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을 두드리는 동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5
박재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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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TV 매체를 통해 사물놀이를 보면 저절로 흥이 난다. 징, 꽹과리, 장구, 북을 치는 그들이 신명나게 뛰는 모습과 단순한 장단이지만 점점 빨라지는 장단 속에 나의 심장 박동소리도 점점 빨라지는 탓이다. 책 제목에서 절로 그들의 모습과 장단 소리가 들리는 듯 했기에 사물놀이의 장단처럼 조금은 신 나고 유쾌한 스토리를 원했지만, 뜻밖에 깊은 수렁에 빠져 힘들어하는 수린이 등장한다. 기대했던 느낌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 청소년 소설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성장통의 이야기지만, 사물놀이를 소재로 함으로써 조금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화관광부에 있는 아빠의 주선으로 수린은 대학생인 사촌 오빠와 예고 후배들로 구성된 사물놀이패인 주유나이 패와 함께 러시아로 봉사활동을 가게 된다. 마법의 지우개인 여행을 통해 지난 일들 말끔히 지우고 돌아오기를 기도한다는 엄마와 달리 수린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나선다. 하지만 사물놀이 패의 깍두기가 되어버린 수린은 아이들의 눈초리가 견디기 힘들다. 사촌인 갈두 오빠는 말라깽이 춤꾼인 난희에게 수린을 부탁했고, 다행이도 난희는 혼자 난간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인 수린을 잡아끌어준다.

 

혼자 난간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울컥 뭔가가 치멀어서 손수건을 찾는데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끈다. 말라깽이다. 난희는 나를 그들의 원 속으로 집어넣는다. 네 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뛴다.

"웃뜨웃뜨! 두, 드리자!" (본문 27p)

 

외고생인 수린은 엄마, 아빠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학교와 학원만으로 오가며 살아왔다. 시를 좋아하는 수린에게 시를 사랑하는 준성 오빠는 돌파구였으며, 자신때문에 싸우는 엄마 아빠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안식처였다. 일기 속의 주인공, 영혼의 이름인 '다이몬'이라고 붙여준 강아지가 잃어비린 지 일주일 만에 찾았을 때, 다이몬은 수린 자신과 같은 우울증이었다. 동물병원에 있는 다이몬과 깍두기가 되어 주유나이패에 끼어있는 수린의 처지는 그렇게 닮아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수린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 있었다. 물론 센스있는 독자라면 짐작했을 법한 비밀이지만, 그 비밀에 관한 상황은 독자들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수린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있었다. 거침없는 난희와 짝이 되고,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수린은 자신만 상처와 고통, 절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짝인 춤꾼 난희에게는 아픈 언니와 노숙자인 아빠를 둔 아픈 가족사가 있었으며, 리틀 파파가 된 영배가 있고, 그런 영배의 연인을 자처하는 은우도 있었다. 수린은 자신의 아픔을 꽁꽁 숨기고 감추고 있는 반면, 그들은 자신의 아픔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깍두기라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던 수린은 그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아이들 속에 자신을 조심스럽게 끼워 넣어본다.

 

주유나이는 주영배, 유은우, 나갈두, 이난희의 성을 따서 만든 이름이란다. 그 사각의 퍼즐 속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박수린을 주유나이 패에 끼워 넣는다.

-주유나이박. (본문 158p)

 

공항에서 헤어진 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건 적 없는 수린은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서야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수린은 난희를 통해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한국으로 돌아온 공항, 검정색 승용차에 황금빛 털북숭이 다이몬이 나타난다. 다이몬이 건강해진 것처럼 수린도 그렇게 건강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작가는 다이몬을 통해 암시해준다. 이제 수린도 주유나이 패들이 파이팅하기 위해 두 발을 높이 들어서 겅중겅중 뛰면서 외쳤던 말을 함께 외칠 수 있지 않을까. "웃뜨웃뜨! 두, 드리자!"

 

나는 달려간다. 소나기가 내 얼굴을 때린다. 상관없다. 하늘의 축제라며 난희는 일부러 맞기도 하는 소나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일부러 맞을 건 없지만 일부러 피할 것도 없다. 즐기는 건 그다음의 일이다. (본문 250p)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이다. 두두두 웃뜨 웃뜨! 왠지 기운이 날 것 같은 말이라 나도 소리내어 자꾸 중얼거려본다. <<징을 두드리는 동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다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꽁꽁 감추고 있었고, 누군가는 소리내어 말하고 있었다. 이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진실 게임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는 수린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아픈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수린의 성장 과정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듯 싶다. 그렇다. 일부러 맞을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피할 것도 없지 않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 그것이 작가가 수린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었을 게다.

 

기대한 것처럼 신명나고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 탓에 처음 페이지를 넘길때는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사물놀이의 신명나는 장단이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 한 걸음 한 걸음 극복해가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렇게 들린 탓이었으리라. 첫인상과 달리 읽을수록 호감이 가는 책 <<징을 두드리는 동안>>이었다.

 

(사진출처: '징을 두드리는 동안'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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