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에서 느꼈던 첫 번째 느낌은 '인문서적'같은 딱딱함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호기심으로 이끈건 '독일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놀라운 신예 베네딕트 웰스'라는 작가 때문이었는데, 내가 추구하는 스토리가 아니었음에도 생각지도 못한 기대 이상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결말을 독자에게 완전 맡겨버린 저자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약간의 아쉬움까지 갖게 만들었으니, 이 젊은 작가의 필력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청춘들은 젊어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을 무색하게 할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로지 대학입학을 위해 오랜 시간을 버텨왔으나, 목표로 해왔던 대학을 입학 한 후에도 등록금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졸업을 한다해도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미래에 대한 암담함,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요즘 젊은이들이 심리가 아닐까 싶다. 여기 삶에 대한 의심, 고민, 희망을 긁어모아 미국 횡단 여행에 나서는 청춘 3인조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여행이 끝난 후 어른의 삶을 선택한 이들, 그리고 끝나지 않은 결말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이정표를 만들 수 있는 모험을 제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열일곱 살의 프랜시스 딘은 한마디로 가망 없는 루저다. 딘은 지금 엄마와 정신병원에 앉아 있다. 딘은 엄마와 클레이몬트 외곽의 소나무 트레일러 정착촌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가 이붓 아버지였던 라이언와 이혼 후에 이부형제 니키와 이별한 후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신이상자, 루저, 편부모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곳 정착촌에 사는 누구나 언젠가는 결코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명확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엄마가 항상 딘을 '프랭키, 우리 꼬마 천재'라고 불렀어도 말이다. 딘은 병동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하고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되는데, 이후 앤메이를 만나기 위해 딘은 매일 병동에 들른다. 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유급이 확정되면서 군에 자원입대를 하겠다고 하자, 엄마의 자살 소동이 일어났고 딘은 엄마가 자신에게 남겨둔 편지를 통해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먼로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 엘리트층을 길러낼 계획으로 설립된 천재 정자은행이 설립되고, 엄마는 재정적 안정을 보장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한 천재의 정자를 수정받게 되었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바로 딘이었다. 엄마가 그동안 감추었던 딘의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한 이유는 딘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해하고, 자신에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다. 딘은 트레일러 장착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아버지를 찾는 일임을 깨닫고 이붓 아버지 라이언으로부터 거금을 받아, 딘 외에는 아무도 상대 해주지 않는 친구 그로버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엔메이와 함께 친아버지를 찾는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한다. 앞날에 대해 하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한없이 질려있던 그에게 이번 여행은 그런 삶을 바꿀 기회가 되어줄 것이므로.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이 뉴욕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프랜시시는 손가락으로 조수석의 글러브 박스를 초조하게 두드렸다.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드는 여행이었다. 이 제임스라는 정자기증자가 어느 고독한 대학 교수인지, 속물이 된 컨트리클럽 회원인지 아니면 애정이 넘치고 가정적 인물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프랜시스는 친아버지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가 자신을 이 지겨운 곳에서 꺼내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만은 아주 확실해. (본문 138p)

 

딘은 꿈 속에서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따는 꿈을 몇 번에 걸쳐 꾼 적이 있어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라스베이거스에 들러 도박을 하지만, 돈을 땄다가 결국에는 돌아가는 차비마저 잃게 된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친구 그로버와의 다툼, 엔메이에게 느끼는 사랑과 질투 등을 겪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찾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부풀었던 꿈과는 전혀 다른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좌절된 모든 꿈과 희망에 매달려 그걸 절대 놓아주지 않는 거야. 비명을 질러도 좋고 애원해도 좋아. 하지만 너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할 때조차 그것들을 놓아버려서는 안 돼. 만약 놓아버리면 그땐 모든 것이 끝장이야, 꼬마야. 그 시점이후로 너의 인생은 허깨비야. 네가 몇십 년을 더 이상을 헤매고 다닌다 해도 내적으로는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지...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야." (본문 287,286p)

 

천재적이거나, 라스베이거스에서 큰 돈을 벌지 않는다면 비참한 생활에서 탈출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딘이 천재의 유전자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라는 사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좇지만, 결국은 딘의여행은 그들에 의해 이용당한 소외계층의 악다구니일 뿐이었다. 탈출하고픈 현실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딘의 선택이 당연하면서도 우울하게 한다. 하지만 우울한 것은,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에서 어른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던 딘이 다시 한번 큰 돈을 벌고자 한다는 것이다. 천재이거나 큰 돈이 벌지 않는다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 비참함이 독자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저자는 검은색이 나오길 바라는 딘이 눈을 떴을 때, 그 결과에 대한 결정권을 독자에게 주었다. 나는 검은색이 나오지 않기를, 그래서 현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그 외에도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전부는 아님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꿈과 희망은 우리가 놓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조차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점을 딘이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흡입력은 굉장한 작품이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전달력에 있어서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나의 이해력 부족탓일지도)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신인 작가의 무한한 가능성은 볼 수 있었다. 독일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 베네딕트 웰스,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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