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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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평범하기만 했던 하루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하루로 순식간에 바뀌어 놓으며 어느 누구의 위로도 소용없을 것만 같은 고통과 상실감은 희망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이제는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지만 엄마의 죽음이 우리 가족들에게 그러했다. 예기치 않은 비극으로 가족들은 모두 상실감에 빠졌는데, 그 상실감의 정도는 개개인이 달랐고 그 비극을 견뎌내는 방법 또한 모두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엄마였고, 누군가에게는 아내였으며, 누군가에게는 할머니라 불렸고, 누군가에게는 누나이자 언니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장모였던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각기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제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리워한다. 저자 제임스 에이지 자전소설인 <<가족의 죽음>>은 책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용과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기도 전에 엄마의 죽음을 먼저 떠올린 것은.

 

이 작품은 '문단의 제임스 딘'이란 별명답게 20세기 중반 미국 문화계의 반항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던 저자 제임스 에이지의 유작으로 어린 시절 유고한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소설로 쓴 자전적 추도사인데,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타임]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되는 등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한 가족에게 찾아 온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그려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비극이 닥친 하루 전과 그날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 총 3부로 나뉘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단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아빠를 바라보는 아들 루퍼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여느 때처럼 아빠는 극장에 가자고 제안했지만 엄마는 천박하고 추접한 그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고 극장을 빠져나오면 술집을 찾았다. 루퍼스가 보기에 아빠는 가정을 사랑하고 식구들을 모두 사랑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면서 얻는 만족으로도 어쩌지 못할 만큼 외로웠고, 오히려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외롭거나 외로움을 떨쳐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루퍼스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집 근처 길모퉁이에서 아빠와 함께 바위에 앉아 있는 일이십 분 정도가 너무도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에 알고 있던 아빠의 눈빛이나 입술과는 사뭇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 루퍼스가 잠이 들락날락할 때 화차들의 우르르 소리가 들리고 깊은 밤에 숨죽여 웅얼거리는 말소리는 꿈의 한 자락처럼 느껴졌는데, 이튿날 아침에 엄마가 아침식사 자리에 아빠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즈음에는 간밤의 말소리와 소음은 까맣게 잊은 뒤였다.

 

한밤중 잠결에 어둡고 텅 빈 복도에서 전화가 홀로 맹렬히 울어대는 통에 제이는 나직이 욕을 뱉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것은 동생 랠프로부터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건넨 전화였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아내 메리의 인사를 뒤로한 채 제이는 차를 몰았고 머지않아 듣게 될 최악의 소식을 생각하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차를 몰았다. 그날 밤을 멍한 상태를 밤을 세운 메리는 10시가 되기 몇 분 전에 울리는 전화벨을 받았고 엑센 시골 말투의 남자가 바깥양반이 사고를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그 사람은 남자 분이 와주길 바랐고 메리는 앤드루 오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주겠다는 오빠는 연락이 없었고 마침내 돌아온 오빠는 남편 제이가 사고로 즉사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메리는 지독한 두려움을 종교에게 의지하고자 했다. 다음 날 아침 아빠를 부르며 부모님 방으로 뛰어들어간 루퍼스는 방안에 아빠가 없자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엄마는 어린 동생 캐서린을 깨워 아빠는 다시는 오시지 않을거라고, 하늘나라에 가셔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루퍼스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보고 듣는 것밖에 없었고, 캐서린은 여느 때와는 달리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불안하고 슬펐다. 어린 캐서린은 그저 아빠가 빨리 집에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은 이처럼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찾아온 비극을 가족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견뎌 내는지에 대해 그려낸 책인데, 엄마 메리가 종교에 의지하고 있는 탓인지 종교적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비종교인인 탓에 책을 집중해서 읽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책은 남은 가족들의 치유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가족 소설로 스토아적 신자와 맹목적인 신자, 교회에 분노하는 자와 교회에는 분노하지만 영적 충동은 인정하는 자가 저마다의 관점에서 죽음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종교 소설로도 읽힌다(출판사 서평 中)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누군가에게는 종교의 가치관을 생각해볼 수 있는 폭넓은 책이 될 수도 있겠다.

 

한 가족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불행을 가족 하나하나가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견뎌 내는가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 낸 이 책은, 단순히 '그'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표지 中)

 

그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딸 캐서린, 함께 비밀을 공유했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빠져든 아들 루퍼스, 종교를 통해 슬픔을 견뎌내려하지만 서로 다른 종교관으로 가족들과 갈등을 겪게 되는 아내 메리, 이들에게서 아빠를, 남편을 갑자기 잃는 비극을 겪게 된 가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탓인지 그들의 슬픔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로인해 저자가 섬세하게 담아낸 묘사들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더불어 느낄 수도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제임스 에이지의 자전소설이지만 온전히 제임스 에이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경험했을 혹은 경험하게 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이 시간이 흘러도 식지 않고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일 게다. 종교소설이라 불릴 만큼 종교적 색채가 강한 탓에 개인적으로는 살짝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덧) 불과 며칠 전, 친정 아버지의 상태가 위독해지자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다행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한시름 놓은 상태에서 나는 <<가족의 죽음>>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내내 한없이 가라앉고 말았다. 서평이 내 생각대로 잘 써지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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