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있나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2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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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흔히 '밥은 잘 먹고 다니고?'라는 인사를 건넨다. 오래전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런 인삿말이 필요했겠지만, 요즘처럼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인사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 하겠다고 일부러 밥을 안 먹고다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다이어트 학교>의 김혜정 작가가 이번엔 <<잘 먹고 있나요?>>라는 서로 상반된 책 제목을 출간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잘 먹고 있냐는 물음은 그저 밥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인사가 그저 우습게 느껴졌던 내게, 왠일인지 이 책 제목은 의미있게 들려온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건네는 그 인사도 아마 그저 밥을 잘 먹고 다니냐는 단순한 물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인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 속에서 나는 그 물음을 찾아보고자 한다.

 

1년 전, 집을 나갈 때 들고 나갔던 가방을 들고 다시 들어온 누나가 한 말은 식당을 다시 열겠다는 말이었다. 작년 겨울에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시자 고아가 된 재연과 재규였다. 대입 삼수를 하고 있던 누나가 무슨 생각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식당을 하겠다는 건지 재규는 알 수 없다. 재규가 초등5학년 때, 엄마는 식당을 열었고 1층은 식당, 2층은 미술학원, 3층은 정수기 대리점 그리고 4층은 집으로 사용했고, 예체능반을 지원한 고등2학년인 재규는 여전히 초등학생 아이들이 다니는 그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미술이 과연 그의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자신에게 그만한 재능이 또 있을지 재규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끝내 누나는 누나의 고집대로 식당을 열었고, 재규는 같은 반 수지가 입시학원에서 얻은 K대학 미술대회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일주일 째 학원을 나가지 않고 있다. 엄마는 누나가 대학에 가길 바랐고, 재규에게는 미대에 가서 유명한 화가가 되기를 바랐음에도, 누나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식당 일을 하고 있기에 재규는 미술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엄마가 불쌍해진다는 생각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왜 억지로 하고 있어? 어차피 엄마도 없는 이 마당에. 너 미술 그만두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못 그만둔 거잖아.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솔직히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엄마 때문에 좀 짜증났잖아. 엄마는 현실을 너무 몰랐어. 공부하기 싫어하는 나한테 무조건 대학에 가라고 시키고, 미술대회에서 상 몇 번 받았다고 네가 곧 유명 화가라도 될 것처럼 굴었어. 그게 말이 되냐? 엄마는 우리한테 세상 물정 모른다고 했지만, 엄마가 더 바보 같았어." (본문 54p)

 

재규는 누나의 친구 서진 누나에게 누나가 고등학교 시절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오지 못하면 그 주 내내 우울해하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때는 별로 좋지 않다가도 엄마가 행복해하믄 모습을 보면 그제야 상을 받은 게 기뻤던 재규, 이제 그런 자신이 언제 기쁠지, 언제 행복할 수 있을지 재규는 알지 못했다. 누나는 엄마의 보험금까지 사용해서 방송 브로커를 통해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재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만다. 그러던 중 식당 자리에 주네커피 직영점을 내고 싶다고 남자가 찾아오게 된다. 한편, 재규의 부모님 진학 상담에 누나가 대신 참석하게 되고, 누나와 상담을 끝낸 담임은 그림 그리는 게 좋긴 한데 자신이 없는데다 미대에 간다 하더라고 나중에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인 재규에게 축구를 그만두게 된 자신의 사연을 전한다.

 

"나는 축구를 아직도 좋아하고, 경기도 즐겨 본다. 그건 내가 충분히 도전해볼 만큼 도전하고 안 됐기 때무에 가능한 거야. 어설프게 하다가 그만둔 내 친구들은 축구를 싫어해. 나도 끝까지 도전하지 않고 그만뒀으면 아마 배 아파서 축구 경기를 보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까 인마, 너도 우선 걱정부터 하지 말고, 뭐든 해보란 말이야. 3.14에서 자를지 3.145에서 자를지는 금방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야." (본문 220p)

 

재규는 미대에 남기로 했고, 누나는 식당을 계속 하기로 했다. 내일도 누나의 식당은 물을 열 것이다. 이 책에는 재규와 재연 남매 외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재규의 친구 준모가 등장하고, 시키는 것만 해야했던 모범생으로 사는 게 가장 편하지만 모범생으로 사는 게 제일 싫은 서진이도 등장한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진로를 고민하는 청춘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부모에 의해 강요되었던 꿈 대신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되어서야 자신의 길을 찾게 된 재규와 재연,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의 길을 가기위해 애쓰는 준모, 명문대에 다니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며 살아가는 서진을 보면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그 갈피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묻는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청소년들은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거냐고. 그 해답은 담임 선생님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인생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다. 3.14와 3.145..어디에서 자를지에 대한 결정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이후에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결정이 번복된다 하더라도 잘 먹고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잘 먹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참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싶다. 잘 먹고 살만큼의 직업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일 수도 있겠고, 힘들더라도 밥은 잘 먹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 질문의 의미에 후자인 응원의 메시지를 담는다면 좋겠지. 우리는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밥 잘 먹고 씩씩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해 한 발짝 내딛고 노력한다면 결국 잘 먹고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현실과 꿈 속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보게 하고 싶다.

 

다들 잘 먹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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