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여동생
고체 스밀레프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현실은 언제까지나 알 수 없는 채로 남을 것이다."라고 적었지만 우리는 프로이트의 출국비자와 그것이 누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의미했는지 알고 있고, 프로이트가 런던으로 망명해서 보낸 마지막 몇 달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그것은 기록으로 자세히 남아있다. 또 프로이트의 누이들이 결국 어떻게 됐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누이들의 마지막 몇 달은 역사에 남아 있지 않다. 프로이트는 어느 편지에서 아돌피나를 '누이들 중 가장 다정하고 착한 동생'이라고 불렀다. 아돌피나를 둘러싼 침묵이 매우 요란해서 나는 이 소설을 그녀의 목소리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미로 속에서 아돌피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통로를 찾아다니며 그녀의 목소리를 글로 옮기면서 소설을 통해 역사 속에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 中)

 

<꿈의 해석>의 작가,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정시병리학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체코의 유태계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유년 시절 빈으로 이주하여 대학에서 의학 수업을 받았고, 1938년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다. 프로이트에 대해 검색을 하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략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다는 사실 속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가 있었고, 저자는 프로이트의 해외의 외교관 친구들의 도움으로 런던으로 망명하게 되면서 같이 데려갈 가까운 사람들 명단을 작성하면서 올케, 조카들, 올케네 여동생과 가정부 둘, 오빠의 주치의와 주치의의 가족들 그리고 강아지 요피를 작성하면서 네 명의 누이를 기록하지 않았던 사실에 주목했다. 결국 여동생 파울리나 그리고 마리 언니와 로자 언니는 아돌피나와 함께 베를린에 남게 되었고 수용소를 끌려간 그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아돌피나가 죽음 앞에서 눈을 감으면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저자는 침묵하고 있던 아돌피나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고자 했다.

 

그들은 몇 발짝 걸어서 샤워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샤워기를 바라본다. 오틀라와 아이들. 그들이 웃는다. 드디어 따뜻한 물로 실컷 몸을 씻게 되었다고. 누군가 물이 나올 줄 알고 팔을 뻗는다. 그 순간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고 어디선가 가스가 퍼진다. 오틀라는 아이들 얼굴을 보고,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새파랗게 질리는 얼굴들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마시려는 얼굴들을 보고, 아이들이 바닥에 쓰러져 한 아이 위에 또 한 아이가 포개지는 걸 보면서 자신도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힌 채로 너무 튼튼한 몸으로 끝까지 남아 아이들이 죽는 모습을 다 봐야 하는 운명을 저주하면서, 마침내 아이들의 시체 위로 쓰러지고 아이들의 눈이 뒤로 넘어가고 입에서 피가 흐르는 걸 다 보고 나서야 가슴이 뭔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고 그녀의 눈도 뒤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내뱉는다. (본문 41p)

 

언젠가 가슴 아프게 보았던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충격적이었던 장면과 흡사한 묘사가 그려진 부분이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법에 익숙해진 네 자매는 죽는다는 것보다 고문 같은 상황을 두려워했고, 결국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수용소에서 만난 오틀라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했던 장면 앞에 이제 아돌피나는 서 있다. 죽음 앞에서 눈을 감은 아돌피나는 자신에게 정신적 학대를 서슴치 않았던 어머니, 오빠 지그문트 그리고 옛 연인인 라이너, 친구 클라라 등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내 삶이 시작되는 순간에 사랑과 미움이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 둘의 감정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상처에 연고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연고가 독이 되어 상처를 덧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의 미움은 내게 가장 아픈 상처이면서도 또 엄마만큼 날 사랑해준 사람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오빠 지그문트조차도. (본문 49p)

 

병약했던 아돌피나는 "널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엄마의 말에 상처를 입었고,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엄마의 자장가에서 사랑을 느꼈다. 여섯 살 많았던 오빠 지그문트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다른 누이들보다 더 살갑게 굴었다. 하지만 그런 오빠가 자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오빠와 멀어지게 된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아돌피나는 당시 의학을 공부하던 오빠의 도움으로 프리드리히 리히터 화가의 집에서 그림을 배우게 되고 자신처럼 고통을 담은 눈을 가진 화가의 아들인 라이너와 친구가 된다. 그곳에서 아돌피나는 여자들이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외치는 클라라와 만나게 된다. 아돌피나는 성장 후에도 여전히 엄마에게 정신적 학대를 받았는데, 언니들과 여동생이 엄마처럼 그 시절 여자들의 삶의 수순을 밟자 엄마는 아돌피나의 연악한 빈틈에 미움을 쏟아 부었다.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라이너가 부모님의 죽음으로 아돌피나에게 찾아오게 되면서 두 사람의 연인관계는 시작되지만, 아돌피나는 라이너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

 

오래 전 아직 겁 많은 소녀로 엄마에게 미움받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에, 나는 언젠가 손 하나가 나타나 내 손을 잡고 다른 존재로 데려가 줄 거라고 믿었다. 꿈속에서 그 손을 보고 손을 뻗다가 벽에 부딪혀 잠이 깬 날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절망 속에서도 언젠가 그 손을 찾아 내 손과 누군가의 그 손이 맞잡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그날이 오면 내 고통도 끝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라이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에게 더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는 순간 내 손을 잡았던 그 손으로 나를 뿌리치고 절망 속으로, 깃털과 납, 피와 영혼이 같은 빠르기와 같은 느림으로 떨어지는 진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본문 134p)

 

아돌피나는 결국 부모와 여인으로부터 고통 받으며, 친구 클라라가 있는 정신병원인 '둥지'에서 보내게 되고, 정상인 것과 미친 것, 삶과 죽음 등에 관한 철학적 사색을 하게 된다. 그를 통해 독자 역시 정상과 미친 것 그리고 삶과 죽음, 사랑과 배신 등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을 느껴보게 된다. 네 자매와 클라라 그리고 엄마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당시의 시대상은 아돌피나의 삶을 더욱 외롭게 했으리라.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야하고 자신의 삶을 모두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던 엄마, 그리고 인해 더욱 고통받았던 아돌피나 그리고 그런 시대를 바꿔보고 싶었던 클라라, 그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삶도 떠올려본다. 그리고 여기서 문득, 프로이트에 관한 상당부분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나의 관점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죽음을 통해 태어나지 못했던 아기를 잊고, 사랑했던 라이너를 잊고, 오빠를 잊고, 삶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사랑과 고통을 잊고, 태어난 사실을 잊으려는 아돌피나, 누군가에게도 기억되지 못했을 그녀의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웠던 삶이 이제 작가 고체 스밀레프스키를 통해 우리에게 기억되어지고 있다.

 

나는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죽음은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다짐한다. 나는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은 그저 추억일 뿐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죽음은 그저 망각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나는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다 잊어버릴 것이라고 되뇌었다. 나는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되뇌었다. (본문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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