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우리 할아버지 ㅣ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6
현기영 글, 정용성 그림 / 현북스 / 2014년 2월
평점 :
<순이 삼촌><지상에 숟가락 하나.<마지막 테우리><변방에 우짓는 새> 등으로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다룬 깊이 있는 작품을 써 온 현기영 작가의 그림책 <<테우리 할아버지>>는 그의 단편 소설 <마지막 테우리>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책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책은 제주 4.3사건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룬 최초의 그림책이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제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섬입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으로,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지요. 이 책은 최근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또 한편에서는 4.3일을 폄훼하고 왜곡한 역사교과서가 채택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4.3사건을 들려주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림책에서 굉장한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삽화였습니다. 4.3사건의 아픔, 테우리 할아버지의 슬픔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스토리의 장엄함이 더욱 빛이 났습니다.
오름은 화산섬이 빚어 놓은 놀라운 작품, 가슴 한복판에 아름다운 분화구를 안고 있다. -현기영
한라산 자락에는 오름들이 올망졸망 솟은 넓은 목장이 있는데, 그중 한 오름의 분화구 위에 테우리 할아버지가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테우리는 제주도 사투리로 소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네요. 할아버지는 목장에서 홀로 조그만 움막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소를 키워 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겨울이 시작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자기 소를 데리고 갔고, 암소와 송아지 두 마리만 풀을 뜯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돌보는, 백 마리가 넘는 소를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들을 사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돈 이야기를 하는 마을 사람들보다 소가 더 좋았지요. 할아버지는 친구가 아픈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곧잘 아파 드러눕기 일쑤였던 탓에 할아버지는 암소와 송아지의 주인인 친구가 아직 오지 않자 걱정이 된 것이지요. 친구 걱정을 하다 할아버지는 젊었던 날,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제주섬에서 일어난 일을 떠올렸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남쪽, 북쪽이 각각 따로 나라를 세우려고 해서 섬 사람들이 반대를 했어요. 그러자 그것을 싫어하는 쪽의 군인들이 총을 쏘며 마을들을 불태웠어요. 그때 겁이 난 마을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 숨었고, 친구가 그때 크게 다쳤던 것이지요. (본문 中)
젊은 테우리였던 할아버지는 군인에게 붙잡혀 도망친 사람들이 숨은 곳으로 대라는 군인들에게 마구 맞았지요. 할 수 없이 소를 데리고 다니다가 소나기를 피한 적이 있는 어떤 동굴을 가리켰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한 아이와 그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숨어 있었고, 군인들의 총에 맞아 그만 죽고 말았지요. 할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슬펐답니다. 옛일을 생각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던 할아버지는 친구의 암소와 송아지가 사리진 것을 알게 되었고 암소와 송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솔숲을 뒤져 보기로 작정하고 오름을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채 다 내려오려기도 전에 큰바람이 불어닥쳤고,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눈보라가 밀려왔어요. 바람에 밀려 발을 자꾸 헛디디고 예전에 군인들에게 맞은 옛 상처가 아파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눈보라 속을 꿋꿋이 걸어 나간 할아버지는 암소와 송아지의 발자국을 따라 갔다가 친구의 집으로 오게 되었지요. 암소와 송아지는 스스로 제 주인을 찾아온 것이었고, 병든 친구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현기영 작가는 <<테우리 할아버지>>를 통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주4.3사건을 간결하게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평화로워보이는 테우리 할아버지의 일상 이면에는 역사의 희생양이 된 테우리 할아버지와 그 친구의 모습이 비극적인 역사의 아픔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흑백으로 그려진 4.3사건 당시의 회고를 표현한 장면은 그 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지요. 현기영 작가 역시 잘 그려진 예술 작품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토리와 삽화가 너무도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제주 4.3사건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네요. 부록으로 수록된 [해설]을 통해 4.3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전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들에게 들려줘야겠습니다.
해방된 이 땅에 통일정부가 옳지, 분단된 단독정부가 웬말이냐고, 항의와 저항의 아우성이 온 나라에 메아리쳤습니다. 그 중에 특히 제주의 저항이 완강하고 거셌는데, 이에 군경토벌대는 무자비한 대학살극을 연출함으로써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을 파괴했습니다. 아이, 여자, 노인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이었죠. 초원의 마소도 그만큼 떼죽음 당했으니, 게릴라의 양식이 된다고 그렇게 씨를 말렸던 겁니다. (해설 中)
(이미지출처: '테우리 할아버지'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