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오베라는 남자>로 할아버지 이야기가 인기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이지만 어쩐지 귀여운(?) 면이 있는 할아버지의 성향이 소설에서는 개성만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 적합한 탓이리라. 이 두 소설에 이어 이번에는 '페르디낭 할아버지'다. 이 책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예요>>는 오렐리 발로뉴 작가의 첫 소설로 주인공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앞선 두 할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다. 하늘색 표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담아낸 표지는 어쩐지 <오베라는 남자>를 연상케하고 있어 독창적인 면에서는 약간 아쉬움이 들었지만,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어떤 개성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괴팍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여타의 소설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다.

 

 

어머니가 몇 시간 더 뒤에 낳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끝까지 버텼지만 14일이 되기 20분 전에 태어난 페르디낭 브룅은 자신의 삶은 이렇게 시작부터 잘못 되었기에 운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여든세 살의 페르디낭은 가족이 없고 친구도 없이 칩거생활을 해왔으며, 자신의 약점들이나 실수들, 감정 따위들을 언제나 자신 안에 가둬두는 고집불통 숫염소였다. 이사를 싫어하고 누구와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하는 그가 지금 야반도주를 해야하는 상황에 온 것은 3년 전 아파트에 도착한 것부터였고, 정확히는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의 적대감은 제2의 천성, 처세술, 나아가 생존법이 되었다. 그렇다, 생존법이다. 페르디낭은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고독, 육체의 노쇠, 이 모든 게 그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 권태를 잊기 위해 페르디낭이 찾아낸 유일한 활동은 못되게 구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발동하면 누구도 예외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본문 53p)

 

인생의 쓴맛을 보게 했던 부인의 바람으로 인한 이혼 이후 페르디낭은 이 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고, 마치 함께 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서로 잘 맞았던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의 평화는 이로써 깨지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과거와 이상한 비행들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 페르디낭은 누구에게나 공포감을 안겼고, 페르디낭의 이혼한 전 부인이며 아파트의 진짜 주인인 루이즈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급속도록 악화되었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노인에 대한 전쟁이 선포되었다. 이 모든 것을 꾸미고 이끄는 이는 30년도 더 전부터 이 아파트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강철같이 힘센 주먹을 가진 루이즈의 친구인 쉬아레 부인이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그녀는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했고 패거리들의 도움을 받아 페르디낭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치게 할 계획을 짜냈다.

 

그가 결코 계산하지 않고 퍼주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 데이지다. 데이지는 그의 암캐, 그에게 가장 충실한 암캐다. 데이지와는 모든 게 단순하다. 교활함이 없다. 속박이 없다. 애정을 미끼로 하는 협박 따위도 없다. 소소한 배려든 부드러운 말이든 찔끔찔끔 인색하게 굴 필요가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런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본문 23p)

 

페르디낭은 인생을 쉽게 사는 무난한 성격이 아닌데다 누구와도 맞지 않는 전압 볼트 같다. 그는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아끼는 사람인데, 그가 결코 계산하지 않고 퍼주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의 암캐인 데이지였다. 그런 데이지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죽게 되자 페르디낭은 실의에 빠지게 되고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운 좋게도 약간의 찰과상과 치아가 하나 빠진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없자 페르디낭은 자신의 삶을 다시 살기로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딸 마리옹은 페르디낭을 양로원으로 보내기로 하지만 페르디낭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의 감독을 받는 조건으로 유예기간을 두게 된다. 이렇게 데이지의 죽음과 양로원에 가야하는 위기에 닥친 페르디낭에게 윗집에 새로 이사온 꼬마 줄리엣과 이웃집 노파 베아트리스가 다가오면서 페리디낭은 위기를 넘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쉬아레 부인의 죽음으로 페르디낭은 쉬아레 부인 살해범으로 고발되어 유치장에 갇히게 되는 더 큰 위기에 닥친다.

 

"내가 할아버지 집에 오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이 아파트 건물에서 유일한 할아버지이고, 나는 학교 식당에 가기 싫어서예요. 그런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좋아요. 할아버지는 재밌고 웃겨요." (본문 109p)

 

등 뒤로 문이 닫힐 때도 페르디낭은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클로델 부인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친절한 이웃집 할아버지.' 그의 특징을 말하기 위해 이 단어가 합쳐진 것은 그야말로 처음 있는 일이다. (본문 125p)

 

 

가족, 친구, 이웃과 소통하지 않은 채 온전히 혼자 살아가던 페르디낭 할아버지에게 위기가 닥치는 순간 이웃이 다가왔고, 문제가 해결되어가는 걸 보면서 독자들은 가족, 이웃과의 소통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페르디낭 할아버지가 꼬마 줄리엣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줄리엣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괴팍하고 까칠한 할아버지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저절로 웃음이 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또 하나의 오해가 생기게 되지만 말이다. 읽는내내 <오베라는 남자>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지만 '웃기지 않는데 어쩐지 웃긴' 페르디낭 할아버지만이 주는 개성과 웃음과 슬픔이 있기에 여타의 작품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가끔 우리는 할아버지들의 꽉 막히고 괴팍한 부분에 대해 이러쿵 저렁쿵 말을 하곤 하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그것은 우리들의 그릇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들도 이웃의 관심이 필요했으리라. 이 책을 읽다보니 점점 삭막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이웃과의 소통이 더욱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이미지출처: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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