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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당연시 여기다가 누군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소중함과 흘려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알게 된다. 주인공 로렌초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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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파비오 볼로의 작품은 처음 접한 듯 하다. 잔잔한 감동 속에 파격적인 묘사를 가미한 스토리가 독특하여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다 잘생긴 외모에 한 번 놀라고 그의 이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저자는 영화배우이자 소설가이며 텔레비전 및 라이오 프로그램 진행자이며 성우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로 다방면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2009년 출간된 그의 다섯 번째 소설이며, 2011년에는 그의 소설 <하루만 더>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 다재다능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는 아버지, 그리고 사랑했지만 이제는 떠나버린 여인.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표지 中)
<<내가 원하는 시간>>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중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하나는 주인공 로렌츠가 관계가 소원해진 아버지와의 이야기며 또 하나는 2년 전 헤어진 애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해지게 되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혹여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의 실수로 인해 나를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곁에서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나는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성인이 되어서야, 그리고 잠시나마 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망각하면서 비로소 나는 그의 본모습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사내끼리의 대화를 나눌 수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에 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된 지금은 내가 너무 늦게 눈을 뜬 것은 아닐까,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뿐이다. (본문 13p)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돌려감기 버튼을 누르고 거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거꾸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뒤를 훨씬 더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건 배를 타고 뱃머리가 아닌 후미에 몸을 기대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본문 25p)
로렌초의 이야기는 소중한 두 사람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고, 그는 과거과 현재를 오가며 지금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함께 놀아주기를 바랐지만, 가난했던 아버지는 항상 일이 먼저였다. 로렌초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두 가지 상황은 아버지가 일을 하러 나갈 때와 일을 마치고 피곤에 찌들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가난 때문에 자신이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 속에서 자란 로렌초는 어려서부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난은 로렌초에게 살아가면서 분을 삼켜넘길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한마디로 로렌초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은 가난으로 인해 부끄러운 인생이었다. 로렌초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친 뒤 공부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돈을 좀 벌어서 가족을 돕는 일이었고,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돌아다니면서 채무자들에게 빚을 수거하는 것을 하게 되었다. 로렌츠는 늘 채무자였던 아버지한테 자신의 일을 말을 할 수 없어 결국은 거칠고 충동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로렌초가 결코 되고 싶지 않았던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배신자.
이후 로렌츠의 재능을 알아보게 된 엔리코의 도움으로 로렌초는 카피라이터로서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고리였던 고물 차 대신 새 차를 산다는 건 그에게 더 많은 외로움과 더 큰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 시절을 빠르게 향상되던 나의 경제적 상황과 직장 생활이 곧 가족과의 결별을 상징한다고 느끼면서 살았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려나갔지만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본문 222p)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지만, 사랑을 적응이란 것과 혼동하였기에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사랑받는 법도 몰랐다. 헤어진 후에야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돌아가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되돌려줄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다시 되찾으리라 마음먹었다. 이 책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가던 로렌초가 과거의 기억을 시작으로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그들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내 주변의 사람들, 나의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게 하며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도록 이끈다.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담아낸 유머코드와 디테일한 묘사들이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은 지금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 아닌가?를 되묻는다. 로렌초의 이야기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 시작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이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마냥 잔잔할 것만 같은 이야기에 로렌츠의 이야기에 조금은 파격적인 묘사들이 담겨져 있어 자칫 지루해질 이야기에 재미를 선사한다. 로렌츠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독자들로 하여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로렌츠 사이의 관계는 내 아버지와 남동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 해서 더욱 공감되었던 듯 싶다. 무엇보다 나는, 10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로 인해 깨달았던 함께 할 때의 소중함,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책을 읽는동안 그런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스토리에 많이 젖어들었던 거 같다. 홀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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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로렌츠가 로베르토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독서에 대한 글귀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담아본다.
"책을 읽으면 행복해지나요? 아닌 것 같은데. 인생고를 해결하려면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일을 해야죠."
"네 얘기도 맞다. 하지만 행복이든 불행이든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거야....
책을 읽는다는 건 세계를 향해 우리 감각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과 같아. 독서란 우리가 가슴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것들을 찾고 확인하는 일이야. 우리가 삶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
책 속에 쓰여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우리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때가 있어. 왜냐하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말이기 때문이야." (본문 116,117p)
그랬다. 이 책에서 로렌츠가 했던 말과 했던 생각들이 바로 내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나는 잃어버릴 뻔한 소중한 사람들을 찾을 기회를 얻었다.
(이미지출처: '내가 원하는 시간'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