에서 우리는 희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매번 수플레 한가운데가 푹 꺼질 때마다 릴리아는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걸 봤다. 아무리 살아가려고 계속 노력해도 영혼의 중심이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그녀의 삶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녀의 인생은 이 전설적인 디저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든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만하면 또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그러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절망할 때면 다시 싸워봐야겠다는 기운이 솟구치곤 했다. (본문 236p)

여기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뉴욕에 사는 릴리아는 남편의 뜻대로 살아온 여자로 두 아이를 입양하여 키웠지만 지금 남은 것은 남편과 두 아이의 냉대와 외면 뿐이다. 그녀는 얘기를 나눌 이 하나없이 늘 외롭게 지내고 있다. 파리에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마크는 비록 아이는 없어도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남자다. 그리고 페르다는 이스탄불에서 지극히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헌데 이들 세 명에게 인생의 위기가 닥쳐온다. 릴리아의 남편 아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했던 릴리아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게 되었고, 릴리아는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아니를 보살펴줘야 한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간 마트는 부엌에서 쓰러져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사람들을 기피하게 된다. 반면 페르다는 엄마의 엉덩이뼈가 부러진 탓에 엄마를 모셔와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페르다가 요리에 변화를 주고 싶은 것은 실제로 다른 맛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지금 이 현실에서 빠져나올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다. (본문 119p)

수플레는 하나의 인생 경험이고, 다른 경험들처럼 처음에는 넘어지기도 했다가 서서히 실력이 늘면서 좋아질 것이다. (본문 160p)

부엌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문이었다. 마크는 전에는 맡지 못했던 온갖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됐다. (중략) 시장에서 계절의 뚜렷한 변화를 목격했을 때는 생전 처음으로 이 세계가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이란 걸 이해하게 됐다. (분문 291p)

남편의 요구대로 살아왔던 릴리아는 이번 기회를 자신의 의지대로 살 기회를 삼는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하숙생을 받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외롭고 적적했던 마음을 풀어낼 뿐만 아니라 한 남자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절망에 시달렸던 마크는 어느 날 허기를 느끼고 부엌에 갔다가 요리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백화점과 시장을 다니며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엄마의 병이 점점 심해지고 치매 증상을 보이기까지 하면서 페르다는 점점 힘들진다. 그러던 이들은 우연히 [수플레-가장 큰 실망]이라는 요리책을 구입하게 되고, 수플레 한가운데가 꺼지는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간다. 유일한 탈출구는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는 것인 이들에게 수플레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때 자신이 처한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수플레 한가운데가 꺼지는 절망이 찾아와도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부엌에서 수플레를 만들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사소한 기쁨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부엌은 엄마의 가슴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며, 우주의 중심입니다."

집에 믹서나 거품기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마크는 수플레를 만드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포크 하나만 가지고 반죽해서 아주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 모든 이미지나 기억이 오랜 세월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부엌에 있을 때면 언제나 과거의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삶에서 좋거나 나쁜 일은 모두 부엌에서 일어났다. 그는 부엌에서 부모님이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이 났다. 그러다 아버지가 어머니 뒤로 와서 껴안곤 했다. 어머니는 계속 음식을 젓고 있었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어머니가 아버지를 용서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평생 같은 곳에서 살아왔고, 부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삶이 흘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204p)

<<수플레>>는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이 겪는 인생의 좌절과 회복을 그리고 있다. 독자는 이들을 통해 절망의 크기와 상관없이 사소한 기쁨은 삶의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로, 사랑, 소통을 느끼게 된다. 절망이 찾아와도 부엌은 늘 환한 불이 켜져있었다는 것을, 그 공간에는 엄마와 아내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알게모르게 부엌의 환한 불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게다. 이렇게 따뜻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이 소설이 주는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이 있었음을 암시해본다. 지치고 힘든 삶에 위로가 되는 책 <<수플레>>는 독자들에게 오늘을 살아갈 힘을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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