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트 라임 청소년 문학 20
김선희 지음 / 라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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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2가 무서워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중2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우스게 소리로 듣고 말았던 이야기가 중2를 거쳐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괜한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른의 잣대가 아닌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만큼 몸과 마음의 성장 속도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은 당사자들에게도 힘겨운 과정이라는 뜻일게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가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라 인정하기 보다는 괴물, 중2병이라는 표현 등으로 그 과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 역시도 그런 딸아이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못마땅해하며 성장의 과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된 중2병을 앓고 난 뒤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 과정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음을 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반은 인간, 반은 동물. 즉 반인반수를 지칭하는 말로 한번 걸리면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고독하며 세상을 등진 존재라고 여기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중2병도 몰라요? 중2병은 약도 없대요. 하하하." (본문 39p)

 

중2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청소년 문학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진짜 중2 이야기를 담아낸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검은 하트>>는 우리 시대 진짜 중2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중2병으로 지칭되는 사춘기적 감수성과 고민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에서 저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뜨겁게 아파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배려하지 않는 사회의 무책임한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던지고 있어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아이들은 날 때부터 중학생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그 세계에 적응해 갔다. 그 전까지 내가 알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여자아이들은 예고도 없이 가슴이 A컵에서 B컵이 되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다. 어느새 여자가 되어 있었던 거다.

남자아이들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매일 교실 구석에서 결투를 별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코뼈가 부러졌고, 이가 나갔고, 유리창이 박살났다. 매일 피를 볼 때까지 싸우는 통에 선생님들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를 질러 댔다. (본문 18p)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동구반점의 외아들이자 곧 3대 주인이 될 진익이는 동기가 '독수리 오자매'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여자 연합 초딩 일진들에게 걸려 삥 뜯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동기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독수리 오자매'를 언급해보자면, 자신의 몸에 칼빵을 낼 수 있는 대담함, 차진 욕을 내뱉을 수 있는 창의력을 겸비해야 신입 회원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은 서울 지역, 경기 지역, 충청 이남 지역 등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전국 연합에서는 각 지역 짱들을 모아 놓은 연합 짱을 뽑는데, 연합 짱에 선출 되면 초등 일진들의 전설이 된다. 몇 년 전 경기도의 한 변두리 지역에서 나온 연합 짱 '검은 하트'는 일진들의 전설이 된 바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초딩에게 삥을 뜯긴 동기와 그것을 보고 숨어 있어야만 했던 진익이가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동기가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밴드를 결성한다며 진익이를 끌어들이려고 졸라댔다. 밴드의 마스코트로 무희를 두기를 두기로 했는데 그 중 한 명인 김요정은 진익이가 밴드에 합류한다는 말에 1초도 생각해보지 않고 오케이 했다고 하니 동기가 진익이를 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익는 엄마 다음으로 싫어하는 여자인 김요정과 함께 과외하는 것도 모자라 밴드도 같이 한다는 것이 싫었지만 어떨결에 '우주로탈출프로젝트'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오합지졸이 모인 이 밴드는 축제 때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김요정이 검은 하트라는 소문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요정은 결국은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진익이 역시 그런 요정을 돕다가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까 진익아, 너도 희망을 가져. 너도 나처럼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 (본문 91,92p)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동구반점'의 외아들로 태어났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가게의 주방장 겸 주인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내가 먹고 싶지 않아도 짜장면을 자주 먹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었으며, 내가 고르지도 않은 학교에 다녔다. 엄마 아빠를 골라서 태어나지도 못했고, 이렇게 작은 키와 못생긴 얼굴도 내가 고른 게 아니다. (중략)

처음으로 의문이라는 게 생겼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 의지대로할 수 있는 게 이렇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왜 아득바득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또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외삼촌은 진짜 자기를 찾아 떠난다고 했다. 나도 진짜 내 삶을 찾아 떠날 거다. (본문 179,180p)

 

한편, 진익이는 이 집에 태어나면서부터 동구반점의 전통을 이어 가야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다른 차원을 연구하는 외삼촌의 미스터리하고 기이한 행동은 동구에게 동구반점의 승계자가 아닌 다른 꿈을 꾸게하는 계기가 된다. 진익이가 아직 꿈을 찾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 것이다.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 이 책은 중학교 2학년인 진익이의 삶을 통해 중2 아이들의 현실과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꿈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갈등 등이 현실감 있게 담겨져 있다. 불치병이라 불리는 '중2병', 하지만 청소년들은 이 과정 속에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돋움을 하고 있었던 게다.

 

내 몸이 탈피를 한 느낌, 그리고 단단한 껍질이 벗겨지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난 느낌, 그리고 그 말랑말랑한 속살들이 매일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 그리고 언젠가는 또 탈피를 하고 말 것 같은 느낌, 그러면 좀 더 단단한 껍질을 갖게 될 것 같은 느낌. (본문199p)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진익이는 바로 우리가 괴물이라 부르는 중2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들은 괴물도, 꼴통도, 밉상도 아닌 성장해가는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아이의 가능성을 무시한 엄마, 요정이가 겪는 괴롭힘을 묵인하는 선생님, 힘겨운 중2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어른이 아닌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는 어른은 아닐런지. 이제는 어른들의 눈에는 못마땅했던 중2 아이들의 행동들이 바로 성장을 위한 탈피 과정임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할 듯 싶다. 여전히 중2병을 앓고 있는 고등학생 딸아이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이 조금 더 단단해져가는 과정임을. 그래서 그 과정이 이제 더이상 불필요한 시간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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