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양우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는 국민이다.

 

누적 관객 수 1100만 돌파,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변호인>. 영화가 개봉되자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너도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꼭 봐야할 영화였으며, 영화를 보면 누구든 눈물을 흘리게 되어있다는 등의 감상 후기들을 내놓았었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에 대해 들은 바 있었고, 나 역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 궁금증이 많았던 탓에 꼭 보리라 다짐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보지 못했던 영화였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터에 21세기북스에서 <<변호인>>이 소설로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영화보다는 책을 더 선호했던 나였기에 그동안의 아쉬움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책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변호인>>은 1981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부림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세무 전문 변호사였던 우석이 진정한 인권 변호사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속에서 녹아낸 웃음 그리고 감동은 책을 덮은 뒤에도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출근길에 책을 펼치기 시작한 탓에 근무시간 내내 지하철 속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맴돌았고, 서둘러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지곤 했다. 최근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은 것이 얼마만이었는지...나는 그만큼 우석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적 상황에 몰입해있었다.

 

고졸 출신으로 독학해서 사시에 합격하고 판사로 임용되어 화제가 된 인물 송우석. 그랬던 그는 판사를 그만두고,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존경과 예우를 받는 선배 상필의 도움으로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가 되어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도 줄줄이 사법 고시에 떨어지던 그 시절에 상고 출신이 독학으로 합격했다는 일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성역이 더럽혀지는 것 같았으며, 변호사가 돈을 벌겠다고 부동산 등기 일을 한다는 것이 못 마땅해서인지 우석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독고다이로 불리곤 했다. 천장에 쥐가 뛰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 물이 나오지 않는 집에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우석이 돈을 잘 벌면서도 자주 찾아가는 식당은 시장통에 있는 돼지국밥집이었다. 7년 전 고시공부를 하던 우석은, 순애가 아들 진우를 홀로 키우면서 국밥집을 하던 이곳에서 밥을 먹고 도망간 적이 있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찾은 우석은 이곳의 단골이 되었다.

 

혼돈의 시대,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하에서 고지식하게 원칙주의자로 사는 우석에게 1980년 봄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우석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순애의 아들 진우가 시국사건에 휘말려 잡혀가면서 변호사로서의 우석의 삶도 달라지게 된다. 마치 혼자 뛰는 마라토너처럼 독고다이로 살았던 우석은 진우가 부독련 사건에 얽히면서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과 생지옥을 보고 경험한 처음도 끝도 없는 당혹감과 걷잡을 수도 없는 분노가 뒤섞이면서 처음으로 부독련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부당한 공권력으로 짓밟히는 진우의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우석은 다섯 번의 공판을 거치면서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던 속물 변호사에서 진정한 인권 변호사가 되어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란 법의 개념도 모르면서 국가 보안 문제라고 마구 내질러서 국가인 국민을 탄압하고 법을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오?" (본문 234p)

 

우석의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던 그날 이후 6년이 흐른 뒤, 우석은 박종철 군 추도집회 등 다수의 불법 지회와 시위를 기획, 주도하는 등 집회 및 시위 관한 법률을 광범위하게 위반해온 탓에 수의를 입고 있다. 공판이 열리는 재판정에 들어선 우석의 변론을 신청한 변호인을 재판장이 한 명 한 명 호명하기 시작했다. 부산지역 142명의 변호사인사들 중에 99명이 우석을 변호하러 법정에 나왔다.

 

그동안 우리는 권력에 의해 짓밟힐 수 밖에 없었던 개인의 희생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아픔과 고통의 혼란의 시대를 마주하고 반성하고 교훈을 얻음으로써 더 나은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기에 <<변호인>>은 깊은 여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은 누군가의 치열하고 특별한 투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표지글 中)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은 누군가의 희생 속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또 다른 혼란을 겪고 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건, 2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가 외면하려고 했던 일들은 또 다른 참극을 가져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반성하고 배우고 바뀌어야 한다. 외면하고 숨길 것이 아니라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고 성찰하고 날카로운 비판이 있어야 비로소 바뀌고 성장할 수 있음을 이 책 <<변호인>>이,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보여주고 있다.

 

국민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 읽게된 <<변호인>>은 순수한 열정이 절망을 뛰어넘고 새로운 희망을 낳게한다는 이인화 소설가의 평처럼 지금 우리가 이 힘겨운 상황에 절망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미래의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함을 일깨운다.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희생되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와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의 명목을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