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독자들이 나처럼 <위저드 베이커리>로 구병모 작가를 처음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고 그의 후속작은 늘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아가미>>는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될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었으나, 내가 구병모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청소년 소설 <피그말리온 아이들>을 통해서였고 이후 최신작 <파과>를 읽게 되면서 다시금 작가의 남다른 필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시간은 좀 지났지만 그녀의 놓친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고의는 아니지만><<아가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작품은 제목의 독특함과 표지삽화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이는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 때야 평할 수 있는 감탄일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 강인한 흡입력에 빠져들게 되면서 구병모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랬다. 이 작품은 정말 간만에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읽은 작품이었다.

 

그가 말없이 물속으로 사라져간다고 해서 놀라지 마세요. 그와 우리는 다르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동소체와도 같은 생물들이에요. 완전히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배열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관계처럼. (본문 203p)

 

수중에 가진 돈에 맞춰 다리 초입에서 택시에 내린 해류는 다리 난간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우려다 강물에 빠지게 되지만,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는데, 그는 사람의 살결이라기보다는 섬세한 그물 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 보였다. 이 작품은 이렇게 인어 왕자를 만나게 된 해류의 진술로 시작된다.

 

아내가 사라지고 혼자 아이를 키우던 남자는 폭우와 태풍으로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과 동네 주민들의 떠다니는 가재도구를 헤치고 반지하방에서 간신히 머리만 내놓고 물끄러미 아빠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사장에게 연체된 11개월 월급 중 1개월 치 월급치를 달라고 요구하다 사장을 살해하고 아이와 함께 이내촌의 평균 수심 약 5미터에 이르는 이내호에 빠진다. 귓가에 친 물소리에 빠져나온 노인은 지느러미가 물살을 휘젓는 소리와 함께 물에 나온 아이를 손자 강하와 함께 구해낸다. 헌데 놀랍게도 아이 귀 뒤에는 데칼코마니처럼 한 쌍을 이룬 두 개의 상처가 있었다. 이튿날 오후 죽은 남자의 시신이 올라오고 경찰은 신원을 파악한 후 유아 시신이 하나 더 발견되어야 한다며 수색을 하지만, 경찰에게 알리자는 노인과 달리 강하는 물고기 사람인 아이를 밖으로 내몰수 없었고 그렇게 아이는 '곤'이라는 이름으로 노인과 강하와 함께 살게 된다.

 

'고기새끼'라고 부르거나 어쩌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금붕어'라고 부르는 강하에게 곤은 이틀 걸러 한 번씩 그에게 처참하게 밟혀 퍼덕거리고 온몸 군데군데 지느러미가 찢기며 비틀이 툭툭 떨어져 나가지만, 그가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그에게로 가서 미늘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마리 금붕어가 되곤 했다. 강하의 괴롭힘이 있었지만 노인의 보살핌에 그저 조용히 지내던 곤의 생활은 약에 빠진 강하의 엄마 이녕이 찾아오면서 바뀌게 된다. 이녕이 죽음에 이르는 사고가 발생하고 강하는 곤을 지키기 위해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 사건을 수습한다. 그동안 무시로 곤을 괴롭혀왔던 강하가 곤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건넨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본문 159p) 라는 한 마디는 그동안 곤을 아껴왔던 강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곤, 당신 이름 있잖아요. 그거 할아버지 아니고 강하가 지어준 거래요. 그렇게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글자뿐인 이름을,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글자가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본문 181p)

 

그렇게 헤어졌지만,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 것은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해류였다. 자신을 구해준 신비스러운 일을 블로그에 올리게 되면서 강하의 쪽지를 받게 된 해류는 강하와 만나게 되고 곤에 관해 듣게 된다. 그런 그녀가 강이 내다보이는 작은 슈퍼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는 곤을 찾아오게 되고, 곤은 미처 알지 못했던 강하와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의 이름이 '곤'이 된 이유까지도. 학급문고 도서 [장자]를 읽던 강하는 북쪽 바다에 사는 그 크기가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물고기이름이 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강하는 아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물고기가 한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 리를 날아간다는 한 줄이 일종의 예언같이 느껴져 강하는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로소 강하의 진심을 오롯이 알게 된 곤은 폭우로 물살에 휩쓸린 강하와 노인을 찾기 위해 지금도 바다에 살고 있다.

 

<<아가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처음 해류가 인어 왕자를 만났던 사실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찾았었다.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해류가 죽음에서 살아나왔을 때, 그녀는 말했다.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본문 21p)

삶이란 해류의 말처럼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헤엄쳐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산란회유를 하는 물고기처럼 힘차게 몸을 솟구치려 해도, 이 세상에 혼자만의 힘으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본문 202p)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호수 밑바닥이라는 삶의 문턱에서 곤이 헤어쳐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가미였지만 그가 삶이라는 현실에서 헤엄칠 수 있게 된 것은 강하였듯이, 엄마를 돌봐야 했기에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해류가 그랬듯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숨을 쉴 수 있는 아가미는 서로 돕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한다. (본문 203p)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아가미가 되어주는 가족이 있고, 그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헤엄칠 수 있다. 곤과 강하를 보며 나는 그것에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나의 아가미.

판타지를 소재로 한 굉장히 흥미롭고 흡입력이 강한 스토리였다. 그 속에 담아낸 인연, 사람에 대한 끈끈함이 진한 여운까지 남기고 있으니 이만하면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이제 그 어떤 의심없이 선택할 수 있겠다.

사실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놓고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아가미>>는 작가와 전작에 대한 신뢰로 인해 한껏 올라간 기대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실망스러움이 없었다. 그런 탓에 이 작품에 더욱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한동안 만나기 힘들 곤과 강하의 캐릭터를 마음에 새겨본다.

 

곤 그리고 강하의 참혹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소설 <<아가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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