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사건 두레아이들 그림책 6
루쉰 글, 전형준 옮김, 이담 그림 / 두레아이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3년 마지막으로 읽게 된 책은 바로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루쉰의 대표적인 작품 8편을 담은 <아Q장전>이었습니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지 사상가이기도 하지요. 루쉰은 작품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선 비판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주인공들을 통해 우월주의와 노예근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이야기 속에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이 작품을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동안 서양 고전에 익숙했던 터라 중국의 고전은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들었던 루쉰의 작품 <아Q정전><광인일기>를 읽어보았다는 것이 참 기뻤지요. 그러던 중 루쉰의 자전적 단편을 담은 그림책 <<어느 작은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작품을 읽으면서 루쉰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탓에 이 그림책이 무척이나 궁금했었습니다. 그의 자전적 단편이자 국내 최초로 루쉰의 작품을 완역 그림책으로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호기심을 갖게 했지요.



이 작품의 원제는 <一件小事(일건소사)>라고 합니다. 내용에 호기심이 일었던 작품이었는데, 삽화 또한 근사합니다. 이 삽화는 왁스를 이용해서 그린 '왁스 페인팅'이라고 하는데, 왁스 페인트는 가장 오래된 채색화 재료라고 하네요. 화면 가득 칠해져 있는 왁스를 긁어 나가면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법인데, 그 기법탓인지 섬세한 느낌이 드는 삽화입니다. 가장 오래된 채색화 재료인 탓인지 1900년대를 담은 이 작품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루쉰이 1912년 5월 베이징에 올라온 후 6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격변기였던 탓에 나라의 큰일이 많은 때였지만, 루쉰에게 영향을 미친 사건은 아주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나라의 큰일들은 루쉰의 고약한 성미를 더욱 나쁘게 했으며, 날이 갈수록 사람을 더욱더 깔보고 업신여기게 만들었지요. 그런 고약한 성미를 고치게 해 준 사건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은 사건입니다.



1917년 가을, 북풍이 사납게 불던 날,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 루쉰은 가까스로 인력거 한 대를 잡고 S문으로 향하고 있었지요. 잠시 뒤 북풍이 잦아들면서 인력거꾼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졌는데 S문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인력거 채에 걸리더니 천천히 넘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넘어진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낡고 헤어져 있는 옷을 입은 여자였지요. 인력거꾼이 빨리 걸음을 멈춘 탓에 여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여자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고 인력거꾼도 발길을 멈추었지요. 루쉰은 그 할머니는 결코 다치지 않았고, 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탓에 인력거꾼이 쓸데없는 일로 스스로 말썽을 일으켜서 자신이 가는 길을 늦추는 것이 몹시 원망스러웠습니다. 루쉰은 인력거꾼에게 가던 길이나 가자고 했지만, 인력거꾼은 인력거를 내려놓고서 할머니를 부축해서 설 수 있게 도와준 뒤 다친 데 없냐고 물었어요. 할머니는 넘어지면서 다쳤다고 했지만, 천천히 넘어지는 걸 똑똑히 본 루쉰은 할머니가 엄살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력거꾼은 할머니의 말을 듣더니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노인의 팔을 부축한 채 파출소 문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루쉰은 온통 먼지투성이인 인력거꾼의 뒷모습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고, 그 모습이 자신을 억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출소에서 경찰 한 사람이 나오며 다른 인력거를 타고 가라고 했을 때 비로소 루쉰은 인력거에서 내려 인력거꾼에게 건네주라며 동전 한 움큼을 경찰에게 건넸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는 게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 전의 일은 잠시 젖혀 놓더라도, 동전 한 움큼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에게 상을 준다는 건가? 내가 인력거꾼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32p)


이 사건으로 루쉰은 언제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자신에 대해 돌아보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 작은 사건의 기억은 어느 때는 전보다 더 또렷해지면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재촉하고,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준다고 하네요. 루쉰이 겪은 이 작은 사건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진심으로 행한 인력거꾼의 행동, 배려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를 오늘 이 그림책 통해 똑똑히 보았습니다. 조금의 배려도 없이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탓에 쉴새없이 터져는 사건사고들 속에서 이 작은 사건이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마음과 인간성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나의 이익만을 따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삭막한 세상에 인력거꾼이 보여준 배려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요?



루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어보고자 했던 <<어느 작은 사건>>은 기대보다 더 큰 감동과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삽화 기법은 보는 즐거움도 더했지요. 저도 루쉰처럼 이 사건으로 제 자신을 다잡는 기회로 삼아보고자 합니다.


(이미지출처: '어느 작은 사건' 본문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