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 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 <<버드 박스>>는 히치콕의 <새>에 비견할 만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가가 '메두사'에 영감을 받아쓴 이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와,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용기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표지 中)로 2015년 제임스 허버트 상, 블램 스토커 상 데뷔소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로 하였는데 작가는 지금 그 후속편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호평과 출간 전 초고만으로 영화화 판권이 팔려 화제가 된 이 작품은 그 시작부터 팽팽하게 조여오는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맬로리는 안개가 낀 오늘 집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바깥세상을 한 번도 못 봤으며 창문을 내다본 적도 없었고, 맬로리조차 창으로 바깥 풍경을 못 본지 4년이 넘었다. 그랬다. 그 날로부터 4년이 지난 것이다. 맬로리는 보이와 걸 두 아이를 깨워 강에서 배를 타고 어디로 가야한다며 안내를 건넸고, 두 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안대를 받아 검은 천을 눈에 대고 머리에 단단히 묶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강이었음에도 왜 강을 타고 가는지 묻지 않았다. 맬로리와 아이들은 안대를 하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문에서 20미터가량 떨어진 우물을 지나 10미터가량 떨어진 오솔길을 지나고 1백 미터를 못 가서 나온 강을 안대를 한 채 오로지 소리에 집중하며 찾아갔고 세 사람은 그렇게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기다리고, 연습을 하고, 떠날 용기를 긁어모은 결과였다. 그녀와 아이들이 진짜 삶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었던 집을 뒤로 한 채.

 

지금 이 순간 온 세상이 죽어버린 것 같다. 맬로리 가족이 탄 작은 배가 지구에서 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라도 된 것 같다. 나머지 세상은 배의 서순에서부터 부채처럼 펼쳐진다. 양쪽 노 외에 아무것도 없이 활짝 부풀어 오른 텅 빈 구(球)에 불과하다. (본문 78p)

 

4년 전 그날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9개월 전의 일이었다. 인터넷은 '러시아 리포트'라는 이야기로 소란스러웠고, 맬로리는 임신임을 확인하게 된다. 맬로리는 자신의 임신으로 인해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곧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이 일은 뭔가를 본 사람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자살한다는 것. CNN과 MSNBC, 폭스뉴스에서는 똑같은 상황을 보도하고 있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바깥세상이 모두 폐쇄되었고 맬로리는 언니 섀넌과 TV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데 언니 섀년이 나무로 된 벽 저편에 무언가를 본 뒤 자살을 하게 되고 홀로 남은 맬로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얼마 전 신문 광고란에서 리버브릿지의 어느 집이 낯선이들을 받아준다는 이른 바 '안전 가옥'을 생각해 낸 후 자신과 아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눈을 감은 채 1시간 동안 고작 20킬로미터를 조금 넘게 이동할 수 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운전으로 그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맬로리는 톰, 줄스, 돈, 펠릭스와 유일한 여자 셰릴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공포로부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맬로리가 보이와 걸 두 아이들과 함께 눈을 감은 채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공포스러운 현재와 4년 전 공포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살아가기 위해 리버브릿지를 찾아가고 그들과 함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살아가는 과거의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구성되고 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태어나는 순간 눈을 감은 채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야했던 맬로리, 그런 훈련을 받아 청각이 발달한 아이들에 의존하며 주변의 소리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어딘가로 향해 가야만 하는 맬로리의 심리적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려졌다. 맬로리의 심리적 묘사만으로도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필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크리처가 부르게 된 그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왜 맬로리는 리버브릿지의 안전 가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 떠나지 않는 것일까? 이 호기심만으로도 독자는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사람은 크리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전부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죠.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발광을 하고 소란을 피운 게 크리처 때문이 아니라 그걸 본 사람들이 원래부터 예민하고 극단적인 경향이 있었다는 거예요." (본문 224p)

 

그렇다면 <<버드 박스>>라는 책 제목은 무슨 의미였을까? 먹을 것이 점점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보기로 결정한다. 물론 눈을 감은 채. 그러던 중 새들이 담겨진 박스를 발견하고 상자에 다가갈수록 새들이 더 시끄럽게 운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 버드 박스를 경보 장치로 사용하기로 한다. 헌데 책 제목은 단순히 이 새들이 담겨진 상자를 의미하는 걸까?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안전 가옥' 자체가 바로 버드 박스였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져 가옥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한 채 갈등과 분열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경보 장치인 새들이 담긴 상자와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4년 전 두려움 밖에 알지 못했던 맬로리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을 위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희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과정을 통해 진한 모성애도 함께 보여준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긴장감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버드 박스>>, 그 후속편에서 저자는 무엇을 또 보여주게 될까? 혹 저자가 말하는 광기어린 바깥 세상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은 아닐까. 맬로리가 느끼는 공포는 묻지마 살인과 폭행 등으로 공포를 느끼는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포감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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