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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 ㅣ 라임 청소년 문학 9
윌리엄 서트클리프 지음, 이혜인 옮김 / 라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실상을 객관적이고 냉엄하게 그려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경각심을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가디언 문학상과 카네기 메달의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작품 <<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진정성 읽는 책을 펴내는 것을 목표'로 2014년 1월 푸른숲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새로 선보인 브랜드 <라임> 시리즈의 아홉번째 이야기다.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분리 장벽 안에 갇혀 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그곳의 적나라한 실상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분리 장벽은 반대편 사람들의 폭탄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분리 장벽이 완성되자 모두들 입을 모아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중략) 분리 장벽 반대편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아주 끔찍한 이야기들뿐이었다. (본문 22,23p)
<<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은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열세 살 소년 조슈아가 친구 데이비드와 공놀이를 하다가 축구공이 공사장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조슈아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아버지인 리브아저씨를 따라 이곳 아마리아스에 오게 되었다. 아마리아스의 집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고, 어디선가는 항상 새 집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새것이 아닌 것은 이 공사장 뿐이었다. 축구공을 찾기 위해 울타리를 넘어가게 된 조슈아는 이 집이 분리 장벽 너무의 사람들이 살던 곳임을 알게 되었는데,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후 우연히 금속판과 손전등을 발견하게 된다. 금속판을 밀어낸 조슈아는 그곳이 어딘가로 통하는 입구임을 알게 되고, 아홉 살 때부터 아마리아스에 살게 된 이후로 단 한번도 분리 장벽 너머로 가 본 적이 없었던 조슈아는 분리 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굴로 들어선다. 땅굴을 통해 분리 장벽의 반대편을 보게 된 조슈아는 이곳의 모습이 자신이 사는 곳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평범하고도 기이한 광경에 정신이 팔린 조슈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아이들을 발견하게 되고, 곧 달아나지만 위급한 상황한 상황에 처한 후 여자아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고맙다는 그 애에게 뭐라고 주고 싶었지만 배고파하는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애가 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조슈아는 배고파하던 그 애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고, 검문소, 철창살 우리, 총, 가시철조망, 분리 장벽, 이를 꽉 물고 괴로운 표정으로 줄을 선 사람들에 대한 생각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을 깨닫게 된다.
나를 갉아먹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맞서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결국 그 기억이 나를 바스러뜨릴 거야. 마치 차임벨 소리처럼 맑게 울려퍼지는 그 생각은 하얗게 변한 손가락에 다시 피가 통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내가 할 일을 깨닫는 순간, 짓눌리고 굶주린 내 마음이 새로 재워지며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본문 120p)
조슈아는 그 애에게 돌려줄 스카프와 도망치다 잃어버린 신발 대신 그애가 빌려주었던 샌들과 먹을 것 등을 준비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분리 장벽 너머로 가게 되고, 그 여자아이 릴라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 조슈아는 릴라의 아버지를 대신해 분리 장벽이 세워진 후로는 갈 수 없게 된 자신의 올리브 과수원을 보살펴 주기로 약속한다. 자신을 땅굴 입구까지 데려다 주던 릴라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땅굴을 건너던 날 자신을 뒤쫓던 아이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자신을 도와주려고 온 아저씨를 도울 힘이 없었던 조슈아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집으로 돌아온 조슈아는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올리브 과수원을 정성껏 돌봐준다.
죽은 나무는 다시 살릴 수 없어도 밭은 새로 일굴 수 있다. 분리 장벽이 과수원의 원래 주인을 몰아내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새 나무를 심을 수도 있겠지. (본문 187p)
과수원에 있는 조슈아의 모습을 본 리브 아저씨는 조슈아를 반역자로 몰아세웠지만, 아스피린이 필요하다는 릴라의 편지에 조슈아는 땅굴도 막히고 통행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군인 수송차에 숨어 릴라네 집에 가게 된다. 하지만 릴라의 집에 머물 수 없었던 조슈아는 검문소를 통해 돌아가려다 총에 맞고 하반신 마비가 된다.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조슈아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해낼 것이다. 해내고 말 것이다. 필요한 기술을 닥치는 대로 배워서 돌아갈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리아스가 아니라 릴라네 마을로. 거기 가면 릴라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다시 시도할 것이다. 만약 또 실패하면 한 번 더 노력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에 떠오른 순간,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문 326,327p)
어느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던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혼란과 배신감을 느끼게 된 조슈아는 힘겨운 성장통을 겪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조슈아는 독자들에게 분열의 땅에서 화해와 공존에 대한 메시지 그리고 진한 감동을 함께 전한다. 이 책에는 오랜 여운을 남기는 장면들이 너무도 많다. 리브 아저씨의 총으로부터 올리브 나무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는 는 조슈아의 모습, 검문소에서 서로의 눈빛만으로 이별을 고하는 조슈아와 릴라의 모습, 묘목을 지켜내려 애쓰는 조슈아의 모습 그리고 조슈아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릴라 아버지가 올리브 과수원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받고 뭉클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장벽을 사이로 나뉘어진 분단 국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슈아가 보여준 화해, 공존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게다.
나는 릴라가 서 있던 자리에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느릿해진 기분이었다. 팔다리가 흐느적거리고 둔해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릴라는 가 버렸다. 릴라는 우리 집, 우리 우리 집이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살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터 였다. (본문 307)
(이미지출처: '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