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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수학 -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
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지음, 박형주 감수 / 민음인 / 2014년 1월
평점 :
나는 종종 출퇴근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 번호판의 숫자들을 더하는 버릇이 하나있다.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왜 숫자를 더하는 버릇이 생겼는지를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주산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암산탓은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진실을 알기는 어렵다. 그저 나의 이상한 버릇이라 치부하고 말았는데, 오늘 읽은 책 글귀에서 진실에 가까운 버릇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원리는 수이며 만물은 수를 모방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기실 우리 삶이 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수학을 한다. 보기만 하면 바로 개수를 세어 보고, 그 양을 가늠한다. 어떤 것은 높이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또한 어떤 것은 넓이가 아주 중요하다. 이를 통해 득과 실을 구별 짓기도 하고 때로는 비교 우위에 따라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수학적 감각을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본문 33p)
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 <<문명과 수학>>에 수록된 글이다. 수학,하면 너도나도 고개를 젓는 현실에서 그리고 인문서적이라면 한숨부터 쉬는 내가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EBS 다큐프라임 <문명과 수학> 방영 당시 스치듯 지나가며 잠깐 시청하면서 느끼게 된 호기심 탓이다. 문명 이전에 출현한 수의 개념부터 현대 수학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중요한 이정표로서의 수학을 알기 쉽게 풀어낸 이 프로그램은 2012 한국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2012 대한수학회특별공로상 등 10개가 넘는 수많은 상을 휩쓸며 호평을 받았다. 제대로 시청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로소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희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수학문제를 풀며 울그락불그락 화를 내고 있는 딸에게 입시 도구로 전락한 수학이 아닌 문명의 태두였던 그 뿌리로의 접근으로 수학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단언하는 한 가지는, 수학을 다룬 인문서적을 이렇게 재미있게 접근하여 구성된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없으리라, 는 점이다. 분명 이 책을 읽고나면 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에 공감할 것임에 나는 확신한다.
수학을 문명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접근하여 풀어쓴 <<문명과 수학>>은 '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주의 형태를 고민하는 데까지 다다르게 된다.
1858년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헨리 리드는 이집트의 룩소르 시장에서 낡은 파피루스 한 장을 구입했다.
파피루스는 람세스 2세의 장제전에서 도굴당한 것으로, 무려 3500년 전에 쓰인 것이었다.
이 파피루스에는 파라오의 왕국 경여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적혀 있었다.
피라미드 높이를 정하는 법, 토지 측량, 노동자에게 급료를 나눠 주는 방법 등 84개의 문항이 그것이었다.
파피루스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쓴다."
그것은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에게 답을 요구한다. 이 세상은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다.
우리는 이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길을 나선다.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을까?" (프롤로그 中)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는 이 흥미 가득한 프롤로그에 서둘러 그 여정을 따라가본다. 그 여행길에 우리는 수학의 본질을 살펴보게 되고, 수와 기하가 우리 삶에 내제한 것임을, 그리고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문명을 움직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집트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파피루스 한 장에 의지해 인류 최초의 문명 이집트가 왕국을 운영하던 방식, 그리고 어떻게 분배와 측량의 기술을 터득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수의 시작으로 들어가본다. 이후 모든 논리학과 철학, 과학의 원론이 된 그리스의 철학과 수학을 집대성해 한 권의 책에 담은 유클리드의 「원론」과 "점이란 무엇인가?"라는 간단한 질문 하나에 매달린 피타고라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온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매달린 이유를 살펴보게 된다. 이후 인도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꿔버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0'이 탄생한 내력을 추적한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인도의 수학이 아랍으로 녹아들어 새로운 진화를 보여준 내용을 살펴보고, 모든 것을 방정식으로 풀어 내는 마법과도 같은 미적분을 둘러싼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치열한 싸움에 이어 30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아마추어 수학자가 낸 문제를 둘러싼 천재 수학자들의 치열한 도전까지...그 여정은 한마디로 흥미로웠다.
파피루스의 50번째 문제 "지름이 9케트인 원의 넓이를 구하라."에 대해 이집인들이 발견한 방법은 실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집트인들이 구한 원의 넓이는 64, 그리고 현대 수학의 값은 4.5X4.5X3.14=63.59 거의 차이가 없었던 그들의 풀이법은 경이롭다. 이것만으로도 기하와 산술에 관해 남긴 엄청난 양의 파피루스 문서와 점토판이 없었다면 수학사의 혁명은 한참이나 뒤처졌을 것이라고 말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음악 속에 숨겨진 감동의 비밀을 찾아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완성하게된 피타고라스는 증명을 통해 법칙을 만들었고 수학은 피타고라스로 말미암아 정신을 얻게 되었기에 수학이 피타고라스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무방할 게다. 얼마 전 제논에 관한 철학책을 읽다가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 그리고 화살에 대한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제논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피타고라스의 학파는 증명하지 못했다. 기원전 5세기부터 이후 19세기가 되기까지 아킬레스는 무려 2300여 년을 거북이 등만 보며 달렸으나, 아킬레스가 드디어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한히 간격을 좁혀 가다 보면 0으로 수렵된다'는 결론에서 였다.
"모래알같이 많다." 이제 우리는 이 말을 수로 표현할 수 있다. 모래 알갱이, 혈액 속의 적혈구, 하늘의 별들....이 숫자를 가지고 나서야 우리는 더 거대한 것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작은 0을 만들고서 큰 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0은 없음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0으로 표현한다. 영어의 "I Have Nothing"과 닮아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소유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은 수학에서 대단히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즉 공허를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본 민족이기에 만들 수 있는 수, 그것이 바로 0이다. (본문 89,90p)
정적인 대상만을 연구하던 수학이 움직이는 세계, 즉 변량에 주목하게 되면서 움직이는 세계를 향한 수학의 본격적인 행보에 기여한 데카르트, 같은 시기, 다른 장소에서 이전의 세계를 뒤발꿀 만한 어마어마한 하나의 생각으로 등장한 미적분의 두 천재 라이프니츠와 뉴턴, 350년 동안 저주 받은 문제였던 비밀이 열 살짜리 영국 소년의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30년 만에 봉인해제 되어버린 사건들, 이렇게 난해한 문제들에 매달리는 수학 천재들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푸앵카레의 추측 등 수학사의 악몽 같았던 난제들을 해결하고서도 아무런 보장 없이 세계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이 있어 역사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고, 현재는 문명 속 수학을 찾는 여정을 지속될 수 있었다. 새로운 문명 뒤에는 언제나 수학이 존재했던 탓이다. 아직도 수학에는 남겨진 문제들이 존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문명이 창조될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내내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수학의 까다로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여정이었으며, 그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문명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수학, 그 본질을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이 무엇이며, 수학을 왜 배우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해도 좋으리라. '정말 제대로 된 수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수학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며, 수학에 대한 왜곡된 인식만 가지고 있는 딸의 생각도 바꾸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여정이 끝나고 돌아온 자리, 그들은 묻는다. "당신은 즐거웠는가?" 나는 충분히 즐거웠으며 경이로웠다고 확언한다.
(이미지출처: '문명과 수학'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