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9
박영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박영란 작가의 작품은 <영우한테 잘해줘>에 이어 두번째다. '위험이 닥칠 땐 개다리춤을 추는 소년과 귀차니 아줌마의 인생 이야기!'라는 책표지의 글을 보고 문득 호기심을 느껴 읽어보게 된 작품이다. 오랫동안 서울역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방송매체를 통해 바라본 서울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광장을 맴도는 사람들도 있으며, 세상을 등진 듯 살아가지만 세상 속에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우리는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아이언맨을 찾아 떠난 형과 아이언맨을 기다리는 열 살 소년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귀차니 아줌마도 있었다.

 

형은 돈 만원과 빅맥세트를 사주고는 아이언맨을 찾기 위해 나섰고, 주인공 나는 형이 떠난 넓은 콩코스 광장에서 형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누굴 기다리냐고 물으면 소년은 아이언맨을 기다린다고 하였고, 소년은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형이 가르쳐준 개다리 춤을 추었다.

 

개다리 춤을 출 때면 나는 나를 이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커서 로다주보다 더 멋진 아이언맨이 될 거다. 그래서 지금 고난을 이겨내는 중이다. 영웅은 원래 고난 좀 겪어봐야 한다고 형이 말했다. 나의 고난을 위해 나는 사람들이 주는 게 뭐든 점잖게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 (본문 12p)

 

소년은 서울역에서 하울성-하울의 움직이는 성-같은 유모차를 끌고 종이기저귀를 바지 대신 입힌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귀차니 아줌마를 만나곤 한다. 아줌마가 세상만사를 귀찮아하는 건 소년과 다르지만 광장에 나와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인 건 같았다. 소년에게는 '달의 궁전'에서 알바를 하는 옆집 누나도 친구다. 소년은 편의점 알바 누나와는 다른 류의 알바를 하고 있는 듯한 이 누나도 어쩌면 아이언맨을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소년에게는 광장 계단에서 만난 후 친구가 된 길고양이 버드도 있었다. 형이 열다섯, 소년이 일곱 살 때부터 단둘이 살면서, 형은 배달 알바를 했다. 엄마는 소년이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기억뿐이었으며, 아버지는 함께 살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만 안다. 가끔 이모가 와서 반찬과 생활비를 주고 가곤할 뿐이다. 헌데 이번에는 이틀이면 돌아올 줄 알았던 형이 돌아오지 않았다. 형의 늦장은 흔한 일이라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소년은 기다리는 일에는 이골이 났으며, 매일 기다렸다. 그렇게 소년은 귀차니 아줌마와 함께 광장에서 아이언맨을 기다리며 삶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언맨을 기다린다.

는 말은 아버지가 아닌 '뭔가'를 기다린다는 뜻이 되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아이언맨은 딱히 아버지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이름 같은건지도 몰랐다. 아버지와 엄마는 5년 동안이나 나를 '희망'이라고 불렀고, 그 후에도 형이 계속 '희망'이라고 불렀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렇게 불렀다. 10년 동안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나면 누구든 나처럼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본문 208,209p)

 

책을 읽으면서 형이 영영 오지 않으면 어쩌나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모가 주고 간 돈이 사라졌음에도 절망하지 않는 소년을 보며 얼마나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했는지 모른다. 개그프로에서 재미있게 보곤 했던 개다리 춤이었는데, 형제의 개다리 춤은 슬프고도 애처롭게 보여진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줄 아는,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줄 아는 형제를 보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가지려하고, 욕심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곤 했다. 소설가 구효성은 이런 글을 남겼다.

'행복이란, 가고자 하는 세상의 귀천에 있지 아니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진위에 달렸노라고 말입니다.' (표지 中)

웃픈 개다리춤을 추면서 희망을 꿈꾸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서울역>>은 독자들에게 이 말의 있의미를 가르쳐주고자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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