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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평점 :
인간은 존재 어딘가에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장소를 남겨두고 있다. 그 미지의 장소에는 한 번도 실체를 본 적이 없는 각자의 영혼이 살며 '영혼'이라 부름직한, 인간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는 정신적 유성이 흘러 다닌다. 여행이란 어쩌면 그곳을 찾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여행을 잘하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의 신체적 접촉을 넓히는 데 있다. 최선은 오직 며칠이고 저 드넓은 대지를 관통하는 수고를 지불하는 것이다. 육신이 낯선 곳으로 떠날수록 정신은 더욱 자아의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옛날부터 길이 현자들을 끌고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문 8p)
여행지를 떠올리면 볼 만한 유적지가 많은 곳,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tv에서 본 후 그 아름다운 경치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된 스위스, 에펠탑, 베르세유공전, 노트르담 성당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많은 프랑스 등 그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다양한 나라들을 손꼽으며 여행을 계획한다. 그렇게 내가 꼽은 수많은 나라 중에 사실 몽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광활한 몽골 초원은 확 트인 시원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 외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짧은 소견 탓이다. 힐링을 위한 여행에서도 나는 그렇게 문명에서 멀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몽골에서 보낸 어제라는 부제로 쓰여진 작품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은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읽어 본 책이다. 그런 탓에 작가에 대해서도 생소했는데 이후 책을 통해 <조드>의 작가임을 알게 되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테무진(칭기스칸)이 광활한 몽골 초원을 누비며 칸이 되기까지 겪었던 유목민의 생활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조드>는 그 시기 몽골 유목민들의 삶과 생활 모습, 풍습 등을 매우 구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비록 기회가 닿지 못하여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출간될 당시 눈여겨 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조드>를 쓰기까지 10년 넘게 몽골 고원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했던 여정과 기록을 담은 책으로 <조드>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조드>를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초원에 떠가는 구름들아, 꺽을 사람도 없는데 숨어서 핀 꽃들아, 말에서 내려 잠시 소변을 누고 가는 아넥들아, 대상도 없이 타오르는 사랑아,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신체 안에 구금된 나의 영혼을 잠시 탈옥하게 해준 그대들을 나는 지상에서 과연 두 번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본문 38p)
식물, 동물, 구름, 햇빛 등이 어우러져 오랜 시간을 통해 작용하는 양상을 관찰하다 보면 지구상의 삶과 죽음의 그물이 생명체의 조직을 타고 계속된 변화와 적응을 이어가는 자생적 역학이 보일 것이다. (본문 12p)
살갗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무언가 수런대는 자연의 말뜻을 전해 듣지는 못해도 그것의 은유를 알 것만 같았다. 풀꽃 위를 떠나니는 바람의 음악도, 땅바닥을 더듬어 별빛을 읽어내는 벌레의 촉수에 사는 시도, 한 자리에서 무한히 피고 지고 나고 죽고를 반복하는 생물의 저 기나긴 여정에 깃들어 있는 존재의 신화도. (본문 24p)
광활한 초원에서 볼 것이 무어냐? 했던 자만은 하늘과 맞닿은 초원의 사진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파란 하늘, 초록빛 초원은 사진만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자연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오롯이 느껴지는 몽골의 이야기와 사진들은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세상과 내가 분리되는 느낌이다랄까. 저자의 은유처럼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초원, 그곳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전혀 막막하지 않는 느낌.
거지가 없는 유목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회를 깨뜨리는 법이 없으며, 지상의 말보다 하늘의 언어를 먼저 듣는 그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초원의 예술이었다. 이렇게 [첫 발자국 : 저 낮은 곳에 새들이 날고 있다]를 통해 보여준 몽골의 모습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듯 보인다.
누군가 만약 우리가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가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영혼'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성의 포착하지 못하는 어떤 우주적 움직임의 궤도에 놓여있다....그렇다면 운명이 시작되는 출발지는 어디인가? 그것은 끝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를 낳은 곳, 즉 나의 자연속으로 돌려보내게 만든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바로 '나'라는 육체를 조각한 자연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4p)
[풍문: 무엇이 세계인가]에서 저자는 몽골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조각한 자연의 진실을 생각하게 되고,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무섭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문명이 우리의 삶에서 대지를 내쫓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며 문명의 어항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빗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봐야 하리라.
초원을 여행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은 대지의 아름다움이다. 드높은 하늘, 무한한 지평선,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녹아내린 산들, 고원의 대지는 각이 서 있지 않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충돌하는 빛의 춤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모든 것이 인간화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이 미지와 싸우던 시절의 건강을 돌려준다. 인간의 일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대지(생태계)의 일원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감동의 증표들이다. (본문 113p)
미지의 한복판에서 조드를 구상하기까지의 작가의 모든 것이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에 수록되어 있었다. [창작노트: 『조드』를 쓰기까지]와 [좌담: 『조드』가 남긴 것]에서 잃어버린 기록을 복원해 장엄한 서사로 만든 작가 이야기에는 마치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듯한 특별함이 녹아있다. 문명의 어항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광활한 몽골 초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문명이 아닌 대지의 일원으로서 생존하는 느낌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초원 여행은 이상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대지의 아름다움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랬다.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느낌이랄까? 어항에서 벗어나 드넓은 바다를 헤어치게 된 물고기처럼, 문명의 어항 속에서 벗어난 나는 그렇게 드넓은 초원 한 복판에 서 있었다. 혼자이지만 무섭지 않은, 나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을 듯한 그 곳의 적막함에 중독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농경 정착 문명이 신에게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종의 기원'을 이탈한 점일 것이다. 농경 문명권에서 인간에게 이롭다고 판단되는 모든 동식물은 품질 개량 됐다. 유전자 병형은 얼마나 심각한 '신에 대한 범죄'인가. 유목 이동 문명이 남긴 '신 앞에서 위대한 업적'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생태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본문 71p)
(사진출처: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