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김현성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이 주는 낯설음과 설레임을 동경하지만 내게 여행은 여행이 얼마나 가기 어려운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놓고 혹시라도 가지 못했을 때 빠져나갈 길을 미리 만들어놓곤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여행 서적에 관심을 갖곤 한다. 이번에 읽어보게 된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는 여행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여행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에세이다.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게 된 책이었는데 작가 김현성이 꽤나 유명했던 발라드 가수였단다. 책 읽기에 앞서 궁금한 마음에 가수 김현성을 검색해봤지만 나에게는 조금 낯선 가수다. 알려졌다는 <소원><행복> 등의 노래를 검색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1990년대 후반 미성 가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니 직장 생활하랴, 연애하랴, 결혼 준비하랴 바쁜 때라 그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현성을 가수로 먼저 만나봤겠지만 나는 작가로 먼저 그를 알게 된 셈이니 오히려 책을 접하는데 있어서 선입견 없이 오롯이 작가로서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떠나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인데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떠나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가 나머지 모든 이유보다 절실해졌다는 이유로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온전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 그는 자신과 연결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인 즉,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돌아와서도 다시 떠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할테니까. 현실의 무서움을 모를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었다. 왜 떠나고 싶어 하는지, 떠나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정말 그런 삶도 괜찮은 것인지. 그가 희미하게 나마 내린 결론은 자신이 원하는 삶은 세상의 더 많은 곳을 기웃거리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목격하고, 그들 안에 섞이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을 기록해 세상에 남겨놓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삶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이유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혹은 '감수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그것을 맞딱뜨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제발 이 지긋지긋하고 지치게 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매일매일의 업무, 가정에서의 일과, 사회적 위치나 역할로부터 이별하고 낯선 대지에 원시인처럼 던져지고 싶은 욕망, 그것은 공포 영화나 놀이기구를 즐기는 사람의 감정과 멀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용감한 감정이다. 스크린 속의 걸어다니는 시체나 살인마에게 죽도록 쫓기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보다 여행지에서 잠깐 길을 잃는 것이 훨씬 생생하고 끔찍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여행은 공포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요청이다. (본문 55p)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우리가 공들여 구축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일상을 구축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면서, 또 그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일상이 때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함을 알고 있지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대면서 여행을 가지 못하는 핑계를 마련해 두곤 한다.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나는 여행에 목이 말랐고 지금이라도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 켠에서는 가지 못하는 수만 가지의 이유들을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에 대한 낯설음과 설레임에 대한 막연했던 어떤 기대감에서 나는 여행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하며 겪게 된 돌발적인 상황에 관한 에피소드나 여행에서 얻은 인연, 여행지의 풍경 등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고, 여행을 통해 느끼는 외로움, 그리움에 대한 고찰도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나로하여금 내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듯 싶다. 나는 그동안 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했으며 여행을 동경하고 있었던 걸까? 그 목적이 그저 회피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 삶에 대해 나는 얼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저 이 일상이 주는 안일함에 만족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니 꿈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계속 꿈꾸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잠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도 깨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참 복잡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꿈을 쫓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판단 또한 그 사람의 인생의 몫이다. (중략) 끈기는 꿈꾸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버거워도, 말 그대로 배가 고파도 견뎌낼 힘이 있다. 고생스럽지만 꾸준히, 의지를 잃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 땀 흘려 밭을 일구고 결국 열매를 거머쥔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꿈이 밥 먹여주느냐고? 물론 밥 먹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늘 배가 고프지만 그렇다고 쓰러지진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 때 이들에게는, 꿈이 밥이다. (본문 147,149p)

 

이 책에는 저자의 꿈을 꾸기 위한 지혜, 꿈에서 깨지 않으려는 의지가 곳곳에 깃들여져 있다. 나는 김현성을 가수가 아닌 작가로 처음 만났다. 김현성은 누군가에게는 미성 발라드 가수이겠지만 나에게는 삶에 대한 진지한 철학을 가진 멋진 작가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눈을 가졌고,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독자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지닌 새내기 작가로 내겐 기억될 듯 싶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을 계속해서 기대하게 될 듯 싶다.

 

 

 

"어느 노년의 예술가가 그런 말을 했어. '젊은 시절의 내 인생은 완전한 혼돈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모두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던 것이었다.;"

  당신은 그 말이 상황에 꼭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와 그런 말을 전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고마움을 느낀다.

  당신은 두 발을 난간에 올리며 여유롭게 호수를 바라본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되려던 건지도 몰라.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한다. 계획표 같은 건 가방 안쪽 어딘가에 구겨져 있은 지 오래다. 시계를 흘깃 본다. 벌떡 일어나 기차역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기차를 놓치면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어쨌거나 기차를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고단한 일이니까. 9본문 188,189p)

 

(이미지출처: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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