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성서는 기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거침없고 지루할 틈 없는 나카노 교코식 명화 읽기

 

서양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 감상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나카노 교코 교수의 매혹적인 명화 해설서 <명화의 거짓말> 그 두 번째 이야기 성서편. 첫 번째 편에서 그리스신화를 다룬 명화를 소개한데 이어 두 번째 이야기 성서 편에서는 그리스신화와 함께 서양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성서를 주제로 한 명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도발적인 호기심과 흥미로운 해석으로 가득 찬 성서 이야기 <<명화의 거짓말-성서 편>>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최후의 만찬 등을 다룬 신약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명화를 훑으며 성서의 주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권위와 편견은 버려라, 그리고 즐겨라!

도발적인 호기심과 흥미로운 해석으로 가득 찬 성서 이야기

 

이 책은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렘브란트 <이사악의 희생>,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등을 소개한 구약성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계> 등의 신약성서로 나뉘어 명화를 통한 성서를 소개한다. 서양 예술의 상당수가 성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명화를 감상하면서 성서의 주요 내용도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참 매력적인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비종교인으로서 꺼려지기 마련인 성서 이야기와 어렵게 느껴지는 명화의 이야기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쉽게 끌리지는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일단 읽기 시작하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참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권위와 편견을 버리고 나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나 역시도 큰 공감을 표한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은 흙을 반죽하여 아담을 만들고 그 콧구멍에 숨을 불어넣다고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것으로는 도전히 그림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는 코를 손가락으로 바꾸어 손가락에서 손가락으로 전류처럼 생명을 전하는 것으로 [아담의 창조]를 완성했는데, 이 인상적인 장면은 이후 <E.T.>의 포스터로 패러디 되었다. 손가락이 아니라 코였다면 이 그림이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에 대한 성서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재미있는 모순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카인의 목숨을 표식으로 보호했다는 것. 기독교도는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깊은 사랑 때문이라고 하고, 심리학자들은 하느님이 반성한 것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하느님은 이 세상에 처음으로 인간을 만들고 그 갈비뼈로 또 한 인간을 만들었는데 이 남녀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으니 세상에 인간은 네 명뿐일진데, 대체 누가 카인을 죽이려 한다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성서에 대해 무외한인 나는 저자의 이런 번뜩이는 예리함에 압도되어 그동안 관심도 없었던 성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는데,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과 교류한 인간이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은 이밖에도 많다는 것이 설명이다. 문득 성서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전달할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에 갑자기 작가에게 감탄을 하게 된다.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무래도 독자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탓인가보다.

 

 

화가가 솜씨를 뽐내기 좋은 주제라는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여기서 저자는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더 이상 들릴라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에 단 한 줄도 그녀에게 할애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를 보면 뒤쪽의 벽감에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상이 서 있고 여신은 들릴라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는 자신의 아들 큐피드를 왼손으로 어루만지고 있는데, 비너스가 들릴라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즉 삼손에 대한 들릴라의 마음은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긴 아이 같은 사내에 대한 연민이었을 것이라는 것. 명화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의미가 없는 부분은 없다는 점, 그리고 그 명화 속에는 상상력을 자극한다거나 숨은 사연들이 있어 흥미롭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예스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성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아뿔사. 그럼에도 왜 12월 25일인가는 마리아의 수태고지가 3월 25일에 있었기 때문에 그저 9개월을 더해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허나 재미있는 것은 예수 탄생을 서기 1년으로 정해 그전을 기원전, 이후를 기원후라고 부른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여기서 기준이 되는 기원법을 고안한 6세기의 신학자가 하필이면 계산에 실수해서 오늘날에는 예수의 진짜 탄생년은 기원전 6년으로 본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에와서 수정할 수도 없어서 그대로 굳어졌다고 하니 알고보면 재미있는 사연들도 참 많다. 비상하는 하느님을 잡은 각도가 위엄을 떨어뜨린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 승천], 천사가 살육을 축복하고 있는 듯한 알브레히트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들], 흰 백합에 암술과 수술이 분명하게 나뉘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레오나르도가 처녀 수태에 회의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등 명화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작가는 참 재미있게 잘 담아낸 듯 싶다. 그런데다 모순과 오류로 가득한 성서에 대한 작가의 흥미로운 시각, 다채로운 이야기도 꽤 즐겁다. 비꼬는 듯한 내용도 서슴치 않았던 작가는 저자 후기를 통해 '종교화도 신화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문화로서 즐기면 된다'라고 하면 기독교도들은 불쾌할지 모르지만, 부디 너그러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본문 254,255p)라고 말했다. 기독교도들에게는 불쾌했을지라도, 비종교인으로 성서에는 관심이 없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성서에 관심을 갖게 되고, 흥미를 느꼈으니 오히려 기독교도들은 좋아해 주어야 할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주길 바란다.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혹은 종교화를 통해 성경과 화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이치에 맞지 않는 기묘한 이야기를 과연 화가는 이런 식으로 궁리해서 표현했던 것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리면 갑자기 그 그림은 매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 (본문 253p)

 

서슴치않게 던지는 돌직구, '아니, 잠깐, 잠깐.''에구머니나!' 등 스토리텔링으로 독자의 흥미를 이끌고,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쓴 글들이 작가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한다. 서양 역사와 영화, 미술, 오페라, 뮤지컬 등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독특한 시각의 미술 읽기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카노 교코. 우리나라는 <무서운 그림>으로 이름을 알렸다고 하는데, 명화에 대한 어려움으로 선뜻 읽어보지 못했던 그의 작품들을 조금씩 읽어보려한다. 내가 가진 편견과 편독을 조금씩 깨드려줄 수 있는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 그동안 관심갖지 않았던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으로 <<명화의 거짓말-성서 편>>은 꽤나 즐거운 독서였음을 밝혀둔다.

 

(이미지출처: '명화의 거짓말-성서 편' 본문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