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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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 작가로 자리매김한 남인숙 작가가 이번엔 파격적인 책 제목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를 돌아왔다. 우리는 가끔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배우자에게 던지곤 한다. '물론이지'라는 답변을 듣고 싶은 마음을 담아낸 질문이겠지만, 정작 질문을 던지는 당사자는 '나는 아니'라는 마음을 갖고 있을 터이다. 그건 지금의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삶에 대한 열망때문이리라. 그러니 지금은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겠지만 다음 생애에는 다른 남자와도 살아봐야하지 않겠는가.

 

삶에는 어느 단계에나 선물이 숨어 있다. 누구나 '좋은 시절'이라고들 말하는 청년 시절에만 삶의 절정이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무지하고 어리석음과 혼돈으로 후회될 짓만 하고 돌아다니던 내 젊은 시절을 돌이키기도 지긋지긋하다. 나이 들어가는 지금이 더 좋고,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이 들어서 전보다 쓸쓸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청년 시절을 추적 관찰해보면 청년 시절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더 불행해진 게 아니라 지금 불행한 핑계로 나이 든 것을 선택한 것뿐이다. (본문 11,12p)

 

지금 나는 마흔을 넘긴 인생의 전환점에 있다. 이십대에 꿈꾸웠던 삶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것도 아니며 그 시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진 것도 아닌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더 느끼게 되는 결코 쉽지 않은 나이이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나와 동년배인 저자 역시 예전 같지 않은 건강, 이울어가는 아름다움, 사라진 낭만, 사회적 소회감, 노후에 대한 걱정 등으로 뒤범벅된 이 나이에 대한 체감 행복지수가 괜찮다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지금까지 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늙었으나 가장 행복한 이유를 찾고 싶어졌고, 젊음을 잃어가는 대가로 얻고 있는 좋은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단계마다 숨어 있는 '선물'을 전하고자 한다.

 

알고 보면 사람은 나이 들수록 삶이 재밌어지는 게 맞다. 살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내공을 다들 알게 모르게 쌓았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가장 좋은 때는 지났다는 사회적 공식 속에 우리 감정마저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친구들에게 '제일 예쁘고 좋은 시기를 살면서, 왜 죽겠다고 엄살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는 고집쟁이 어른의 전형에서 발을 빼고, 내가 먼저 재밌어지고 그 즐거움을 나누어주고 싶다. 근엄함은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본문 19p)

 

동년배이기 때문일까? 저자의 이야기에 이끌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책 속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다. 저자가 곧 나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 역시 아직도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며느리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정말 많은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나는 나이 듦이 서럽고 젊은 시절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한 때는 주연이었으나 이제는 조연으로 밀려났고, 육체는 점점 여행에 부적합해지고 있고, 머리커지는 아이들에게는 귀찮은 엄마가 된 지금이 마냥 좋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수많은 조연들을 보라. 오달수, 라미란처럼 주연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들이 있지 않은가. 유시진(송중기)도 멋있지만 서대영(진구) 또한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한때 모두가 주연이었던 우리는 이제 몇 계단 아래로 내려와 조연으로서의 삶을 즐길 때가 된 것 같다. 때가 되었는데도 주연자리에 미련을 놓지 못하고 새로 올라오는 이들의 손마디를 밞아 떨어뜨리는 이의 모습은 추하다. 나는 삶의 횡단면에서 주연 사퇴를 한 요즘이야말로 내 삶 안에서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 무지와 부족한 판단력 등에 묶여 꼭두각시 주연으로 살아온 젊은 날에서 해방되어 내가 쓰는 대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주연 말이다. (본문 68p)

 

가끔은 서글프게 다가왔던 지금의 나이 듦이 책을 읽다보면 그리 나쁜 것이 아님을, 아니 오히려 매해 선물을 받고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만큼 더 행복해지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지금의 나이들어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가끔' 서글펐던 때가 '아주 가끔'(인간은 그리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까) 서글퍼지지 않을까. 작가와 같은 동년배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또한 나와 다르지 않는 생각, 삶을 살아가는 이의 이야기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그랬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다. 작가가 건네는 이 한 줄이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힘이 되어줄 것임을 나는 깨닫는다.

 

시간의 흐름에 의연히 동행하는 것과 세월에 매몰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난 나이로 대접받지 않고 나 자체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이 듦의 방향을 정했다. (본문 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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