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제로
롭 리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노래는 더럽게 못하지만, 립싱크는 은하계 최강인 놈들이 온다!"

 

 

헤드폰을 쓰고 있는 외계인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인상적인다. 이어 제로?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호기심을 이끄는 책 제목과 표지삽화가 눈길을 끈다. 표지글을 보자니 그 호기심이 배가 된다. 올해의 최고의 SF 소설이자,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는 평가받은 작품인데, 재미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음악 및 IT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겪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저작권법을 둘러싼 이권 현장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롭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재의 독특함이나 저자의 기막힌 상상력이 눈에 띄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사실 작품의 재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아쉬운 것은 저자가 작품 속에 언급한 '한국'의 이미지가 썩 좋은 의미는 아니였던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언짢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폭풍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의 음악도 많이 알려져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이럴 때만 민감해지는 애국심이라니. 각설하고, 이런 개인적 사견을 떠나서 저자의 상상력이 뛰어남을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간의 모든 음악에 대한 라이선스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상당히 많은 존재가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여야 해요. 사적으로는 물론, 공적으로도 자유롭게 복사하고 전송하고 공유하고 저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4p)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비틀즈의 음악에 우리가 열광하듯이, 혹시 우주 어딘가에서 외계인들이 지구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1977년 처음으로 지구 음악을 접한 외계인들은 뇌출혈과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고, 그 해를 원년(Year Zero)로 삼았다. 모든 분야에서는 최고인 외계인들이 음악만큼은 더럽게 못하는 탓이다. 그렇게 지구 음악에 심취한 외계인들은 수십 년 후, 빅뱅 이래 최대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파산 위기를 맞게 되게 된다. 그러자 천문학적인 빚을 갚느니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세력이 생겨났는데, 지구파멸 세력에 반대하는 립싱크 전문 외계인 팝가수 프램튼과 칼리는 연예계 저작권 담당 하급 변호사인 닉 카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된다. 닉은 매년 오래 근무한 하급 변호사들 중에서 파트너로 성장할 기미가 없는 부류를 무자비하게 솎아내는 대상자 중의 하나인, 입지가 점점 쪼그라드는 변호사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48시간 내에 인류를 구해야만 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닉은 이웃에 사는 짝사랑하는 법률보조원 만다와 사촌형 퍼그워시, 닉의 상사인 셔먼과 함께 인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닉의 좌충우돌하는 장면들이 저자가 심어놓은 웃음 포인트인 듯 싶은데, 사실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다. 기발함이나 신선함에 대해서는 인정하겠으나, 재미와 유머에서는 호평에 비해서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른 문화적 차이때문이려나. 재미는 좀 부족했으나, 음악 산업의 이면과 저작권 문제에 대한 사회 풍자를 잘 녹아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음악 산업계에는 십여개의 주요 음반 제작사, 수백 개의 중간 단계 종사자, 셀 수 없이 많은 트집쟁이까지 수만, 아니 수십만에 이르는 이해 상충 집단이 존재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단체를 어떤 하나의 합의에 이르도록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모두 공정하게 판단하고, 엄청나게 영악하고, 결단력이 있더라도 똘똘 뭉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음악업계의 수장들은 그럴 인간이 절대로 아니다.

대형 음반사 경영자들은 사업과 연결된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기네들끼리 못 잡아먹어 안달한다. 그들은 심지어 음악가들도 미워한다(마약에 쩐 버릇없는 자뻑들!). 그들은 자기네 음악을 무료로 홍보해주는 라디오 방송사도 미워한다(힘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자식들!). 또한 온라인 음악 산업계도 혐오한다(남의 걸 훔쳐 파는 괴짜 새끼들!). 음반 소매상들이 활개쳤을 때는 그들도 엄청 싫어했다(저 자식들은 마진을 너무 붙여먹는다니까!). CD 판매금의 대부분을 떼어가는 월마트 사람들도 미워한다(공화당을 지지하는 나치 구두쇠들!). 그들은 공연 업계도 늘 미워해왔다(저 돈을 우리가 먹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음악을 사서 듣는 대중까지도 경멸한다(도둑놈들! 우리 걸 다운로드한 괴짜 새끼들을 등쳐먹는 도둑놈들!). (본문 184,185p)

 

 

<<이어 제로>>는 작가 롭 리이드의 첫 소설이다. 그러기에 독특한 캐릭터와 기발하고 신선한 소재, 거기에 사회문제까지 언급하고자 했던 신인 작가의 의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개의 복잡성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흡입력을 떨어뜨리고, 복잡한 전개와는 다른 아쉬운 결말은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어쩌면 작품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에 오는 아쉬움일지도 모르겠으니 내 개인적 사견이 전부는 아님을 명시해본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 다음 작품을 기대가 되는 주목할 만한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덧붙히자면, 표지삽화는 최근 접해본 책 중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이끄는데는 단연 으뜸이었다.  

 

(사진출처: '이어 제로'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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