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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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초콜릿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달콤하지만 쌉싸르한 그 맛 때문일 것이다. <우는 어른><울지 않는 아이>로 최근 친숙한 작가가 된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 <<기억 깨물기>>는 초콜릿에 얽힌 달콤 쌉싸래한 사랑의 기억을 풀어내고 있는 여류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니다. 작품마다 초콜릿이 등장하지만 각 작품이 주는 초콜릿의 맛은 각기 다른 느낌이었다. 어떤 작품은 쌉싸래한 맛이 너무 강한 초콜릿이고, 어떤 작품은 달달함이 맛좋은 초콜릿이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맛을 지닌 초콜릿을 맛본다는 점이 바로 <<기억 깨물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노우에 아레노의 작품 [전화벨이 울리면]은 불륜이거나 혹은 조건을 내건 만남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랑 따위 없다고 생각했던 와타루가 12살 연상의 여인의 운전수 역할을 통해 만남을 이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여인은 늘 초콜릿을 먹는다. 남편을 미행하는 여인, 결국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는 여인, 그 모습에 슬피 우는 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역시 연하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여인이다.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여자친구가 있기에 이 만남을 끝내려하지만 끝내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여인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는 와타루. 이 초콜릿 맛은 쌉싸래한 맛이 강한 초콜릿은 아닐까 싶다. 와타루의 갈등 묘사가 좋았던 작품이다.

 

이곳에 이타루 씨는 없는데-.

암담한 기분으로 시나는 생각했다.

이곳에 이타루 씨는 없는데 자신은 항상 이타루 씨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가 지켜본다 여기고 행동하고 있다.

그것은 달콤하기는 하지만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다. (본문 46,47p)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늦여름 해 질 녁]은 조금 무서운 작품이다. 너무 달콤하거나 아니면 너무 쌉싸래해서 누구의 입맛에도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초콜릿 맛.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랑에 관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귀찮음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며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나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 이타루를 먹어 자신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으며, 그러면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어 세상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타루는 자신의 왼손 피부를 벗.겨낸 반투명한 얇은 피부를 건넸고 시나는 그대로 받아먹었다. 섬뜩함.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감정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으며 상대방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사랑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작품 [금과 은]은 다섯 살이었던 에이코가 증조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열여섯 살의 하루키를 처음 만나게 되면서 오랜시간 그와의 만나는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그저 친척 관계에 있는 오빠, 동생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었지만 에이코는 그가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그를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극히 예쁜 로맨스로 누구나의 입맛에 딱 맞는 초콜릿 맛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이제 더 이상 무거운 배낭은 짊어지지 않을래. 그 대신 내 등에 생긴 날개를 펴고 날아갈 거야.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 너의 품속으로. (본문 119p)

 

고데마리 루이의 [호수의 성인] 역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정말 맛좋은 초콜릿을 먹는 기분이다. 대학교 1학년 인도 여행을 가기 위해 함께 할 파트너를 모집하던 고토코는 유키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인도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하며 보냈지만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지게 된다. 헤어진 지 12년이 지난 후에 보내온 유키의 편지를 통해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고토코는 유키를 만나기 위해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는 해피한 이야기였다. 6편의 단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타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은,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진짜 연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 그 끝에 소중한 누군가와 헤어져버린 일이 있다면- 겁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쉽사리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사랑의 달콤함 속에는 실은 지독히 복잡하고 번거로운 배합의 향신료가 뒤섞여 있다. 그 하나하나를 맛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본문 130p)

 

노나카 히라기의 [블루문]은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된 유코는 그에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친구가 이혼한 후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에게 다가가기로 한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설레임도 느껴지는 유코의 이야기가 제법 달콤하게 그려졌다.

요시카와 도리코이 [기생하는 여동생]은 서로 달라도 너무도 다른 자매의 이야기다. 가야노는 자신과 다른 동생 리미코의 행동이 늘 짜증이나지만 결국은 동생을 이해하게 되고 가야노는 동생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사랑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 있다.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초콜릿의 맛들이 전부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깊은 사랑에 대한 불안도, 뒤늦게야 알게 되는 사랑의 감정도, 사소한 다툼으로 인한 이별도, 그리고 상처입은 후에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우리가 흔히 사랑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독자들 역시 사랑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며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느끼는 수많은 두려움을 다독여줄 것이다. 사랑,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사랑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사랑의 달콤함으로 그 무섭고 두려운 일들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쌉싸래하지만 달콤한 초콜릿 맛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두려움과 설레임은 달콤하지만 쌉싸르한 사랑은 초콜릿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미지출처: '기억 깨물기'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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