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7
애드리안 포겔린 지음, 정해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멍때리기는 나의 전문 분야다. 불과 며칠 전, 회사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은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한동안 멍때리고 앉아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멍때리고 있다보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생각이 드는 탓이다. 느낌 아니까, 책 제목이 친숙하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드는 순간, 나는 이런 느낌으로 멍때리기에 자주 돌입하는가 반면, 내 아이들이 멍~하고 있는 순간을 참으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런 나의 아이러니함을 이 책 속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발짝마다 한 번씩 호흡하도록 시간을 조절한다. 하나, 둘, 셋, 넷에 들이쉬고 다섯, 여섯, 일곱, 여덟에 내쉬고. 앞마당이 흐릿해진다. 걱정 많은 나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멍때리기에 돌입하는 바로 그 순간은 비몽사몽의 순간과도 같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상태에 돌입하자마자 부모님의 전투는 그저 아득한 웅얼거림이 된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스틴 릭스이 영혼이 방금 육신을 떠났습니다. (본문 12p)

 

지금 저스틴의 현실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아빠의 외도가 원인이 되어 아빠와 엄마의 전투가 시작되었고 결국 아빠는 집을 나갔다. 엄마 아빠의 전투를 잘 해결해왔던 듀안 형은 지금 입대하여 곁에 없는데다, 늘 함께했던 벤은 여자친구 카스와 사귀면서부터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멍때리기에 돌입하던 순간, 벤과 사귀면서부터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카스의 친구인 제미를 만나게 된다. 아빠가 집을 나간 뒤 나약해지고 히스테릭한 엄마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저스틴은 엄마를 블랙홀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울한 엄마는 침대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형으로부터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엄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저스틴은 제미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녀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그녀의 할머니인 그레이스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피아노를 배우게 되는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듯한 할머니와 피아노의 리듬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저스틴은 아빠의 외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듀안 형의 이라크 파병과 나아질 기미가 없는 엄마의 나약함으로 방치되어가는 저스틴은 스스로 집안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과금을 내는 방법을 알아보거나 장을 보는 등 힘든 상황 속에서 절망하는 대신 조금씩 강인해져가고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되고, 제미를 향한 첫사랑의 감정 등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듯 했다. 아빠에 대한 미움으로 스스로 가족을 지키려 했던 저스틴은 아빠가 돌아오는 것이 못 마땅했으며, 제미에 대한 비밀스러운 감정과 친했던 친구 벤과 생긴 벽 등으로 저스틴의 마음속은 여전히 전쟁중이었다.  그런 저스틴에게 건네는 그레이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스틴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고, 형의 무사함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벤과의 재회 그리고 제미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면서 저스틴의 마음속 전쟁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엄마와 나만 있을 땐, 모든 게 안정적이었어요. 우린 아빠가 필요 없어요."

"사람들은 변한단다, 저스틴. 죄인이 성자가 되지. 아버지에게 기회를 줘야 해. 가족은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난 아빠만 버리고 싶은 거예요. 엄마는 제가 보살필 거예요."

"유감스럽지만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가족은 가족이야." (본문 298,299p)

 

암울했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멍때리기를 했던 저스틴은 피아노를 통해 위안을 받게 된다. 피아노는 저스틴에게는 소통의 도구였고, 소심하고 주눅 들어있는 저스틴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저스틴을 보면서 앞서 멍때리기에 대한 나의 아이러니함에 대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멍~하고 있을 때, 내 아이들이 자신의 고민을 나에게 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복잡한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혹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돌파구가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내제되어 있었던 듯 싶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저스틴은 상황을 잘 이겨내면서 성장해나갔다.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 속이 바로 저스틴같지 않을까? 그들의 마음 속은 가족, 이성, 성적, 미래 등으로 인한 시끄러운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저스틴처럼 그 마음속 전쟁을 몰아낼 수 있는 자신만의 도피처 하나씩은 갖고 있기를 소망한다. 이 작품은 우리 청소년들의 심리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이 책이 우리 아이들의 또 하나의 도피처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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