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돌콩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0
홍종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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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본문 108p)

 

키가 작은 남자가 어느 순간 루저가 되어버린 세상에 나는 통탄한다. 나 역시도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루저인 탓이다. 바지를 사면 너무 길어서 꼭 수선을 해야하고, 높은 곳에 올려진 물건을 꺼내지 못해 꼭 남편이나 키 큰 딸을 불러야하는 사소한 불편함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키가 작다고 해서 내 인생을 완성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이렇게 큰소리치면서도 키 큰 딸을 보면 뿌듯하고, 또래보다 키가 작은 아들을 보면서 걱정을 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그들의 시선과 다를 바가 없는가보다. 이런 우리의 시선에 정면대결을 신청한 인물이 있다. 바로 <<달려라, 돌콩>>의 주인공 오공일이다.

 

공일인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름이 공일이 된 그는 키 159센티미터 몸무게 46킬로그램으로 놈들의 만만한 표적이 되곤 했다. 놈들은 먹잇감을 놓고 희롱하는 고양잇과 야생동물이었지만, 공일은 짤막한 다리를 스쿠터의 바퀴처럼 열나게 굴려야만 했다. 오늘 공일은 끝장을 내보자는 결심으로 정대의 머리통을 향해 플라스틱 화분을 날렸고 명중이었지만 결과는 비굴했다. 일단 죽을힘 다해 달릴 수 밖에 없다. 그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공일은 비상등을 켜고 멈춘 구형 다마스에 올라타게 되고 그대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변속기를 드라이브로 옮겼다. 택시기사였던 아버지의 덕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다니. 공일은 다마스를 몰고 아버지가 다른 시쳇말로 씨가 다른 형제인 26세 나이 차가 나는, 한우를 키우는 형의 목장으로 갔다. 공일은 형의 목장에서 46세에 재혼하고 자신을 낳은 대책 없이 용감한 엄마 다음으로 대책없는 형의 목장에서 간혹 일을 돕는 금주를 만나게 된다. 자초지종을 들은 금주와 형은 다마스 운전자와의 일을 해결해주게 되고, 공일은 자퇴서를 낸 후 형의 목장에서 일손을 돕게 된다. 족보상으로는 엄연한 조카지만 공일보다 두 살 많은 형의 아들 도민은 축구 선수가 되어 대학의 스카우트가 확정된 상태였는데, 공일을 철저하게 무시하곤 했다. 채찍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며 스스로를 다그쳤던 도민은 공일에게 채찍을 건넨다.

 

"나도 힘들어 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힘들어 죽는 것하고 그냥 죽는 것하고 다른 것 같더라. 그래서 기왕이면 힘들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랬더니 살아지더라. 네 자신한테 냉정하게 물어봐라. 17년 동안 네가 한 일이 뭐냐고. 정말 어떤 일에 죽을 만큼 버르적거린 적 있었느냐고." (본문 69p)

 

 

공일은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고생으로부터 기수로 오해받은 후 기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키와 몸무게가 모집 조건의 범위에 있음에 기뻐한다. 그렇게 기사 후보생이 되어 노력하게 되고, 버스에서 만난 여고생인 고아영으로부터 돌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작고 왜소한, 그래서 누군가에게 만만한 대상이 되었던 공일이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그 속에 살짝 가미한 공일의 달콤쌉싸름한 첫사랑까지)은 '작고, 느리고, 못생긴 것들에게 보내는 완성을 향한 행진곡'이었다. 작고 왜소하기만 했던 공일은 이제 작지만 단단한 돌콩처럼, 기수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도민의 방황이 좀 아이러니했다는 것이다. 공일을 철저히 무시한 듯 했지만, 알고보면 공일을 괴롭혔던 녀석들을 혼내주려했고, 자신 안에 꽁꽁 감춰져있던 공일을 꺼내주려했으며, 채찍으로 공일의 꿈을 채찍질했다. 자신의 허벅지를 때려가며 힘을 내곤했던 도민이 공일이 꿈을 찾고 나아가자, 오히려 자신은 방황을 시작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도민 또한 축구선수가 아닌 자신의 꿈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잠시 생각해본다. 이는 궁금증 폭발을 유도한 작가의 고도의 필력이었을까? 이런 탓에 시크한 도민의 캐릭터는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달려라 돌콩>>은 공일 외에도 아영과 금주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불안전한 청소년들, 그들은 이렇게 완성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앞서 표기했던 69페이지 도민의 대사는 정말 강렬하다.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이들, 더 이상의 희망을 포기한 이들, 그들은 어떤 일에 죽을 만큼 버르적거린 적이 있는가? 지금 절망 속에 허우적대는 청소년들에게 도민의 강한 채찍을 선물하고 싶다.

 

(사진출처: '달려라 돌콩'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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