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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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격렬하면서도 솔직하고 적나라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 이브 엔슬러는 여성의 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며 세상을 도발한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필요한 목표물] [굿 바디] 등의 희극 작품,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와 [마침내 불안정한] 등의 정치적 회고록을 남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비 상Obie Awards 등을 수상한 극작가라고 한다. [뉴스위크]의 ‘세계를 바꾼 150명의 여성’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한 운동인 '브이데이'를 창설, 지역 조직과 활동가들을 위해 9천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10억 여성이 일어나'라는 세계적 운동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내게는 다소 낯선 작가였지만, 고통스러웠던 7개월간의 자궁암 투병을 토대로 한 회고록인 이 작품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을 통해 나는 그녀와 친숙해진 느낌이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여성의 고통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통해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책임감같은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했다.

 

나는 내 몸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 거기서 튕겨져 나왔고, 길을 잃었다. 아기를 낳지 않았고 나무를 두려워했다. 대지가 나의 적이라고 느꼈다. 숲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하늘도 노을도 별도 볼 수 없는 콘크리트 도시에서 살았다. 나는 엔진의 속도로 움직였는데 그건 내 호흡보다도 빨랐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과 대지의 리듬과 동떨어져 살았다. 그렇게 이질적인 정체성을 극대화하고 검은 옷을 입고는 우쭐해했다. 내 몸은 짐이었다. 그것은 내가 운 나쁘게도 지고 가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몸의 요구를 견딜 수가 없었다. (본문 13,14p)

 

이브 엔슬러는 인생 초반의 많은 부분을 비몽사몽 상태에서 보냈다. 한밤중에 아빠가 자신의 침대로 찾아올 때마다 시달렸고, 엄마를 배신했다는 뒤틀린 고통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이용하고 강간하고 학대한다는, 그 말도 안되는 미친 상황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암의 초기 징후에 대해 그녀는 수동적이었다. 암 진단은 그녀에게 너무나 뜬금없었을 뿐만 아니라 충격적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최면 상태에 빠져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7개월 동안 수술과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되었다고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에 환희가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는 이렇게 이브 엔슬러가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투병생활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콩고에서 일어나고 수많은 여성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13년 동안 극심한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콩고는 8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고 여성 수십만 명이 강간과 고문에 시달렸다. 콩고인들의 것이지만 다른 나라들이 약탈해간 광물을 두고 벌어지는 경제 전쟁이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을 강간하고, 남편과 아들을 협박해 딸과 누이를 강간하게 만드는 등 르완다와 부른디, 우간다 등의 지역 민병대와 외국 민병대는 학살을 일삼고 있었는 것이다. 이브 엔슬러는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충분히 목격했지만, 콩고는 몸의 종말, 인류의 종말, 세계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군대와 기업은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학살, 조직적 강간, 고문, 여성과 여자아이 말살을 전술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성 수천 수만 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과 몸의 기능, 몸의 미래가 형편없이 망가졌다. 자궁과 질이 영원히 파괴된 것이다. (본문 18p)

 

사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투병기에 관한 용기와 희망, 그리고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더 쉽게 풀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몸, 구멍 등 이브 엔슬러 자신만의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웠다. 아마 이런 표현들은 저자가 지금까지 겪었던 삶의 고통들이 스며있는 탓일게다. 그녀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를 통해 세계 곳곳의 여성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콩고의 문제가 단순히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느낄 수는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고, 책임져야할 부분은 아닐까? 이에 독자에 따라 난해하게 느낄 수 있으나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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