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연작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인 땅끝섬 역시 그 많은 섬들 중 한 곳을 염두에 둔, 가상공간이다. 제목의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태생지인 섬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 순응하며 모진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찾아들었거나, 생존을 위해 먹고살려고 모여든 외지인들이 섬이라는 특수성, 폐쇄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채 서로 부대끼며 갈등, 대립, 오해를 겪다 결국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 (본문 283p)

 

책 제목이 참 낯익다. 섬섬옥수는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뜻이리라. 헌데 띄어쓰기, 쉼표 하나 있을 뿐인데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섬'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폐쇄, 고립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귀엽게 들렸던 제주도 사투리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사투리가 폐쇄의 느낌을 더해주는 듯 하다. 스토리의 분위기 탓이려나. 가끔 나는 인생이 꼬이는 느낌, 앞에 놓인 상황이 힘들어질 때 일탈을 꿈꾼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그곳이 무인도면 더 좋겠다)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마음의 마음에 동화되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내가 가진 그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과 마주하고 있자니 삶의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잔잔한 파도를 가진 바당('바다'를 일컫는 제주도 사투리)같은 내 인생의 파도가 아니러니하게도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동안 괜한 투정을 부렸구나 싶기도 한.

 

"욕심이 없으면 적이 없고 아는 게 없으면 걱정이 없고 싸우지 않으면 질 일도 없잖아요." (본문 24p)

 

섬에 사는 개들 사이에서조차 벌어지는 서열 싸움, 그리고 그와 다를 바 없는 탐욕으로 인한 섬 주민들간의 갈등, 오해로 빚어진 부부간의 갈등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인생의 실패를 겪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없이 잔잔했다가 한없이 포악해지는 변덕스러운 바다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희망은 죽지 못해 찾아온 고립된 섬, 그곳에서 죽음이 아닌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섬을 '고립'이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아름답게 변모한다.

 

생명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섬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법, 내려오기로 치면 끝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토의 시작 아닌가. (본문 264p)

 

그랬다. 땅끝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연을 만나게 된 혜자처럼 말이다. 외지인이라 배척하는 원주민들과 텃세를 부리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탐욕과 이기심으로 팽배했지만 결국은 또 인연을 만들며 살아가게 되지 않겠는가.

 

일 년 열두 달 바람이 첼렐레 팔렐레 부는 섬에는 숱한 사람들이 오가며 시절인연을 쌓고 허문다. 빈손 쥔 외지인이 먹고살아보겠다고 새로 들어오든, 한때 현금 만지는 재미 쏠쏠했던 원주민이든, 오래전 내남없이 어울려 정겹게 살아왔던 이 섬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죽살이가 그렇지 아니한가. (본문 264p).

 

죽지 못해 사는 심정으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찾아들었던 땅끝섬에서 미련과 애증, 회한을 다 내려두고 본래의 모습으로 마주한다면 스스로 만들어놓았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벗어버리지 못하는 미련과 애증, 탐욕과 이기심이 결국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음을 우리는 왜 인지하지 못할까?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섬, 섬옥수>>는 갈등, 대립, 오해 속에서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부부관계, 자식에 대한 갈망, 정교수로 선발되지 못하는 삶의 귀로에 선 자애의 절망스러운 이야기로 시작되어 희망을 담은 자애의 이야기로 끝나는 그 여정 속에서 그 의도가 명확하게 보여지는 듯 했다.

 

뒤돌아보자.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뒤를 돌아서면 그 앞에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은 이렇듯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 또는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섬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의 고됨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