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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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도서에 관심이 없는 터라 작가 사사키 아타루의 이름이 생소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인 그는 강연 및 대담 등으로 활동하며 그 결과물을 시리즈로 엮어 출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 <<이 치열한 무력을>>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고, 그들의 대담이 어렵게 느껴졌기에 이해하기 쉽게 수록해주면 더 좋으련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했듯이 그들은 대담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면 무슨 이유에선지 화를 냅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해!"라고. 게다가 소설이나 만화의 경우 "어려운 건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곧 시시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죠.....모르니까 재미없다는 생각은 독서에 '권력욕'을 투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54,55p)

 

이런 권력욕을 과시하며 책을 읽어내려가다 이 대목에서 느끼게 되는 뜨끔함 탓인지 이후부터는 그동안 선호하지 않았던 장르를 접해보는 즐거움에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다보니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 달리 서술식보다는 작가, 평론가 등이 함께 나눈 이야기가 더 쉽게 다가온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유야 어쨌든, 작가의 질책(?)이 편독이 심한 나를 인문교양 분야로 이끌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말하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정신 현상학][오쿠무라 씨의 가지][연애론][구하 전야][행복했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등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탓에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몰랐던 책,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함으로써 알게 된 책들이 나중에라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책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발전이다. 이 책에는 아사부키 마리코, 안도 레이지, 가가미 아키라, 하나에, 이치카와 마코토 등 작가와 평론가와 함게 나눈 대담 뿐만 아니라 클라이스트 [칠레의 지진],[파울 첼란 전집]을 추천하는 글, 연애에 관한 저자만의 정의와 강연했던 내용 등의 텍스트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역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히 이물질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계속 있음으로써 말은 존재 가능하고, 사용됨으로써 비로소 긍정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쓸 때마다, 사람을 통해 들을 때마다 계속 갱신됨으로써 처음으로 그 순간에만 생겨난다고 해야 할까요? 계속해서 새로운 말, 갓 태어난 말이 되는 것 외에 존재할 방도가 없습니다. 말이 태어나는 곳을 찾는 게 아니라 말이 태어나는 지금을 항상 의식할 때 비로소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 17p)

 

말이란 내 것인 동시에 타자의 것이기도 하나는 안도의 이야기,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좋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모르는 건 시시한 거야'라는 생각은 권력욕이라는 사사키의 이야기는 굉장히 인상깊었다. 2011.9.15일자 매거진하우스에 수록한 연애에 관해 사사키는 우리를 농락하는 '연애'는 12세기 유럽의 발명품임을 시작으로 어떤 참담한 재난이나 비참한 사건이 일어나도, 설령 환상이라 하더라도 이런 인간의 특권을 접을 필요는 없다(본문 78p)고 말했다. 연애도 사랑도 발명품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연애에 대한 정의를 역사와 함께 풀어낸 사사키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에와의 대담도 재미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지혜와 친구가 되기 위해 치밀하게 고안된 여러 가지 방법(본문 92p)이라고 생각하면 가깝게 느껴진다는 사사키의 결론이 마음에 든 탓이다. 더욱 인상깊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된다. 지각되지 않는 자가 된다. 이는 하나의 모험입니다(본문 129p)라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평론, 에세이뿐 아니라 모든 표현이 쓰고 있는 사람에게 빙의가 일어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후루이, 자신을 뛰어넘은 그 무엇을 쓰고 있으며, 자신을 뛰어넘은 그 무엇에 이끌려 쓰고 있으며 누군가가 되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한다는 사사키의 말은 문학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이 치열한 무력을>>은 문학, 철학 등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보여주었는데, 인문학을 자주 접하지 않는 나에게는 새로운 시각, 다양한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에 관한 권력욕의 투사이거나 나의 무지함으로 인한 이해력 부족으로 전반적인 내용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고, 타인의 견해를 엿보는 계기도 되어 앎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우리에게 남은 건 기꺼이 그 난해함의 친구로서 철학과 문학 그리고 비평이 어우러진 인문학의 만찬을 즐기는 일이다. 라는 이현우 서평가의 추천사가 와닿았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무겁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는 인문학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는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덧) 대담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란 작품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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