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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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에는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고 있으며 그에 따라 쉐프들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쉐프들의 화려한 액션, 럭셔리한 레시피 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그 중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소박한 백종원 쉐프였고, 자급자족과 밭에서 나는 재료라는 컨셉의 <삼시세끼> 프로그램이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그에 따른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는 뜻은 아닐런지. 이는 절밥 음식이나 나물 음식 등에 관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는 것만 봐서도 알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책을 유독 많이 집필하는 이상권 작가는 어린이 도서 <풀꽃과 친구가 되었어요>를 통해 야생초에 관해 들려준 바 있다. 참 재미있게 읽은 동화책이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탓에 그저 잡초처럼 느껴졌던 풀꽃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경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이후 자연을 소재로 한 이상권 작가의 작품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야생초밥상>>은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 서둘러 읽어보게 되었다. 힘든 시절 가족의 살이 되어주었던 들풀들의 이야기 21편이 수록된 이 책은 추억과 맛이 함께 버무려 야생초의 향기가 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우리 조상들은 거의 모든 풀의 성질을 알고 있었고, 그런 풀들을 어떤 때,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알게 된 지혜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온 야생초밥상에 대한 역사다. (중략)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히는 책, 한 꼭지만 읽고 씹어도 야생초의 향기가 온몸에 퍼지게 되는 책,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날 때 꼭 한 권 들고 가서 편안하게 읽고 싶은 책. (본문 8,9p)

 

 

 

<<야생초밥상>>은 7년 전 작가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남도의 들로 놀러갔다가 우연히 할머니의 돌나물에 행복을 느끼고 '야생초로 만들어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까지 넣어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우리네 조상들의 살과 노래가 되었던 수많은 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저자는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으나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이 책의 출간도 포기할 무렵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사진작가인 이영균을 만나면서 이 책은 기적적(?)으로 아니, 다행스럽게도 출간되었다.

 

 

들과 논에서 흔히 자라는 야생초가 훌륭한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상권 작가의 추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야생초 밥상>>은 그야말로 야생초의 향기와 그리움이 가득 담긴 이야기가 함께 버무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소박한 밥상의 풍요][마음으로 대접하는 야생초밥상][추억과 함께 먹는 야생의 맛]으로 나뉘어 총 21편의 야생초를 소개한다. 친구들이 가장 먹고 싶은 옛날 음식 1위로 손꼽은 보릿국, 우리나라 들에서 가장 흔한 풀로 긴 줄기를 미역처럼 끓여먹는 소리쟁이국, 이파리부터 꽃, 뿌리까지 다 먹을 수 있으며 뿌리는 자양강장의 효과가 높다고 하는 원추리의 넓적한 이파리로 만든 넘나물국, 추울 때 뜯어다가 나물로 무치면 맛있는 광대나물, 땅을 비옥하게 하는 퇴비가 되었던 뚝새풀의 씨앗으로 죽을 만들면 까끌거림이 없고 입안에서 톡톡톡 터지는 감촉이 별미가 되고, 봄날이면 거의 모든 집 밥상에서 대여섯 끼 정도는 책임지는 비중 있는 싸래기꽃 나물에는 고래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도 담겨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천 번도 더 보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밟고 다녔던 이 작은 풀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풋내에 섞여 내 몸으로 들어온 그 생명체는 약간 달고 쓰고 부드러웠다. 그 풀은 이내 내 살이 되었다. (본문 156p)

 

 

 

흔디 농촌에서는 빗자루풀이라 불리는 댑싸리는 가을에 베어다가 잘 말리면 그대로 빗자루가 되는 풀인데, '쥐부자'라 불리는 댑싸리 씨앗을 삶으면 상큼한 인삼향이 나서 그 향 때문에 각종 음식 재료로도 쓰이며, 계랸찜에 넣으면 톡톡 터지는 느낌이 맛을 더해주기도 한다. 줄기의 마디가 소무릎 같다고 하여 쇠무릎이라 불리는 야생초의 뿌리를 넣어 담근 우슬주를 마시면 노화를 방지할 수 있으며, 어린순을 데쳐 나물로 무치면 쓴맛이 없어서 국거리로도 좋은 풀이다. "전쟁 때 피죽을 먹고 살았다." 혹은 "저놈은 어째 피죽도 못 먹어본 놈처럼 깡말랐네." 하는 말을 무시로 들었을 때에도 피가 사람의 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저자가 피죽을 먹어보며 당황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으며, 봄날 심심한 아이들 입을 달래주던 무릇곰을 통해 오직 인간의 손발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들여온 비닐이 밭이라는 땅을 대자연 속으로 완벽하게 격리시킴으로써 무릇이 발을 묻고 살 수가 없음에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이기심, 자연의 파괴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맛은 처음이다. 아무런 재료를 넣지 않고도 완벽해요. 이런 오묘한 색깔이 음식에서 우러난다는 게 환상적이어요. 이건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우주의 음식 경연대회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큼, 모두의 입맛을 감동시킬 그런 음식이네요. 갖출 것을 다 갖춘 음식이랄까? 담백하면서도 적당히 당분도 있고, 씹히는 맛도 없고, 부드럽게 혀끝에 감기고…… 노인들이나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딱 맞는 음식이네요. 고명으로 잣 같은 것들을 올려놓으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고, 아무튼 너무 맛이 깊으면서도 내 몸속 모든 감각이 이 음식에 푹 빠져들 정도로 맛이 있어서…… 성스러운 음식이라는 생각까지 드네요." (본문 254p)

 

 

 

그 외에도 사위 맞을 때 밥상에 올린다는 민물김국, 줄기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100g만 먹어도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비타민 A의 1/3을 섭취할 수 있으며, 무침, 장아찌, 국, 차, 효소, 튀김 등 다양한 음식으로 해먹을 수 있는 황새냉이, 재배하는 고구마보다 영양이 더 풍부한 메꽃뿌리, 물에서 건져내야하는 귀한 음식으로 여겨진 마름은 생으로 까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할 수 있으며, 보약이나 다름없는 구기자밥과 구수한 맛이 있어서 아이들도 좋아하는 구기자죽 등을 통해 저자는 어린시절과 그 시절의 사람이 있는 추억과 그리움도 담겨진 음식을 소개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있는 야생초이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인간의 피와 살이 되는 풀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저 나에게는 잡초에 불과했던 야생초들이 (특히, 정말 필요없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피) 이 책을 통해 음식이 되었고, 약이 되었고 살이 되어 주었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야생초들을 이제는 관심을 두고 보게 될 듯 싶다. 들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들이 훌륭한 음식이 되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야생초에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했으며, 이상권 작가의 추억을 따라가다보면 야생초에 담긴 그리움으로 더욱 애틋해지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야생초의 향기가 느껴지는 너무도 소박하고 정감이가는 <<야생초 밥상>>이었다.

 

 

 

(이미지출처: '야생초 밥상'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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