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명진 글.사진 / 북클라우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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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껏 휴가를 쓸 수 없는 회사, 경제적인 부담감 등의 현실로 인해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내게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현실이 나를 여행 서적에 관심을 갖게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눈에 띈 두 글자 <<낯선>>은 묘한 설레임을 주었다. 낯설다는 것, 조금은 두렵지만 설레임이 느껴진다. 단어 하나에도 이렇게 설레일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또다른 설레임을 주었다.

 

*낯설다 :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새롭다 :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다.

 

흥미로웠다. 둘은 분명 많은 부분에서 맞닿아 있다. 또한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 모든 새로운 상황에 낯설다는 표현을 넣으면 묘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일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랬다. 낯설고 물설은 곳에 가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닌가.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갈 때는 낯선 곳이 갖는 매력이 느껴진다. 여행하며 다녀온 도시도 촬영으로 다시 가면 반갑다가 새로운 골목에 들어서면 다시금 낯설지 않았던가. (본문 4p)

 

<<낯선>>은 여행으로 삶의 자세를 바꾸게 되고, 철학을 단단히 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계기로 인생 전체의 노정이 변경된 작가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단순히 새롭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내일이 궁금한 무명의 사진가가 카메라 하나 덜렁 메고 떠나는 낯선 노정을 따라가보게 된다. 10년 가까이 세계를 떠돌며 경험한 그 낯선 순간들을 듣고, 보고, 느낀 그 순간들을 통해 나 역시도 여행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워 본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길을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묻는 방법을 알게 된다. (본문 12p)

 

 

 

저자에게 갈릴레오 갈리레이의 피사가 있고 전 세계 명품 브랜드의 산지이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산드로 보티첼리에서 안드레아 팔라디오까지 전통과 예술이 현대에도 살아 있는 나라 이탈리아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노는 날라리 이미지였고, 여행 때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기도 했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위안을 얻기도 한 나라인 모로코는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누구나 친구로 맞이하는 곳이었으며, 공산주의와 체 게바라의 상징인 쿠바는 '의외의 정의'를 보여준 곳이었다. 또한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유명한 배우, 아름다운 모델을 렌즈에 담게 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는 만화가 이현세였고, 한국 건축의 수장인 김인철 교수와 함께 일한 경험은 건축에 관심이 생겨 이후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한 기초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여행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았고 진짜 삶을 만나고 있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짦은 1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길에서 보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 떠나올 때의 생각이었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대신 그저 흘러가는 대로가 아닌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본문 209p)

 

저자는 <<낯선>>을 통해 그 나라에 대해 보여주었고, 진짜 삶을 만나게 된 과정을 솔직히 담아냈으며, 떠나지 못하는 이유을 찾고 떠나는 용기가 다른 핑계에 휘둘리도록 그냥 두는 이들에게 낯선 길로 떠나보라고 재촉한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도 여행은 삶의 선물을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사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된 것을 이 책에서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저자는 여행이 그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닌, 힐링을 위한 관광이 아닌 자신의 삶을 만나는 과정이 되는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

 

 

 

때로 더 긴 여행을 준비하고 꿈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달 동안의 세계여행, 장기간에 걸친 대륙횡단. 누구나 꿈꾸는 멋진 일이죠. 그런데 그전에 우리는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취업을 해야하고, 돈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장대한 계획은 차일피일 미릴게 되는 거죠.

이것은 비단 여행에만 국학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중략) 술 한 잔에 안주 한 점이듯,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균형이 더 즐겁고 오래 술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요.

즉, 우리의 삶은 결코 코스요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자신의 삶만큼은 9첩, 12첩 반상이기를 바랍니다. (본문 258,259p)

 

여행이 얼마나 가기 어려운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놓고 혹시라도 가지 못했을 때 빠져나갈 길을 미리 만들어놓곤 하는 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왠지 두려움과 설레임이 느껴지는 낯선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보고 싶었던 나라의 멋진 모습을 담아낸 사진들이 나를 설레이게 한 것일까? 여행을 통해 만난 자신의 삶에 대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로 인해 그저 흘러가는 대로가 아닌 조금 더 주체적으로 내 길을 찾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난 탓은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빛을 붙들고 있는 사진을 오랫동안 감상했다. 낯설음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다.

지구 어디서나 그렇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하루를 정리하는 방향

어둠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아니었다.

서쪽은 가장 마지막까지 빛을 붙들고 있는 곳이다.

거룩한 동녘만 찬양하는 시선은 가라.

 

오늘도 새로운 곳에 서서

어제와 같은 석양을 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본문 270p)

 

(이미지출처: '낯선'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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