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문 213p)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와 같이 자식을 둔 부모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형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조두순이 12년의 형량을 받고 나왔을 경우 피해자는 20대의 꽃다운 나이가 된다. 사건에 대한 상처도 아물지 않은 기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아갔던 범인은 죗값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 (본문 445p)

 

얼마 전 딸아이는 학교에서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사형제도가 없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과 사형제도로 인해 법의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로 갑론을박을 펼쳤다고 한다. 글쎄....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도를 무조건적으로 찬성했던 나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구치 사오리는 한 학년 위인 육상부원 후미야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와의 인연이 계속되어졌으며, 그로인해 그녀는 그에게 더욱 끌렸고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중학생 사오리와 후미야의 풋풋한 만남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가 경시청 수사1과의 사야마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카하라의 기억 속의 사야마는 11년 전 딸 마나미의 살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였다. 11년 전, 딸은 아내 사요코가 잠시 시장을 간 사이에 살해당했고, 범인은 부부의 바람대로 사형을 당했다. 범인의 변호인은 상고를 했지만, 범인 히루카와는 모든 게 귀찮다는 이유로 취하한 탓에 결국 사형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부부는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응어리를 날려 보낸다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등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 상실감만 더해졌으며,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건이 끝났을 뿐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통감했다. 결국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던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나카하라는 사요코와 이혼을 한 후 이모부의 제안으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며, 이혼 후 1년이 지난 11년 동안 서로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사야마는 전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를 살해한 사람은 마치무라 사쿠조로 단순히 돈을 뺏앗을 목적이었으며 다음날 바로 자수를 하였다고 한다. 나카하라는 이혼 후 사요코가 대학 동창인 잡인 편집자의 주선으로 잡지의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여성의 패션이나 미용에 관한 글을 썼던 사요코는 소년범죄라든지 노동환경, 사회문제에 관한 글도 쓰게 되면서 여기저기 취재를 다녔으며, 최근에는 도벽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요코의 장례식에 참석한 나카하라는 사요코에게 일을 소개해 준 지즈코와 사요코에게 개인적으로 신세를 졌다는 그녀와 함께 온 사오리를 만나게 된다. 지즈코는 사요코가 쓴 마지막 기사가 실린 조만간 출간될 잡지를 보내주기로 약속하는데, 잡지를 받아본 나카하라는 도벽에 관한 사요코의 글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 중 자신이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훔친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여성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내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사오리라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게이메이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소아과 의사인 후미야는 장인 어른이 저지른 살해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이혼하기를 권유받지만, 아내 다에코와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에코는 아버지의 부양을 거부했지만 사위인 후미야는 장인을 모른 척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인이 살해한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한다. 다에코가 낳은 아들 쇼가 후미야의 친자식이 낳은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된 후미야 가족의 거센 반발에도 후미야는 다에코와 이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후미야의 모습을 본 동생 유미는 후미야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사요코의 부모님은 피해자의 참가인으로 참석하여 재판을 피해자와 유족의 것으로 만들어 범인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끝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도록 하려한다. 이런 과정에 나카하라는 장인과 장모에게 사요코가 책을 내기 위해 작성하던 원고를 건네받게 되고, 사요코의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읽게 된다. 사요코의 원고를 읽은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흔적을 되짚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도 알지 못했던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사요코의 살해 이유가 밝혀진다.

 

<<공허한 십자가>>는 살인, 형벌, 사형 제도의 존속 등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책에는 두 건의 살해 사건이 일어나다. 11년 전 딸이 살해를 당하고 남은 가족은 범인의 사형을 원한다. 범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유가족에게는 그 어떤 마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번에도 유가족은 범인의 사형 선고를 원한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나카하라이다.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카하라는 앞으로 살아갈 목적이 사라졌다는 공허함을 느낀바 있다. 전 아내의 살해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된 나카하라는 전 장인장모가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바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사요코의 행적을 되짚던 나카하라는 딸을 살해했던 범인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요코의 살해 사건을 관련있는 인물들이 오래 전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두 사건의 서로 다른 범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사형 제도와 형벌, 그리고 범인들의 속죄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생각을 권유한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그 의무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겠지요." (본문 415p)

 

딸아이는 어떤 한 사람의 생명권을 침해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사형 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나 역시 사형 제도의 찬성편에 서 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부양(?)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형 제도의 찬반에는 사실 그 어떤 정답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범인의 사형을 강력이 원했던 사요코 역시 자신이 쓴 원고에서 망설임의 흔적이 보인 것은 이 때문이리라.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한다면 그 우열은 가릴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을 갖는다해도 그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정답은 범인 자신과 유가족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유가족이 되어본 적 없는 내가 범인이 교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말할 수 없으며, 범인이 아닌 이상 사건의 진실이나 속죄의 마음을 알 수도 없으니 말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나카하라가 사요코의 행적을 추적하고 범죄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수많은 복선 속에서 긴박한 전개를 통해 완벽한 몰입을 선사한다. 그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들, 곱씹어지는 생각의 꼬리들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범죄의 해결책이 사형 집행이 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형이 정답인 양 이야기했던 나는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형 제도의 찬성 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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