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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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가 그려진 분홍색 표지도, 제목도 참 예쁜 책이다. <생각이 나서><밤 열한 시><밀리언 달러 초콜릿> 등 참 많은 책을 쓴 작가인데도 나에게는 좀 생소했다. 이 책은 2008년 1월에 출간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의 개정판으로 만들 작정이었으나, 작업 과정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에 수록된 글들이 덜어지면서 애초의 계획과 달리 새로운 글에 옛글을 약간 더하여 만들어진 책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사실 오래전에 쓰여진 글을 다시 읽으면 뭔가 부끄럽고 창피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이런 느낌이 많은 책을 출간해온 작가에게도 똑같이 드는 생각인가보다. 블로그 시작하면서 처음 쓰여진 리뷰들을 읽다보면 창피한 느낌이 들어 삭제하고 싶은 마음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리뷰를 다시 쓴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공감때문일까? 생소한 작가이지만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 <반짝반짝 변주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아, 어머님께 말씀을'에 의한 열두 개의 변주곡>의 애칭이란다. 빠르거나 느린, 부드럽거나 강렬한, 즐겁거나 애처로운 선율들처럼 이 책에 수록된 황경신 작가의 시와 에세이에는 우리 삶의 이러한 선율들이 수록되어 있다.

 

빠르거나 느린, 부드럽거나 강렬한, 즐겁거나 애처로운 선율들이다. 조그만 시냇물이 산길을 돌고 돌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모퉁이를 돌아 만난 새로운 세계에 환호를 지르기도 하고 바위를 만나 당황하기도 한다. 오목한 틈 사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비탈길을 신 나게 달려 내려가기도 한다. 하릴없이 져버린 꽃잎을 껴안고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바람 소리에 맞춰 찰랑찰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반짝이는 세계, 반짝이는 슬픔, 그리고 반짝이는 마음이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고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마음이다. (본문 310p)

 

<<반짝반짝 변주곡>>은 ㄱ에서 ㅎ까지, 우리 삶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가 작가가 가진 아주 커다란 이야기 보따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작가의 이야기 보따리는 벌써부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공허함, 상실감, 슬픔, 절망 등의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지나간 이별과 다가올 이별 같은 거. 그게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가 받은, 그리고 앞으로 받게 될 상처도 가짜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우리가 받아 온 또 받게 될 상처는 우리의 심장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갈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뭔가 반짝이는 것, 두근거리는 것, 부드럽고 친절하고 달콤한 것,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한 조각의 초콜릿 같은 것을. (본문 86p)

 

이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일생을 보낸다. 이 세계 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들에 관한 단 한 가지 이야기가 은밀하게 전해오고 있다. 그건 다른 세계로 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후회하지 않아. 불완전한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던 고통의 날로부터 나는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까. 그건 진짜 삶이었어." (본문 96p)

 

[백 퍼센트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에 마지막 구절이다. 자신의 완벽한 연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세계에서 어리석게도 백 퍼센트의 연인과 백 퍼센트의 사랑에 빠져 영원히 행복한 사랑을 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이단아들이 완전한 사랑 같은 건 없는 다른 세계로 가게 되고, 끝없이 의심하고 질투하며 심지어 사랑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혹은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눈물로 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도 끝내 완전한 사랑을 얻지 못하면서도 이단아들은 소중한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건 진짜 삶이었다고 말이다. 이별의 슬픔, 사랑의 상처, 외로움과 고독 등 삶의 무거움이라 느꼈던 감정들이 바로 우리의 진짜 삶임을 작가는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말라고 어루만져주는 듯한 작가의 이야기에 슬픔과 상실이 훗날 내 삶의 반짝반짝 빛나는 또 하나의 선율이 될 것임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나에게 들려주듯, 어떤 이야기는 혼자만의 독백처럼, 어떤 이야기는 마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듯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빠져든다. 이해하기 난해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묘한 설득력, 묘한 공감이 있다. 난해하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야기들, 그것이 이 작가만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싶지만, 이 작품으로만 작가를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할터이다. 그렇게 작가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게는 다소 생소했던 황경신 작가가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다 잊을 필요는 없지만 다 간직할 필요도 없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가져갈 수도 없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삶에서, 소유란 그러한 형편이다. 기쁨이었던 것이 슬픔이 되고, 가벼웠던 것이 무거워지고, 높이 날던 것이 내려앉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이 문득, 끝이 난다. 모든 방들의 밖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눌 별'과 '떠날 리'를 나눈다. 그리고 어둡고 좁은 복도에 앉아 가만히 기다린다. 나누어질 시간이 오기를. 혹은 떠날 시간이 오기를. 혹은 그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본문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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